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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7
안치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10월
평점 :
안치우, [재림], 황금가지, 2014.
앞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나는 (일본식 표현으로) 본격 미스터리보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선호한다. 다른 말로 오락성보다는 메시지를 더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즐기면서 나름대로 순수문학의 감동(여운이나 그 어떤 것)에 대응하는 것으로 사회성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누가? 어떻게? 보다는 왜? 에 관심이 가는 게 사실이다. 안치우의 [재림]은 처음으로 만나는 국내 작가의 추리소설인데, 사회적인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어서 호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재림
만남, 그리고 시작
동명의 제목과 다른 제목으로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긴 두 개의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눈치가 빠르다면... 이미 제목이나 표지의 디자인만으로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했을 것이다. 첫 번째 '재림'은 현대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특정 종교를 건드리고 있고, 두 번째 '만남, 그리고 시작'은 유명무실한 재외공관을 다루며 프리퀄로서 등장하는 인물과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각각 발생하는 사건은 연쇄살인과 실종이라는 다소 심각한 분위기이나 사건을 수사하는 세 명의 각기 다른 탐정 캐릭터 사이에는 유머 코드가 심어져 있어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유신론자는 단순히 '신을 믿는 자'란 뜻이 아니에요. 초인간적인 존재를 믿는 부류는 다신론과 자연신론, 범신론도 있으니까요. 유신론은 주로 인격신, 즉 유일신을 뜻하는 거예요. 오로지 단 하나의 신! 그런데 말이죠. 유신론을 주제로 저런 살벌한 그림을 그렸다면, 혹시 형님께서 유일신 종교 쪽하고 원한이라도 있었나요?"(p.54)
근본주의 경향이 강한 교회 제단이 쥐고 흔드는 조직 안에서라면 사소한 교리해석만으로도 신학자가 파문당하는 게 현실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해 온 스승이 오히려 예수라는 명분에 의해 파문당하고 비참한 죽음으로 시들었으니... 교계의 폐쇄성과 불관용에 절망했을 테고, 급기야 분노는 신으로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침묵하는 신을 보며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울분을 느꼈을 터, 그 분노가 바로 저 그림 속에서 데일 듯한 증오로 으르렁거리고 있지 않은가.(p.56)
종교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야 하는데,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빠지면 빠질수록 피폐해지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보수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잣대는 세계 신학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배타성과 불관용성으로 자신들의 성벽을 구축하고 있고, 여기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누구든지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스승은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았으나 새로운 교리 해석을 문제로 신학대에서 쫓겨나 충격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것을 곁에서 지켜본 제자는 신앙을 버리고 울분과 증오로 산다. 그는 기성 교회를 비판하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미진한 경찰 수사로 P.I.(민간조사원)를 고용하는데, 독고 소장의 사무소로 사건 의뢰가 접수된다.
"한때 배신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베드로는 예수를 부정했던 일을 나중에 참회하게 돼요. 속죄의 의미로다가 전도에 아주 열심히 임하게 되죠. 성 베드로 성당이라는 무지 아름다운 건축물이 말해 주듯이 베드로는 기독교계에서는 대단히 추앙받는 순교자예요. 베드로의 인생을 한 줄 요약해 보면, '배신과 참회, 그리고 순교'가 되겠네요...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요, 베드로가 네로 황제 때 붙잡혀서 십자가형을 당했다더군요. 이때 베드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내 어찌 감히 예수님이 짊어지신 신성한 십자가 형틀에 이내 미천한 몸을 맡기리오... 베드로는 '역 십자가형'을 받게 된 거예요."(p.129)
썰렁한 유머를 사용하며 댄스 스포츠를 즐기는 그러면서도 법의학에 관심이 많은 괴짜 변호사 독고잉걸, 그와는 항상 티격태격이며 좌충우돌하는 젊은 미학자 강승주, 180cm의 장신으로 격투기에 능하며 시종일관 강인함과 진지함을 보이는 여성 권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명의 캐릭터는 저마다 강점을 선보이며 흔적을 찾아간다. 죽음의 혈흔, 배달된 베드로의 거꾸로 된 십자가, 장부 속의 명단, 개혁을 외치며 교회를 비판한 사람들... 그리고 연쇄살인.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러나는 또 다른 단서는 긴장감과 맞물려 명탐정의 활약을 돋보이게 한다.
"인간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위험한 권력이 종교일 겁니다. 폭력조차도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되면 신성한 것처럼 보일 정도니까요. 인간이 만든 것인데도 인간을 초월해버리는 현상이 생긴 거죠... 권력화 된 종교는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늑대가 될 수 있어요. 이미 역사적으로 종교가 인간에게 늑대였던 적이 너무 많습니다."(p.150-151)
"작금의 한국교회는 우상숭배 투성입니다. 교회도 목사도 우상숭배입니다. 개신교가 탄생하며 주창했던 건 교회와 목회자를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목사를 믿는 것인지 자문해 보세요. 항상 깨어 있으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 바로 이성입니다. 네? 이성이라면 주님을 부정하게 만드는 거 아닌가요? 무신론자들이 부르짖는 것도 이성이니 과학이니 아닌가요? 이성보다 앞서는 것이 믿음 아니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는 이성은 깨달음의 동력을 뜻합니다. 이성은 배움이고 철학이고 각성입니다. 믿음은 각성의 산물이고요. 어찌 믿음이 자각에 앞설 수 있겠습니까. 거짓된 목회자들이 외치는 건 믿음이 아니라 맹신일 뿐입니다. 우매와 어리석음을 세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정신과 정반대인 겁니다. 예수님은 혁명가셨습니다. 부패한 기득권에 대한 반항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접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신이어야 합니다."(p.155-156)
"이웃사랑이라는 본질만 깨닫는다면 교회도 성경도 들러리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제가 주님의 존재를 믿는 것 또한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제게는 신이 없어도 됩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제게는 필요 없습니다."(p.181)
여기에 등장하는 교회는 다른 사이비 이단이 아니라 보수 신앙을 강조하는 우리의 개신교 교회이다. 물질주의에 빠져 윤리성뿐만 아니라 교리성까지 잃어가는 참혹한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변질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신자와의 논쟁에서 작가는 하고자 하는 말을 논리적으로 전달한다. 너무 직접적이라 은유의 미학이 없어서 아쉬움이 있고... 내용의 일부는 자유주의 신학의 맥락을 따르고 있어서 백 퍼센트의 공감을 할 수는 없지만, 교회의 문제를 세상에 제기한 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영국 유학생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머나먼 타국 땅에서 첫 만남을 가진 세 탐정의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