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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 윌리 로니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ㅣ 내 삶의 작은 기적
윌리 로니스 지음, 류재화 옮김 / 이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윌리 로니스, 류재화 역, [그날들], 이봄, 2011.
Willy Ronis, [CE JOUR-LA], 2006.
어느 유명인의 전시회나 특별히 마련된 공간이 아니더라도 스쳐 지나가는 일상에서 가끔은 시선을 사로잡는 사진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런 사진은 어떻게 찍었을까? 우연인가, 연출인가? 초상권은? 어떤 렌즈를 사용했을까? 어떻게 보정을 했을까? ... 그리고 어떤 뒷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윌리 로니스라는 이름은 몰라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다란 바게트를 들고 가는 어린아이의 사진은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일상으로까지 파고든 한 장의 사진을 인연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 작은 삶의 기적
윌리 로니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윌리 로니스(1910 - 2009)는 '휴머니스트 사진작가'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서 가장 유명인이라고 한다. 솔직히 문외한이라 불행하게도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의 명성을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사진 스튜디오를 하는 아버지와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예술적인 감각을 가지고 사진에 입문하여 파리 곳곳을 누비는 사진가로의 삶을 시작한다.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그의 일생은 프랑스의 근대 역사와 함께하는데... 1934년 노동자 시위 촬영을 시작으로, 1938년 시트로앵 자벨 자동차 회사 파업을 담은 연작 촬영, 제2차 세계대전 전쟁포로 귀환 촬영, 1951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진 '규소폐증에 걸린 광부'를 촬영... 20세기의 모든 사건 현장과 이미지와 풍경 등을 '르포르타주'한다. 1953년부터는 프랑스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시사 화보 잡지 [라이프]의 사진기자가 되었으며...

그날은 1947년 일요일 오후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교외 술집 분위기를 좋아해 자주 가곤 했다... 술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중앙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고, 당장 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 위치를 잡아야 했다. 춤추는 장면 전체를 다 잡을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했다.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무대와 춤의 전체적인 움직임이었다. 그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의자 위로 올라갔다. 사진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 커플 바로 뒤에 내가 있다.(p.7)
디지털카메라와 보정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셔터를 누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1947년의 세상에서 기계식 카메라와 필름을 사용한다면,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사진가의 머리는 수많은 계산을 해야 하고 몸은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는 사진을 찍을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의자 위에 올라서서 보니,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양쪽의 두 아가씨와 아주 신나게, 아주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는 가운데 청년이었다. '그래, 이게 주제야.' 난 주제를 찾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나는 청년에게 좀 가까이 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가 나를 보았고, 두 아가씨와 정신없이 춤을 추면서도 내 뜻을 알아챘는지 점점 앞으로 나왔다. 바로 그 순간에 찍은 사진이다. 그는 정말 신처럼 춤을 추었다. 두 여자와 함께 그렇게 추려면 춤에 대단한 재능이 있어야 했다. 음악이 끝나고 그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을 때, 나는 얼이 빠졌다. 그는 외다리였다! 춤을 출 때는 그런 줄 몰랐는데.(p.8)
두 여자와 멋지게 춤을 춘 남자는 외다리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오른쪽 아가씨로부터 작가는 편지를 받았는데, 그녀는 신문과 잡지에서 가끔 이 사진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운데 청년은 이날 처음 만났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역동적인 몸동작이 그려진 한 장의 사진은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렘브란트의 얼굴들을 떠올렸다. 감싸면서도 드러내는 그 어슴푸레한 빛, 그들은 정말 거리와 외따로 떨어진 듯했다. 나는 전혀 빛을 바꾸지 않았다. 주변은 어두웠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곳은 오스만 가였다. 거리에는 별다른 조명이 없었다. 빛이라곤 진열창에 설치된 조명뿐. 그러나 그 조명은 진열창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 위로 반사될 정도로 강했다.(p.11-12)
진정 신비한 장면이 현현하였다. 그녀는 불현듯 중세의 동정녀 마리아가 되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하게, 나머지 다른 승객들은 다 어둠 속에 있는데 그녀 얼굴에만 빛이 들어온 그 순간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순간을 담아낼 수 있었다.(p.27)
드디어 혼잡과 희망으로 요동치는 분위기 속에 깡마르고, 피곤에 지친 포로들이 도착했다. 그 속에서 어떤 간호사가 한 병사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수송 기차에서 그를 돌봐준 간호사였을 것이다...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 사진을 어떤 책에 소개할 수 있었다.(p.49-50)
사진의 내용이나 담긴 이야기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찍어보고 싶은 사진은 빛을 최대한 이용하는 사진이다. 세 장은 사진은 단순하면서도 광선으로 아름답게 돋보인다.

이 사진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양쪽 스키 플레이트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도약할 때 내가 코치에게 매달려 뛰었기 때문이다. 내 등 뒤에 코치의 배가 닿는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코치의 두 스키 사이에 내 두 스키가 엇갈려 들어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각자의 오른쪽 스키다. 왼쪽은 화면 밖에 있다.(p.42)
1992년, 여든두 살의 나이, 스키를 탈 수 있다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나이이다. 평생을 사진가로 살아온 작가는 패러글라이딩하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열정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나 보다.

여행 중에 아내를 모델로 하여 사진을 찍기도 하고...









지금은 모두 노인이 되었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부인, 이 아이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빵을 사서 나올 때요. 빵을 들고 뛰어가는 모습을 찍어보고 싶은데요."
"그래요?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세요. 안 될 거 없죠."
나는 약간 뒤로, 좀 멀리 가서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빵을 사서 나온 아이는 이토록 귀엽게, 이토록 신나게 달렸다. 난 최상의 사진을 얻기 위해 아이를 세 번 뛰게 했다. 이 사진은 정말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엽서로, 포스터로 제작되어 심지어 뉴욕이나 유럽 여러 도시의 식당이나 빵집에서도 볼 수 있었다.(p.171-172)
사진보다 더 아름다운 사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사진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