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루 -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 하재욱의 라이프 스케치 1
하재욱 지음 / 헤르츠나인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하재욱, [안녕 하루], 헤르츠나인, 2014.

  이십 대 중반에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비, 1999.)를 읽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던 때라 젊음은 끝이 없을 것 같았고, 삼십 대는 꿈과 희망 없이 온종일 일만 하는 그저 그런 아저씨와 아줌마의 삶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40대는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세계이고 그때에는 인생의 의미조차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런 편협한 사고를 깨뜨린 것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마돈나](북스토리, 2007.)를 읽고 나서이다. 40대 남자에게도 가슴 떨리는 사랑이 있었다. 자녀 양육과 사회적 책임을 양 어깨에 짊어진 피곤한 나이이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되고 있다.

  2013년 6월 페이스북에 그림과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좋아서 올렸던 건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었습니다.

  '좋아요' 수도 덩달아 늘었는데,

  모두 비슷한 하루를 살고 있었나 봅니다.(p.12)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 [안녕 하루]는 오늘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사는 40대 남성의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하루를 그림과 글로 기록한 일상의 에세이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이 좋아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작가의 솜씨는 마치 프랑스의 어느 유명 화가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데, 독특한 필체와 개성 있는 색감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귀인은 세상이 먼저 알아보는 것인가 보다. 인터넷 공간에 올린 하루는 방문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입소문을 타고 나에게까지 왔다. 책 속에 살며시 언급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전에 읽은 장 자끄 상뻬의 그림 동화를 보는 기분이 든다.

  지하철은 거대한 도시의 땅속에서 자기만의 궤도를 따라 돕니다.

  가끔 지상에 고개를 내밀고 숨 쉴 때가 있는데,

  저는 그런 상상을 합니다.

  이대로 박차고 올라 은하철도999가 된다면!(p.151)

  아버지, 일상, 가을, 추억, 셋째, 지하철, 겨울, 가족... 어느덧 아버지가 되어 예전에 아버지가 했던 말을 똑같이 아이에게 한다. 청춘이라는 말은 점점 무색하고 하루하루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갑작스러운 해고를 두려워하고 남몰래 눈물을 닦아야 한다. 아무리 쉬어도 몸은 예전만 못하고 볼품이 없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예전의 설렘을 찾기 위해 한잔 술을 걸친다. 나라에 관한 푸념. 출퇴근 지하철에서 달콤한 로맨스를 상상하기도 하고... 이제는 그리움과 서글픔이 익숙하다. 셋째 아이의 출생으로 행복과 걱정이 교차하지만, 탄생 그것만으로 신비롭고 경이롭다. 은하지하철도999라는 발칙한 생각. 추운 날씨. 천재를 향한 질투. 그럼에도 나에게는 가족이 있다.

  대한민국의 현재를 사는 아빠들, 이 빡빡한 시스템 안에서

  '생존'이라는 화두를 짊어지고 밀려나지 않으려고

  가진 힘을 다하여 버티고 있죠.

  사회적 안전망이 없으니 떨어지면 바로 나락이라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합니다.

  이렇게 몸 바쳐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데,

  왜 가족들은 이런 아빠의 희생을 몰라주는 걸까요?

  야속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

  온몸 부서져라 일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가족' 때문이죠.

  아니, '내 가족'을 위해서죠.(p.218)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하는데, 이것이 조금은 우울하게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내 가족이 있어서 벅차지만, 그래도 살만한 이유이고 행복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림과 글이 이렇게 조화로울 수 있을까? 40대를 사는 남자의 하루는 아픔을 보듬으며 감동과 웃음을 주고, 때로는 기발한 묘사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되새기게 한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모두가 사랑하며 살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메시지...

  서점에서 장 자끄 상뻬의 책을 천천히 넘겨보다가

  내려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그 시인의 시집 목차를 펼쳐

  그 시의 제목을 찾아내어 반복해서 읽었다.

  질투는 나의 힘(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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