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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 ㅣ 밀리언셀러 클럽 104
모치즈키 료코 지음, 김우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모치즈키 료코, 김우진 역, [신의 손], 황금가지, 2014.
Mochizuki Ryoko, [KAMI NO TE], 2004.
일본은 조금 다른 줄 알았는데, 글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나 내면 깊은 곳에 본능으로 순문학을 향한 정열이 있나 보다.
그녀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기뻤다. 자신의 이름이 책 뒤에 박혀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이 기뻤다. 돈은 이전 작품, 이를테면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사회파라는 이름으로 쏟아낸 가십의 확대물 같은 논픽션으로 더 잘 벌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래도 '순문학'이라는 단어에 그녀는 도취되었다.(p.9-10)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시대인 만큼 최근에는 선이 불분명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작품이 많아 장르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시대를 초월해서 오랫동안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필생의 역작을 쓰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순수문학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은 열정을 넘어서 자기 파괴로까지 이어진다. 모치즈키 료코의 소설 [신의 손]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니 그 이상의 열의... 광기에 가까운 정념을 가진 한 여류 작가의 흔적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소설이 좋았다. 그리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외부 투고 원고는 읽지 않도록 회사 방침이 정해져 있음에도 그걸 무시하고 어떤 인연으로든 손에 들어온 원고는 읽고 답신을 보냈다. 사람들은 그걸 구식 편집자 기질이라고, 서툴다고, 외골수라고 했다. 그러나 미우라는 작품 속에서 재능의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면, 닭이 달걀을 품듯 세상 속으로 날아오를 때까지 돌보는 일을 좋아했다.(p.15)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재능을 찾아 산더미 같은 원고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편집자와 여기에 갈고닦음으로 문학이라는 인고의 창작을 하는 소설가... 소설가와 편집자의 미묘한 공생관계는 작품 전체에 고루 녹아있다. 문예지 <신문예>의 편집장 미우라 고조. 그는 아무리 팔리지 않는 문학이라고 하지만, 특유의 기질로 작가를 발굴하고 재능을 세상에 선보이는 편집자의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편집장이 된 후에 얻게 된 결정권은 매 순간 판단을 내려야 하고, 연일 잇따르는 대외행사에 얼굴을 비춰야 한다. 정직함과 성실함이 있지만, 숫자와 통계로 말하는 세상에서 늘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기분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누군가가 미발표 소설 '녹색 원숭이'에 관해서 묻는다.
저는 1류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2류는 1류의 아래니까 2류라면 부끄럽죠. 그렇다고 3류로 불리는 것은 활동에 지장이 되니까, 2.5류의 작가가 되고 싶어요. 독자를 활자 문화로 인도하는, 만화나 영화에서 문학으로 건너오게끔 하는 다리가 됐으면 해요. 책상 앞에서 읽는 작품이 아니라, 500엔 정도의 가격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잠시 읽고 싶은, 그래서 '아, 활자란 게 꽤 재미있는 거로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서 젊은 층을 활자 세계로 끌어당기는 발판이 되고 싶다고 할까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어요. 그러니까 제가 작가가 되는 것은 활자문화에 중요한 일이에요."(p.29-30)
10년 전에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며 한 보따리의 원고를 들고 찾아온 기스기 교코. 그녀의 손끌에서 거침없이 쓰인 글은 확실히 다른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부족함을 이유로 등단은 한 해 두 해 미뤄지고, 결국 3년 전부터 행방을 알 수 없다. 소설 '녹색 원숭이'는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에 보여준 작품이고, 지금 누군가가 그녀의 행색으로 소설과 함께 나타났다. 그녀는 어디로 숨은 것이며? 그녀를 사칭하는 여자는 누구인가?
하지만 마키 씨는 소설을 쓰겠다고 한 당시 저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떠다니는 말들을 잡는 것이라고. 그리고 소설가란 마음속에 괴물을 한 마리 키우고 있다고. 그 괴물을 키우면서 작가가 되고, 그 괴물에 잡아먹힐 때 자살한다......라고요.(p.50)
작가가 다른 작가를 동경할까요? 누가 뭘 쓰라고 하든, 무엇을 하자고 하든, 예를 덜어 남의 작품을 훔쳐 명성을 얻고자 하더라도 내 알 바 아니에요. 작가로서 존재하는 건 나 혼자뿐이고,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표현할까 결정하는 것도 나 혼자뿐이에요. 작가란 자들은 누구에게도, 어떤 것에도 동경을 품지 않아요. 그저 자신을, 자기라는 존재로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목숨을 걸어 가며 자기 안에서 발견해 나가는 것뿐이죠......(p.63-64)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이죠, 몸속에 괴물을 한 마리 키우는 것과 같아요. 그건 숙주를 먹이로 삼아 성장하고, 일단 성장을 시작하면 다 먹어 치울 때까진 만족할 줄 모르죠. 자유로운 사고를 허용치 않고, 때로는 사람 만나는 것조차 못 하게 막고. 숙주를 독점하고, 항상 자기만 신경 쓰라며 아우성치고, 노려보고, 춤추고. 그것과 키보드 사이의 연결 파이프로만 존재하게 되는 거예요. 괴물은 커 가는데 나는 소모되고, 신경은 삐걱거려 비명을 지르고, 그래도 놈에겐 자기만이 전부여서, 내가 죽는다면 다음 숙주를 찾아 떠나고 말 거예요. 작가들은 어째서 자살하는 걸까? 인간으로서 그 괴물을 품고 있을 수 없게 된 때, 안식을 얻고 싶은 거예요. 난 지금 거기에 발을 디딘 것 같아요. 바닥 없는 늪이란 것을 알면서도 저항할 수가 없어요.(p.100-101)
"먹고, 자고, 성욕을 채우고, 죽는다. 거기에 불만을 느낀다고 해도, 결국 그렇게 인생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에요. 그걸 부정하고 싶으니까 문학이 태어난 거지요. 생존과 생식, 이를테면 자위적 본능만이 자신들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하지만 그건 동시에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이 되지요... 그러나 보통 사람은 그 괴물의 존재를 동경하지요.(p.369)
[신의 손]은 모치즈키 료코의 데뷔작으로 소설과 소설가를 소재로 하는데, 순문학을 향한 소설가의 정열이나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일본 문예지의 현실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여기에 자전적인 목소리를 더하는데, 글을 쓰는 것은 마치 내면에 괴물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직유적인 표현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숨죽이고 있던 녀석은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세상 사람의 동경을 받으며 몸집을 키워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을 뒤집어엎는다.
글을 쓰는 극한 직업...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내용으로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맴돈 느낌이다. 그리고 순수소설을 향한 작가적 미련 때문일까? 문학적으로 꾸며진 글이 넘쳐나 오히려 하드보일드가 그리울 정도였다. 조금만 힘을 빼고 절제를 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