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 살인사건 - 제3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2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니시무라 교타로, 이연승 역, [종착역 살인사건], 레드박스, 2013.

Nishimura Kyotaro, [TERMINAL(SHUCHAKUEKI) SATSUJINJIKEN], 2009.

제3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어느 유머 글에서 '종착역'이란 만취했을 때에 한 번씩 다녀오는 곳이라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아쉽게도 만취한 적이 없어서,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근교에 살고 있어서 아직 종착역의 여운을 깊이 느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기차로 10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면? 야행열차의 침대칸에서 밤을 새워야 한다면? 마침내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의 의미는 사뭇 달라질 것이다. [종착역 살인사건]은 도쿄 근교의 우에노 역과 도호쿠 지방 아오모리 역을 배경으로 한다.

  내가 '종착역'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종착역이 그와 동시에 출발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는 즐거운 여행의 시작점인 역이, 다른 이에게는 슬픈 이별의 종착역이 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종착역에서 인생을 느끼는 것이리라. 일본에서 가장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우에노 역 플랫폼에서 우두커니 서서 야행열차의 붉은 미등이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유난히 그런 감상에 사로잡히고 만다. 희망, 만남, 혹은 좌절과 이별을, 때로는 범죄마저 탄생시키는 것이 '종착역'이다.(p.427)

  니시무라 교타로의 [종착역 살인사건]은 [침대특급 살인사건]과 [야간비행 살인사건]에 이은 트래블 미스터리의 제3탄으로, 1981년에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은 작품이다. 두 개의 역과 달리는 열차에서 일어나는 연쇄적인 살인 사건은 밀실의 형태를 띠고 있고, 이것을 수사하는 경찰의 활약을 그린 본격 미스터리이다.

  "그래, 착각일지도 모르지. 여긴 도쿄니까. 하지만 이 우에노 역에는 우리 같은 도호쿠 사람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뭔가가 있어. 난 그게 냄새라고 생각해. 지금 막 도착한 열차에서 내린 도호쿠 사람들이 옮겨온 냄새일 수도 있고, 우에노 역이 도호쿠에서 상경해 온 사람들에게 종착역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스며든 도호쿠의 냄새일지도 몰라. 조금 이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꿈을 안고 상경한 도호쿠 사람들은 종착역인 이곳 우에노 역에 도호쿠라는 기억을 떨어뜨리고 최대한 도쿄 사람이 되어 역을 나서기 마련이야. 그러니 이 우에노 역에 도호쿠의 냄새가 스며들지 않았을까?"(p.58)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한 개는, 가메이는 아오모리 출신으로 도쿄에서 20년 이상을 형사로 일하고 있다. 갑자기 고향 모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옛친구가 찾아와 행방을 알 수 없는 여제자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해온다.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행적을 추적하다가 예상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한 개는, 아오모리 현립 F 고등학교에서 교내 신문 편집부 활동을 같이한 7명은 졸업 후에 모두 도쿄로 왔다. 진학하고 취업을 하고 사업을 하는 등 숨 가쁘게 도시인으로 살고 있다. 편집장이었던 미야모토는 7년 만에 고향으로의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고 친구들에게 초대 편지를 쓰고 승차권을 동봉한다. 오랜만에 우에노 역에서 만난 이들은 옛 기억을 되살리며 열차에 탑승하는데, 한 명씩 연쇄적으로 의문의 사고를 당한다.

  '고향이란 대체 뭘까?'(p.100)

  만약 이번 사건이 연쇄살인이라면 그 원인은 아오모리에서의 십팔 년간보다는 도쿄에서의 칠 년간에 있을 것 같아."(p.221)

  처음에는 우연한 사고로 여겼던 일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점점 타살의 의혹이 짙어진다. 한발 늦은 경찰은 수사의 방향을 재편하고 도쿄와 아오모리에서 7명에 관한 조사를 벌인다. 각자의 사연이 조금씩 드러나지만, 범행은 계속 진행되고 경찰의 가설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그리고 커다란 두 개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에 어떤 연관성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결합한다.

  아오모리에서 함께 자란 고교 동창, 7년간의 도쿄 생활, 고향 여행으로의 초대, 야행열차, 연쇄 살인사건, 가설을 세우고 추적하는 경찰, 실수, 의혹, 돌파구, 조각 맞춤... 그리고 강렬한 노스탤지어. [종착역 살인사건]은 여느 경찰소설과는 다르게 조직의 전형적인 가부장 구조나 과중한 업무로 가정에 소홀한 마초들의 묘사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단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시작한 도시 생활, 그리움은 종착역에서 매일 고향을 향해 출발하는 열차를 바라보며 삭이는 감정만이 드러난다. 예고된 희생자와 서서히 조여오는 연쇄 살인의 압박은 소설의 재미를 더하고 있으나, 방대한 경찰의 수사는 캐릭터의 개성을 약하게 하고 트릭에 맞춰진 초점은 메시지를 약하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시리즈는 모아서 읽어야 하고, 가능하면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고 했던가? 앞서 나온 두 권의 시리즈를 함께 읽어야 니시무라 교타로의 진정한 매력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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