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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0
토머스 미핸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토머스 미핸, 이재경 역, [애니], 미래인, 2014.
Thomas Meehan, [ANNIE], 1980.
특별히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거나 즐겨 읽지는 않는다. 다만 무언가 읽을 것이 필요했고, 최근의 내 몸 상태가 별로라서...ㅜㅜ 약의 기운이 떨어지면 심한 어지러움에 시달리고, 약을 먹으면 온몸의 신경이 무감각해져서 집중할 수 없으니...ㅠㅠ 일부러 쉬운 책을 고른 것이 [애니]이다. 책으로는 조금 생소해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제목인데, 소설보다는 무대 공연으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Tomorrow
The sun'll come out tomorrow.
(내일은 태양이 뜰 거예요.)
Bet your bottom dollar that tomorrow there'll be sun!
(내일은 태양이 뜬다는 데에 가진 돈을 몽땅 걸어도 좋아요!)(p.9)
뮤지컬 극작가로 몇몇 영화와 드라마의 대본 작업에 참여한 토머스 미핸은 1972년에 처음으로 '애니'와 인연을 갖게 된다. <뉴욕 데일리 뉴스>에서 1924년부터 48년간 연재한 만화 [고아 소녀 애니]를 뮤지컬로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는데... 이렇게 방대한 분량에서 하나의 줄거리를 뽑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소녀와 가장 부자인 남자 그리고 샌디라는 이름의 개, 이렇게 세 가지 캐릭터를 가지고 새로운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 낸다.
부디 불쌍한 우리 아기를 부탁드립니다. 아기 이름은 애니입니다. 우리 부부는 아기를 너무나 사랑해요. 아기 생일은 10월 28일이에요. 얼른 다시 와서 데려갈게요. 우리가 아기를 데리러 왔을 때 우리가 부모인지 알 수 있도록, 가지고 있던 로켓 목걸이 반쪽은 아기 목에 걸어 주고 나머지 반쪽은 우리가 가져갑니다.(p.17)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배경으로, 정확히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1933년 뉴욕의 허름한 보육원에서 학대받으며 자라는 가난한 소녀... 이것은 마치 19세기 찰스 디킨스가 쓴 [올리버 트위스트]의 20세기 미국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심각한 갈등과 위기의 상황을 마지막에 가서 명쾌하게 해결하는 권선징악의 구조로 거듭난다. 그리고 1977년 봄, 마침내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애니>의 막이 오르고 대성공을 거둔다. 여기에서는 두 시간 전후 분량의 무대 공연으로 삭제되어야 했던 장면을 다시 복원하여 서술 형태로 만든 것이다.
"두고 봐. 이건 내가 이기냐 해니건 원장이 이기냐의 문제야. 일종의 전쟁이지." 애니는 다른 고아들한테 말했다. "난 절대 굴복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p.25)
세인트 마크 플레이스의 뉴욕 시립 고아원 여아 전용 별관, 키는 작지만 다른 누구보다 당차고 똘똘한 열한 살의 소녀는 추운 겨울 창밖을 바라보며 부모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녀를 찾아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법적으로 사랑과 온정을 베풀어야 할 원장은 폭력과 억압으로 아이들을 대했고, 심지어 지하실에서 불법 아동 노동으로 뒷돈을 벌기도 한다. 공립학교에서는 고아라는 놀림과 차별을 당해야 하고... 애니는 하루빨리 부모가 자기를 데리러 오거나 아니면 이곳을 탈출해 부모를 찾아가는 것을 매일 꿈 꾼다.
고아들이 쉬는 날은 일주일 중 일요일 하루뿐이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일요일이 가장 끔찍한 날이었다. 해니건 원장은 매주 일요일 아침 여덟 시에 아이들을 데리고 바워리 가의 세인트 마크 교회에 갔다. 고아들은 퀴퀴한 교회에 한 시간 넘게 앉아서, 죄지은 모든 이들에게 닥칠 끔찍한 최후에 대한 길고 지루한 설교를 들어야 했다. 죄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이었다. 거기다 해니건 원장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고아인 아이들은 태생적으로 죄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왜 너희 부모가 일찍 죽었겠어?"
고아들은 예배가 끝나면 죄책감과 공포와 지겨움이 섞인 혼란스러운 감정에 시달리며 다시 교회에서 고아원으로 행진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고아원에 돌아오면 온종일 기도를 올리며 지난 한 주간 저지른 사악한 행동들을 반성해야 했다.
"너희들의 더러운 영혼을 회개로 씻어내고, 하나님께 너희들의 허다한 죄들을 용서해주십사 빌란 말이야!"(p.28-29)
1970년대 닉슨 대통령 시절,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었고,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안고 있었다. 작가는 이것을 1930년대로 고스란히 옮겨 놓았는데, 여기저기 음울함과 절망감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주인공 애니는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일의 태양을 기다린다. 그리고 극적으로 원장의 눈을 피해 탈출에 성공하지만, 대공황 시대의 겨울은 더 혹독하고 참혹하다.
"내일은 태양이 뜰 거예요." 애니가 말했다. "내일은 태양이 뜬다는 데에 가진 돈을 몽땅 걸어도 좋아요."(p.93)
오갈 곳이 없는 그녀를 이용하는 사람, 가난하지만 긍정적인 그녀에게 자기 것을 나눠주는 사람, 고아원 원장과 마찬가지로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경찰은 그녀를 위태롭게 하고, 떠돌이 개 샌디... 우연히 만난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남자, 그리고 애니의 비밀을 아는 가짜 부모의 등장... 줄거리는 비단 [올리버 트위스트]뿐만 아니라 [소공자]와 [소공녀], 우리의 전래동화와 비슷한 패턴으로 예측할 수 있게 흘러간다.
그런데도 지루하지 않고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색의 대비와 시각적인 표현이 확실해서 무대 위의 공연을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고, 암울한 분위기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들었으며, 결국에서는 선이 악을 이기고 행복하게 끝난다는 동화 같은 구성이 오랜만이라서 아주 흥미롭게 다가왔다. 얼마 전에는 제이미 폭스와 쿠벤자네 왈리스 주연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는데,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고 싶다. 물론 뮤지컬을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