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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ㅣ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평점 :
오노 휴유미, 추지나 역, [십이국기①], 엘릭시르, 2014.
Ono Fuyumi, [TSUKI NO KAGE KAGE NO UMI], 1992.
그동안 소문으로 들었던 오노 휴유미의 소설 [십이국기①]를 드디어 읽었다. 영화와는 다르게 판타지 장르의 문학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 (이것을 싫어한다기보다는) 아무래도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개연성이 강한 글을 선호하다 보니 그동안 자연스럽게 손길이 가지 않은듯하다. 그래서 처음 책을 만났을 때에 과연 길을 찾아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라는 낯선 곳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일본에서 원작은 1992년에 발표하였고 이후에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으며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각종 도서 순위에 올라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입소문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국내에서 절판된 책을 구하려는 사람과 새로운 번역의 번거로움에도 재출간하는 출판사의 열의가 함께 느껴진다.
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한 여고생이 뜻하지 않게 십이국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에 깔린 특별한(?) 세계관인데, 모든 시리즈는 같은 세계관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 권에서 한 편의 야이기가 완결된다. 그래서 어느 권을 먼저 읽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전에서 떠나지 않고, 충성을 맹세할 것을 서약한다."
빠르게 말하자마자 요코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허락한다고 하십시오."(p.25)
선천적으로 빨간 머리의 여고생 나카지마 요코는 한 달 전부터 이상한 꿈을 꾼다. 살기를 품은 이형의 짐승들이 희생자를 노리듯 자신을 향해 점점 달려온다. 붉은빛 속에 검은 얼룩으로 보이던 것이 꿈을 꾸는 사이에 지평선을 지나 이제는 내일이나 모레에는 다다를 것이다. 매일 같은 악몽으로 수면 부족에 시달린 그녀는 결국 수업시간에 기이한 행동으로 소동을 일으키고 교무실로 불려간다. 그리고 기묘한 분위기의 금발 머리 남자가 찾아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건넨다. 곧이어 꿈에서 보았던 짐승의 습격이 일어나는데...
캄캄한 바다에 달이 하얀 그림자를 비추었다. 파도 위에 머문 달그림자가 더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 기세에 눌린 것처럼 바다 위에 거품이 인다.
짐승은 거친 바다 위에서 반짝이며 빛의 원 속으로 날아들려 했다.
...
잠수하듯 나아간 곳에는 발밑과 마찬가지로 둥그런 빛이 보인다.
머리 위에 있는 동그란 빛이 발아래 하얗게 빛나는 빛을 비추고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그것이 출구라면 이 터널은 아주 짧은 편이다.
...
위아래 감각이 뒤바뀌었다. 갑자기 다시 귓가에 소리가 들린다. 희미한 빛을 반사하는 해수면, 눈을 들자 바다가 일대 가득 펼쳐진다.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캄캄한 바다 위 달그림자에서 미끄러져 나온 것이다.(p.49-51)
습격한 요마와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추격을 피해 바다에 비친 달의 그림자를 통해 십이국기의 세계로 들어간다. 여기에서부터 기나긴 요코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 점이 어려워. 정의와 자비는 하늘의 의지다. 하늘은 정의와 자비로 나라를 다스리기를 바라지. 그 뜻을 대변하는 존재가 기린일 거야. 한데, 정의와 자비만으로는 나라를 다스리지 못해. 옳지 못하다, 무자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지. 다만, 그것이 도를 넘으면 천명을 잃는다... 나라를 위해 무자비한 짓도 하지만 무자비가 지나치면 왕의 자격을 잃지. 어차피 왕은 하늘에서 옥좌를 비렸을 뿐이야. 왕이 길을 잘못 들어 천명을 잃으면 기린이 병들어. 이 병을 실도失道라 한다... 그리고 기린이 죽으면 왕도 죽어."(p.392-393)
"이것만은 기억해 둬. 왕에게는 절대로 저질러서는 안 되는 죄가 세 가지 있다. 하나는 천명에 거슬러 인도에 어긋나는 것, 또 한 가지는 천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가 설령 내란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타국에 침입하는 것."(p.407)
1권에서 드러난 십이국기의 세계관은 다음과 같다(*스포일러 포함).
- 빨간 머리... 요코는 동양인이 가질 수 없는 태어나면서부터 빨간 머리를 하고 있다.
- 수우도와 구슬... 수우도는 칼과 집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지배하면 과거와 미래뿐만 아니라 천 리 너머의 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환영(푸른 원숭이)에 시달리며 심리적인 압박을 당한다. 구슬은 온기와 함께 회복하는 능력이 있다.
- 요마... 이형의 짐승으로 각각의 능력을 갖췄으며, 특정(?) 계약으로 조종할 수 있다.
- 이쪽과 저쪽...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계와 알지 못하는 십이국기의 세계로 되어 있다. 간혹 현실에서 십이국기의 세계로 들어간 사람이 있지만(반대의 경우도 있고), 다시 되돌아왔는지는 아직 모른다. 이쪽은 배경이 되는 십이국기의 세계이고 저쪽은 현실의 세계이다.
- 식, 해객, 산객... 식은 기운이 흐트러지는 현상으로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동반하여 이쪽과 저쪽의 세계를 뒤섞는다. 아주 드물게 식으로 사람이 흘러오는데, 허해를 건너 일본에서 온 사람을 해객이라 하고 곤륜으로 중국에서 온 사람을 산객이라 부른다.
- 십이 국... 평평한 세계의 한가운데에는 숭산(숭고한 산, 중악, 중산)이 있다. 숭산 사방에는 동서남북으로 봉산, 화산, 곽산, 향산이 있고 이 다섯 산을 오산이라 한다. 오산 주위에는 황해가 있는데, 물이 있는 바다가 아니라 바위산과 사막 그리고 늪지대와 밀림으로 되어 있다. 황해 주위를 다시 동서남북으로 사 금강산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 안쪽은 사람이 사는 세계가 아니다. 금강산 주위 사방에는 네 바다가 있고, 팔방을 여덟 개의 나라가 둘러싸고 있다. 그 주위에 허해가 있고 육지와 가까운 곳에 커다란 네 개의 섬이 있는데, 이것이 네 나라이다. 그래서 전부 십이 국을 이루고 있다. 허해 동쪽 끝에는 신비한 섬이 있는데, 봉래국이라 하고 일본이라고도 부른다. 금강산 어딘가에는 곤륜이라는 언덕이 있는데, 그곳을 중국이라고 한다.
- 십이 국2...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의 영역이 있고 고대 중국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열두 개의 국가로 봉건 제도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왕위는 세습되지 않으며 각국의 기린이 천의에 따라 고른 왕에 의해 다스려진다. 왕과 기린은 서로 얽혀 있는데, 선한 통치를 하는 왕은 죽음을 멀리하고 언제 까지든 왕위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천의를 어기면 기린은 병들어 죽고 왕도 얼마 있다가 죽는다.
- 십이 국3... 각국의 왕은 어떤 이유로든 타국에 침입할 수 없다.
- 난과와 태과... 모든 생물은 이목이라는 나무에서 태어나는데, 생명을 품고 있는 노란 열매를 난과라 한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이쪽의 사람이 잘못해서 저쪽에서 태어나는데, 이것을 태과라 한다.
- 반수... 동물의 형태로 태어난 인간으로 원할 때에는 인간의 형상을 할 수 있다. 기린도 인간의 형상을 할 수 있다.
- 등장하는 왕과 나라... 쓰러져가는 교국의 각왕, 황폐해진 경국, 500년을 지속해온 안국의 연왕, 600년 태평성대의 주국.
어떻게 이러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을까? 원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린 한 소녀의 시련과 방황, 열두 개의 나라가 공존하는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건너편의 세계, 작가가 창조해낸 다른 우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충분한 재미를 보장한다. 새로운 세계관과 주요 인물의 기본 관계를 일일이 설명해야 해서 조금은 장황한듯하고 급작스럽게 맞이한 결말은 살짝 아쉬움이 있지만, 처음의 우려와는 다르게 개인적으로는 복잡한 미로를 가뿐하게 통과한 느낌이다. 배신과 배반,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간의 본성... 여기에 권력이 더해지면 어떤 결과를 맞이할까? 왕으로 선택받아 왕이 되어 왕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정의와 자비의 적절한 균형을 강조한다. 거듭된 어려움을 하나씩 극복하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해가는 주인공을 보며... 마지막 페이지의 희열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