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스머신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 / 반니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노리즈키 린타로, 박재현 역, [녹스 머신], 반니, 2014.

Norizuki Rintaro, [KNOX'S MACHINE], 2013.

2014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일본은 책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유명 작가를 기념하거나 상업의 목적을 포함해서 이런저런 의도로 만들었지만, 이것이 세월의 흐름으로 권위를 형성하고 명성을 갖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상은 1935년부터 나오키 산주고(1891-1934)의 업적을 기려 대중문학의 작품에 주는 '나오키상'(순수문학의 작품에 주는 아쿠타가와상), 2004년부터 전국 서점 직원이 뽑은 가장 팔고 싶은 책으로 주로 문학성과 함께 엔터테인먼트의 요소를 갖춘 작품이 선정되는 '서점대상'. 그리고 1988년부터 미스터리 소설의 가이드로 제정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순위이다. 각각의 상은 여기저기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어느 정도의 재미를 보장하고 있어서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녹스 머신

  들러리 클럽의 음모

  바벨의 감옥

  논리증발 - 녹스 머신2

  4개의 중, 단편으로 이루어진 노리즈키 린타로의 [녹스 머신]은 이러한 이유로 출간부터 큰 관심이 있었다. 더구나 SF와 추리의 결합이라니! 책을 읽으면서 소문으로 들은 작가의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었고, 추리문학의 방대한 사전조사와 포괄적인 물리학의 지식은 두말할 필요 없이 참신하고 기발하고 개성 강하다. 물론 재미있다.

  5. "탐정소설에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

  정확한 근거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인의 두뇌는 너무 많은 지식을 쌓은 반면 도덕은 전혀 익히지 않았다"라는 궤변에 가까운 오래된 서양 속담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책을 펼쳐 '친루의 찢어진 눈' 식의 기술이 보인다면 바로 책을 덮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 책은 졸작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런 관점에서 판단할 때 졸작이 아니었던 것은 어네스트 해밀턴 경의 [멤와스의 4개의 비극]뿐이다.(p.15)

  메타 분석이라고 해야 하나? 작가는 황금기 영미권 추리소설(앵글로색슨 탐정소설)을 문헌 연구하여 소설의 뼈대를 세우고 있는데, 첫 번째인 '녹스 머신'은 로널드 A. 녹스의 생애와 그가 쓴 작품을 가지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2058년 중국 상하이 대학 인문학부에서 문학수리해석을 전공한 유안 친루는 국가과학기술국이 발부한 이메일 소환장을 받는다. 문학수리해석이란 시나 소설에 사용되는 단어와 관용구를 정밀 분석하는 학문인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작가 고유의 문체를 통계학 기법으로 완벽히 되살려 낼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오토포에틱스'라는 기계를 통한 문학이 형성되어 셰익스피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신작이 연이어 출간되고, 이것은 이야기 생성 방정식과 결합하여 심지어 노벨문학상까지 받게 된다. 그동안 인간의 뇌와 손으로 창작하던 문학은 내용이나 비용대비 효율 면에서 결코 경쟁이 될 수 없어 빠르게 도태한다.

  "말하자면, 갈라진 과거의 세계 B에서 미래 방향으로 시간여행을 해도 세계 B의 미래로밖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에 성공해도 세계 A에 속하는 현재로 돌아올 수는 없습니다.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의 경우에도 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동일 시간 선상에 있다고 해도 일단 미래로 이동한 시간여행자는 다시금 현재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래에서 현재로 시간여행을 떠나면 도착한 시점에 현재가 두 갈래로 나뉘어 역시 세계 A와 세계 B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미래에서 거꾸로 되돌아오는 시간여행자는 그 시점에서 세계 B에 속하게 되고 우리들의 세계 A와는 영원히 무관한 존재가 됩니다."(p.32-33)

  그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엘러리 퀸으로 대표되는 20세기 탐정소설을 연구 중인데, 작법과 관련하여 '녹스의 십계'를 적용하여 녹스장이라는 문학수리해석 알고리즘을 만들고 5항 No Chinaman을 '숨겨진 변수'로 삼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히 시간여행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고 하는데... 블랙홀과 타임 패러독스의 문제를 제외하고 라도 과연 양방향 시간여행은 가능할 수 있을까? 녹스는 [탐정소설 걸작선] 1928년판의 서문에서 왜 탐정소설에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을까?

  들러리 클럽은 명탐정의 조수나 친구들이 만든 모임으로, 192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다분히 편안한 친목단체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탐정소설을 둘러싼 환경 자체가 지금보다 한결 느긋하고 여유로웠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한데 크리스티 여사 유괴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이후부터 클럽의 성격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마치 지상과제라도 되는 듯 들러리의 전통이나 탐정소설의 건전화에 혈안이 된 비밀결사 비슷한 집단으로 변해버린 것이다.(p.81-82)

  두 번째로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1929년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11일간의 의문의 실종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그녀의 작품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을 가지고 발칙한 상상을 들려준다. 들러리 클럽은 존 H. 왓슨 박사를 회장으로 우리가 알만한 아서 헤이스팅스 대위, 밴 다인 변호사, 아치 굿윈, 크리스토퍼 저비스 박사, 해롤드 메리필드, 라이오넬 타운센드, 줄리어스 리커드, 머빈 번터... 등을 임원과 상임이사로 하는 비밀 모임이다.

  "나는 이런 애매 모호한 여학생 취향의 탐정소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네. 독자가 탐정이라는 새로운 사고방식도 낯설고 어색하기 짝이 없지. 원래 탐정이란 오귀스트 뒤팡이나 셜록 홈스처럼 뛰어난 지성과 개성을 겸비한 위대한 인물이어야 해.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진솔한 들러리의 존재가 빠질 수 없는 거지. 그러나 만일 크리스티 여사의 글쓰기가 인정된다면 경솔한 독자와 새로운 것만 보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평론가가 몰려들 테고, 영국 탐정소설계는 이런 종류의 너절한 소설들에 점령당하고 말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 같은 들러리는 말할 것도 없고 위대한 명탐정이 설 자리도 뿌리째 빼앗길 것은 불 보듯 뻔해. 아무리 설득한들 그 같은 미래를 받아들일 수는 없지. 절대로 굴복해서는 안 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것뿐이야."(p.99-100)

  이들은 모두 명탐정 셜록 홈스나 에르큘 포와로... 등의 친구이자 동료로 그동안 수기식 구조의 탐정소설에 출연해서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새로운 시도는 전통적인 규칙이나 작법에서 벗어나 조수의 역할을 점차 축소 제외하였는데, 여기에 불만과 위기를 느낀 이들은 비밀회의를 소집하여 대책을 논의한다. 누군가 그녀를 암살하자는 의견을 내놓는데...

  갑자기 교신 라인이 열리고 파트너의 사념이 날아들었다. 파트너란 나의 경상鏡像(거울에 비친 상) 인격을 말한다. 사이클로프스인의 정신파동 스캐닝(마인드 리딩)에 대한 방어용 수단으로 만들어진 쌍둥이 형제다... 나(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이클로프스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갈라테이아에 행성 간 무역상으로 위장 잠입해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행성 갈라테이아는 지구와 흡사한 생태계를 갖고 있다. 이 행성에는 지구에서 이미 멸종된 생물자원이 풍부하게 서식한다. 천문 지정학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행성이라 어떻게 해서든 지구의 편으로 만들어 둬야 했다.(p.119-121)

  세 번째로 '바벨의 감옥'은 일본어 세로쓰기에 맞춘 트릭으로 구성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상당히 난해하다. '바벨'이란 성경의 창세기 11:9에서 '언어의 혼잡'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우주 어딘가의 공간인지? 가상의 공간인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사이클로프스인의 정신파동 스캐닝은 3차원에서의 공간 처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우리들의 의식에 가상의 책이라는 형식을 주고 나와 파트너의 인격 데이터를 격리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종이 책장을 넘겨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그들이 이해 가능한 범위 밖에 있다.

  검열관은 우리 지구인들이 전자책을 읽도록 2D의 모니터 화면을 스크롤하거나 슬라이드 쇼 같은 형식으로 의식을 스캐닝한다. 그렇다면 종이의 앞과 뒤로 등을 맞대고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나 책장을 넘길 때 인쇄된 문자와 기호가 원호상의 궤적을 그리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거기에 그들이 가진 맹점이 있다. 아니, 구두점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 공간은 32자 X 25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행수와 글자 수를 지정하면 공간의 좌표를 고정할 수 있다.(p.140-141)

  작품의 구조상 다른 세 개의 단편과 분명히 연결되어 있을 텐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하겠다.

  지금까지 여러 편의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나는 어느 사이엔가 좋은 아이디어 하나를 깜빡 잊고 있었다. 벌써 몇 년 전 일로, 퀸 이라는 이름의 신사가 추리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뛰어난 작품을 읽어온 독자라면 내가 초기 작품 안에서 핵심 부분마다 '독자의 도전' 코너를 삽입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소설 한 편을 완성시켜 편집을 마치고 교정을 모두 끝낸 뒤 출판사의 누군가(실로 명석한 사람이다)가 늘 게재되던 '도전' 코너가 누락되었다는 걸 귀띔해주었다는 사실뿐이다. 당혹감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누락분을 보완한 뒤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간신히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이전 작품을 살펴보았고, 이전 책에서도 깜빡 잊고 '도전' 코너를 싣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p.157-158)

  네 번째로 '논리증발'은 '녹스 머신'의 속편으로, 이번에는 엘러리 퀸의 작품활동과 국명 시리즈를 가지고 대미를 장식한다. 2073년, 인도계 여성 프라티바 후마얀은 골플렉스사 전자책 사업부의 원전관리 책임자인데, 여름휴가 중에 팔로알토에 있는 본사로부터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는다. 골플렉스는 지구에 존재하는 온갖 정보를 상호작용을 통해 수집하고 보관 및 관리하는 복합지성체이다. 마치 갓난아기의 뇌 신경 조직처럼 끊임없이 성장하여 비록 민간기업이지만, 잠재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전부터 양자화된 텍스트 일부가 불타 손실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을 추적하니 20세기 전반에 쓰인 미국의 탐정소설이고,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 중에서 1933년에 발표한 [샴쌍둥이 미스터리]이다.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단'은 반反 '오토포에틱스'를 주장하는 비합법 활동가 그룹이 조직한 사이버 테러집단이다. 하이테크 기술의 진보에 반기를 든 신 러다이트운동의 흐름을 이어받아 인문주의 문학의 복권과 저작권 보호를 호소하며 웹상에서 전자 텍스트에 수차례 공격을 가한 바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목표는 우아하고 섬세한 종이책 시대를 되살리기 위해 현대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인 골플렉스의 양자 네트워크로 구성된 거대한 전자 텍스트의 기록보관소를 송두리째 불태워 없애는 것이었다.(p.177-178)

  양자 네트워크의 구축과 '오토포에틱스'의 끊임없는 진화는 20세기 이전의 오리지널 문헌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웹상에는 무수히 많은 자동 이야기 생성 프로그램이 있어서 날마다 대량의 개작과 변이를 토해내고 있고, 이외에도 '좀 벌레'라고 불리는 데이터 포식 바이러스가 전자 텍스트를 갉아먹어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을 내고 있다. 더 나아가 '반 오토포에틱스'를 주장하며 종이책 시대를 되살리고자 하는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단'의 공격은 아주 치명적이다. 그녀는 불을 끄기 위해 No Chinaman이라는 과거에 시간여행을 한 남자를 찾아간다.

  작가는 마치 이 한 권의 책으로 미스터리 소설은 하루아침에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라는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로널드 A. 녹스,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의 작품 세계와 더불어 수많은 명탐정의 조연에 관한 깨알 같은 서술은 그가 작가 이전에 얼마나 많은 탐정소설을 애독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우주물리학과 양자역학에 관한 이해도 충만하여 책을 읽는 내내 복잡함으로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였지만, 작년과 올해에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와 <타임 패러독스>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더 재미있다. 도넛 모양으로 회전하는 블랙홀, 시간여행에서 생기는 모순, SF와 일본식 미스터리의 완벽한 결합은 정말 최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