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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 어느 젊은 시인의 야구 관람기
서효인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서효인,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다산책방, 2011.
'어느 젊은 시인의 야구 관람기'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책을 펼치면서 야구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기 이전에,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야구 에세이라니... 먼저 반가움이 앞선다. 그러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 나오는 야구장 풍경과 오쿠다 히데오가 쓴 야구장 유람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그래! 이제는 나올 때가 되었지... 아니, 뒤늦게 읽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는 젊은 시인의 야구 감성 에세이이다. 마치 마감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작가의 핑계 아닌 변명을 늘어놓은 듯한 제목이 흥미롭다. 더불어 예쁜 편집이 마음에 든다.
내가 태어난 이듬해 프로야구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야구처럼 커왔다.(p.7)
해가 높이 떠 있을 때만 활약하는 투수가 있다. 그는 배팅 볼 투수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그는 자기 팀 타자의 컨디션을 높이기 위해 적당한 위치와 알맞은 속도로 공을 던진다. 그의 손에서 놓인 공이 진행 방향을 급하게 틀어 경기장 바깥으로 뻗어나갈 때, 투수는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그는 맞으면서 그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 나도 내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p.8)
야구에 관한 추억은, 어린 시절에 프로야구의 탄생과 함께 아침에 일어나면 종일 야구를 했다. 골목 바닥에 선을 긋고 전신주를 베이스 삼아 주먹으로 공을 치면서 놀았다. 우리는 매번 최동원이나 선동열로 빙의했고, 저마다의 목소리로 아웃이니 세이프이니 소리를 지르며 시비를 가렸다. 성인이 된 후에 우연히 예전에 살던 집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운동장 같았던 곳이 지금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길이었다. 마치 세월의 흐름과 함께 우주가 쪼그라든 느낌이다. 도시가 아닌 외가의 섬마을에서 자라난 작가는 라디오 중계로 처음 야구를 만났다고 한다. 다이아몬드 그라운드를 상상하며 소리로 들은 야구는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나 보다.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간 야구장에서 고향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애정이 있었고...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야구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 나는 야구를 마지막으로 했던 게 언제였더라...;;
그들은 팀이라는 조직 속에서 몸과 몸으로 연대하고 있다. 그러니 팀원의 편에 서서 상대편과 맞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벤치클리어링은 경기의 일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팀의 동료들이 나를 위해 다이아몬드 복판으로 나와주었다는 것.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다이아몬드처럼 깨지지 않을 약속.(p.31)
두 번까지는 스트라이크 카운트라는 벌칙을 받고, 세 번부터는 무한대로 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이상한 규칙. 야구에서의 파울은 기회의 영속성을 의미한다. 대부분 방망이에 제대로 맞히지 못한 타구이지만, 그것이 규격 바깥으로 나가버렸으므로, 타자는 한 번만 더,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갖는다. 당신이 살거나, 죽을 때까지.(p.56)
프로야구는 통상 6시 30분에 시작해 10시를 전후해 끝이 난다. 해가 저무는 시간의 야구장은 무엇보다 아름답다. 해는 뉘엿뉘엿 제 몸을 기울이고, 조명탑에 불이 하나둘 켜질 때다. 밤과 낮의 아스라한 경계가 야구장 위 하늘에서 서로의 손목을 맞잡는다. 어두워지는 하늘과 밝아지는 조명탑이 교차하는 순간,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공기의 이동). 야구장에 가야 하는 가장 근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p.95)
희생은 강요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야구에서는 희생을 강요받는 선수들이 있다. 그들은 강한 사내들이다. 희생을 아는 남자니까... 번트는 공을 달래야 한다. 자신을 숙여야 한다. 주자를 살려야 한다. 파울라인을 살펴야 한다. 주위를 배려해야 한다. 조용하면서 굳건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야 한다.(p.161-162)
야구를 흔히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 잘 던지는 한 명이 상대 타선을 무너뜨리고 경기를 지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 팀이 이기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점수를 올려야 하고, 그것은 타자의 몫이니깐. 제대로 된 포수를 키우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매번 쪼그려 앉아 강속구에 몸을 드러내고, 상대 선수의 데이터를 모두 숙지해서 수비를 지휘해야 한다. 수비의 핵심인 유격수가 있고... 야구에는 다양한 작전이 있고, 무엇보다 상대를 제압해서 땅을 빼앗거나 공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홈으로 돌아와야 1점을 얻는 경기이다. 기록보다 선행 주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유일한 스포츠... 그래서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자 이제 시집을 꺼내자."
시 쓰는 일 말고는 할 일이라고는 없는 잉여인간들이었다. 그래서 야구장에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를 읽기 시작했다. 한 연씩 돌아가며 정갈한 목소리로 낭송했다.(p.166)
그들이 주술에 기대는 이유는 간단하다. 야구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 30퍼센트 이하의 성공률을 가진 타자가, 전 타석에서 빗맞은 안타라도 때렸으면, 수치상 또 안타를 때릴 확률은 적다. 방어율이 3점대인 투수가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으면, 수치상 3이닝째엔 1점 이상은 실점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오늘 안타를 때린 선수는 안타의 감각이 남아, 비슷한 타구를 날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반대로, 3할 3푼을 때리는 타자가 오늘 3타수 무안타이고, 4타석째 들어왔을 때는 어떤가. 야구는 최악의 결과를 상정해놓고 그에 대비하는 게임일지도 모르겠다.(p.181)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요기 베라(포수, 뉴욕 양키즈)(p.197)
그리고 얼마 후 찾아간 병실에서, Y형은 놀랍게도 야구를 보고 있었다. 주말 오전에 메이저리그를 틀어놓고, 왼손에는 야구공을 든 채로. 그렇지 않아도 왼손으로 바꿔볼까 생각했는데, 이 기회에 연습을 좀 해야겠어. 이 사람은 진정 야구에 미친 것인가. 당신은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라 일개 직장인이란 말이오. 이렇게 말은 하지 않았다. 팀에 왼손이 부족하긴 해요. 이런 대답을 하다니, 바보 같았다.(p.247)
직접 본 것이든 아니면 경험한 것이든 여기에는 야구와 관련된 대부분이 들어 있다. 동네에서 아이들이 하는 야구, 아버지와 함께 간 야구장, 지금은 없어진 쌍방울 레이더스의 기억과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경기, 퍼펙트게임의 조건, 올림픽의 야구 결승전과 맥주,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어리둥절한 상황 본헤드, 한국시리즈를 보는 남자와 여자, 드래프트와 우리 사회의 자화상, 기회를 기다리는 불펜, 야구 분노, 우천 경기 취소, 징크스, 심판, 야구장에서 연애하는 방법, 프로 못지않은 아마추어의 열정, 런다운, 군대에서의 야구, 가을 야구, 유부남의 야구, 사인, 시인들의 야구 관람기 그리고 잊지 못할 그 날들... 저자와 비슷한 세대라면,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밤새는 줄 모르고 들려주는 야구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지루하지 않다. 아, 그때는 정말 그랬는데... 시공을 초월한 마음의 공감이 형성된다. 야구와 함께 드러나는 젊은 시인의 감성은 때로는 따뜻한 위로를, 센스 있는 문장은 웃음과 재미를 준다. 책에서 답을 구하라! 토크 버라이어티 <비밀독서단> 7회에서 "무언가에 푹 빠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도서로 소개되었는데, 정말로 주제와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우리 모두 야구의 세계에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