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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단편선
0. 헨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오 헨리, 김욱동 역, [오 헨리 단편선], 비채, 2012.
O. Henry, [THE SELECTED WORKS OF O. HENRY].
[오 헨리 단편선]은, 작년 12월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름의 기분을 내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다. 내 책상 한쪽 구석에서, 가방 모퉁이에서... 항상 손이 닿을 거리에 놓여있던 책은 한 해가 지나고서야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되었다. 오 헨리라는 익숙한 이름, 다채로운 구성으로 선별된 30개의 단편, 고전이 주는 마음의 여운은 독서의 즐거움과 정신의 풍요로움을 한껏 누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원문을 감상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마지막 잎새 / 크리스마스 선물 / 낙원에 들른 손님 / 경찰관과 찬송가 / 사랑의 희생 / 제물의 신과 사랑의 신 / 다시 찾은 삶 / 추수감사절의 두 신사 / 사랑의 묘약 / 식탁에 찾아온 봄 / 어느 바쁜 브로커의 로맨스 / 20년 뒤 / 백작과 결혼한 초대 손님 / 구두쇠 연인 / 녹색 문 / 하그레이브스의 멋진 연기 / 가구 딸린 셋방 / 물방앗간이 있는 예배당 / 도시의 패배 / 인생은 회전목마 / 채광창이 있는 방 / 5월은 결혼의 달 / 시계추 / 할렘의 비극 / 세상 사람은 모두 친구 / 카페 안의 세계주의자 / 매혹의 옆모습 / 매디슨 광장의 아라비안나이트 / 어느 도시 보고서 / 붉은 추장의 몸값
미국의 문학에 관한 조예가 없어도 누구나 한 번쯤은 '마지막 잎새'나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것은 동화로, 만화로, 드라마와 영화로, 심지어는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하고 수많은 패러디와 문화를 생산해 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에서 얻게 되는 특별한 감동은 아주 매력적이다.
오 헨리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상 경험을 즐겨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 아무리 평범하고 범상한 일상 경험이라도 좀처럼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실제로 어떤 일상 경험에서도 그는 작품의 실마리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일단 그의 손에 들어온 소재는 마치 연금술사가 무쇠 덩어리를 황금으로 만들듯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곤 하였다.(p.398)
오 헨리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이다. 1862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그린즈버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숙모에게 위탁되어 자라난다. 불우한 환경과 책을 읽는 습관은 작가의 역량을 키우는 데에 최고라고 했던가? 그는 삶의 경험과 고전 문학의 탐독으로 작가의 소양을 쌓는다. 실제로 작품 곳곳에는 성경을 비롯하여 수많은 문학이 인용되고 있다.
또한, 감옥은 작가에게 어떤 문학적 영감을 부여하는 곳인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 ... 등 수많은 유명 작가의 명성 이전에는 감옥이 있다. 그도 젊은 시절에 잠시 은행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공금횡령 혐의로 체포되어 옥살이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세상과의 단절이 글쓰기의 몰입을 가져온 것인가? 아니면 파란만장한 인생의 여정이 창작의 디딤돌이 된 것인가? 어쨌든, 그의 시작은 감옥에서이다.
이렇게 오 헨리는 뉴욕 같은 대도시를 배경으로 자칫 진부하다 싶을 만큼 평범한 일상 경험을 다루되 그것에 낭만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손에 닿는 것마다 황금으로 만들어버리는 저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 왕처럼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상 경험이라도 일단 그의 손에 들어오면 로맨스의 빛깔을 띠게 된다.(p.406)
출소 후에 뉴욕으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데, 주로 뉴욕을 배경으로 평범한 일상의 낭만을 해학적으로 재치있고 간결하게 묘사한다. 그는 마흔여덟이라는 조금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략 300여 편의 단편을 남겼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 미흡해 보이는 서사 구조로 되어 있지만, 당시의 눈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였다고 한다. 여기에 엄선된 30개의 단편은 그의 문학성을 제대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버먼 할아버지가 오늘 병원에서 폐렴으로 돌아가셨대. 앓으신 지 겨우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야. 엊그제 아침 관리인이 아래층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봤더니 할아버지가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계시더래. 신발과 옷은 온통 젖어서 얼음처럼 차갑고. 그렇게 날씨가 사나운 밤에 도대체 할아버지가 어디를 갔다 오셨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는 거야. 그러다가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초롱이랑, 늘 두던 장소에서 꺼내온 사다리랑,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림붓들이랑, 초록색과 노란색 물감이 섞여 있는 팔레트를 발견했다지 뭐야...... 그리고 자, 창밖을 내다봐. 벽에 붙어 있는 저 마지막 담쟁이 잎새를 말이야. 바람이 부는데 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지 이상하지 않아? 아, 존시, 저건 버먼 할아버지가 그린 걸작품이야......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던 날 밤 그분이 저기에 그려놓으신 거거든."(p.19)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사랑의 희생'이다. 비슷한 패턴을 보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사랑이라는 생각에 잔잔한 여운의 파동은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약간은 허를 찌르는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 마지막 뒤집기가 돋보인 단편은 '낙원에 들른 손님', '경찰관과 찬송가', '도시의 패배', '카페 안의 세계주의자'이다. 언어의 유희와 함께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재치가 돋보였다. 마지막 절정의 묵직함이 아직도 대서사시의 기분으로 전해오는 '다시 찾은 삶'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고, '붉은 추장의 몸값'은...
영문학자의 충실한 번역은 세계문학을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게 한다. 그리고 후반에 수록된 '작품 해설'은 글을 읽으며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문학적 포만감을 충만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