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집 1
정석화 지음 / 네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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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화, [춤추는 집①], 네오픽션, 2014.

  정석화의 소설 [춤추는 집①]은 [재림](안치우, 황금가지, 2014.)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만나는 한국형 추리 문학이다.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연이어 국내 미스터리를 읽게 되었다. 아직 1권만 읽은 상태라서 섣부른 평가가 우려되지만, 지금까지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고 마음이 가는 작품이다. 과거의 잊고 싶은 인연이 현재의 발목을 잡고, 현재의 사건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다. 은퇴를 앞둔 파출소 소장과 강력반에서 발돋움하는 초임 형사의 시각으로 번갈아 진행하는 이중 구조는 일본 미스터리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짜임새이다. 작가는 2000년 '스포츠 서울'의 신춘문예 추리소설 부문에서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마치 매일 지면에 오르는 연재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문학성과는 별개로 장르소설이 주는 자극성과 정보성은 과하지 않게 적절히 분배되어 가독성을 높이고 있고... 부디 2권에서 마지막까지 힘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곳 저수지의 원래 이름은 호정(狐精)이 아닌 호리병 속에 들어가면 별세계가 보인다는 일호천(一壺天)이었다.

  일호천저수지에서는 매년 일고여덟 명 정도의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낚시를 하거나 꽃놀이를 즐기다가 실족하여 죽는 것이 아닌 작정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는 자살자들이었다. 저수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호정리 사람들은 저수지의 이름이 잘못된 탓이라고 여겼다.(p.25)

  (현실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건이 일어난 곳은 서평군의 호정저수지이다. 호리병의 모양을 닮은 저수지는 일 년에 한 차례 주위에 심은 벚나무의 꽃이 우거지면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이제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호정파출소 소장 최석규는 저수지에 차가 빠졌다는 신고를 받는다. 차는 물에 완전히 잠긴 상태이고 운전석에서 한 여자가 익사한 사고이다. 그런데 익사자는 아시안게임 수영 3관왕을 차지해서 아시아의 인어로 불리던 여자이다. 아시아의 인어가 물속에서 죽다니... 문득 18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때도 이곳에서 똑같은 사고가 있었다.

  "둘의 합의에 의한 자살이거나 아니면 한쪽은 자살, 다른 한쪽은 타살이겠지."(p.99)

  최석규, 황민기, 이정국은 중학교 동창이다. 최석규는 파출소 소장이고, 황민기는 에비슨 병원의 원장이며, 이정국은 연극 공연계에서 알려진 인물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인연 아니 악연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셋은 서로 얽혀 있으면서 그리 반갑지 않은 사이이다. 18년 전의 사고에서 이정국의 동생 부부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정국의 아내가 죽었다. 최석규는 경찰의 촉으로 여기에 뭔가가 있음을 감지하고 사고사로 마무리된 파일을 다시 들춰낸다.

  "난 정당한 복수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야. 정정당당한 사회가 왜 안 되는 줄 알아? 법대로 하니까 안 되는 거야. 법은 권력이야. 권력의 속성은 지배욕이고. 법은 결코 지배를 당하려고 하지 않아. 약한 자를 위해 법이 필요하다고? 아니지. 그 법을 휘두르는 자는 절대 약자가 아니거든. 예를 들어 북한이 혹은 일본이나 중국이 우리나라를 먹었어. 그럼 재벌 회장님들이 벌벌 떨 것 같아? 그들이 망할 것 같아? 그 사람들 하나도 걱정 안 할걸. 그들은 돈의 힘을 알거든. 권력을 가진 사람들 역시 돈의 맛을 알고. 서로 줄 게 있고 먹을 게 있는데, 너 같으면 피 튀기며 싸우겠냐? 차라리 술잔을 부딪치지. 법이란 게 그렇잖아. 아무것도 못 하는데 무슨 정의가 실현되겠냐고..."(p.127-128)

  오태주와 이시우는 중학교 동창이다. 오태주는 용산경찰서 강력반의 형사이고, 이시우는 이정국의 아들로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한 유명한 뮤지컬 배우이다. 무슨 연유인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둘의 사이도 이제는 어색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시우의 주변에서 원인 모를 테러가 지속해서 발생한다. 심한 폭행을 당하고, 익사하고, 황산을 뒤집어쓰는... 그리고 다시 한 번 충격의 사건이 일어난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야. 그 필연에는 반드시 음모가 도사리고 있고. 그래서 우연이 겹치면 그 우연은 결국 우연이 아닌 거야."(p.167-168)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있어. 형사는 가면 뒤의 얼굴을 봐야 해. 문제는 이 범인이라는 놈들이 가면 뒤에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거지만."(p.168)

  "양심에 찔려서 그런 거야. 내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구나, 그걸 아는 거지. 범죄를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한다면 굳이 복면을 쓸 필요가 없잖아."(p.183)

  "엄마는 거짓말쟁이였어요."

  그리고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딸은 엄마를 닮죠. 원해서 닮기도 하고 또 원하지 않는데 닮기도 하고."(p.310)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잊고 싶은 기억이 있을까? 도대체 어떤 인연이기에 이들은 계속해서 불편한 관계로 살고 있을까? 원인을 알 수 없는 테러의 범인은 누구일까? 그것이 설령 복수라면 무슨 원한이 있었던 것일까? 추리소설 특유의 공식... 가령 명탐정 캐릭터라든가 놀랄만한 트릭이라든가 기막힌 반전이라든가 하는 것은 아직 없었지만, 가랑비에 서서히 옷이 젖어 가듯이 논리성과 개연성을 유지하면서 사건의 본질에 점차 다가가는 재미가 있다. 특히 인물과 인물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는데,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인물 간의 관계성이 핵심인 만큼 숨겨진 사연이 궁금하다. 제목이 왜 [춤추는 집]일까? 작가는 1권에서 뿌린 떡밥을 과연 제대로 회수할 수 있을까? 2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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