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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우타노 쇼고 지음, 한희선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우타노 쇼고, 한희선 역,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블루엘리펀트, 2012.
Utano Shogo, [YAMORI], 2003.
우타노 쇼고의 매력...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왜 그토록 우타노 쇼고에 열광하는지 인제야 조금씩 그 이유를 알아 가고 있다. 신 본격 미스터리의 선두 주자로 그가 만드는 트릭은 끊임없는 호기심의 유발로 가독성을 높이고, 전혀 허술하지 않은 마지막 반전은 작품의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는 집을 소재로 하는 5개의 단편 모음이다. 가장 안전하고 아늑한 공간인 집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기묘한 사건... 과연 밀실 트릭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
인형사의 집
집 지키는 사람
즐거운 나의 집
산골 마을
거주지 불명
작품에 등장하는 5개의 집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꾸민, 외부와 동떨어진 산골 마을의,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는 집이다. 때로는 몽환적으로 신비감 있게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두어 묘사된다. 각각의 단편은 집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범상치 않은 캐릭터와 매우 특이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사건은 한순간도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처럼 자신이 만든 인형과 사랑에 빠진 남자, 철거를 앞둔 집을 끝까지 지키려는 아내, 치매로 오로지 과거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노인, 오지를 여행하는 관능 소설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아내를 괴롭히는 기묘한 일들...
피그말리온은 세상의 여자라는 여자에게는 완전히 환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고 저 여자고 아름다운 얼굴이나 노랫소리와는 정반대로, 제멋대로 오만하고 수치를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헤프게 웃어대는 여자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매일 묵묵히 일했습니다. 그는 제법 기술 좋은 조각가였습니다.(p.9)
그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여자를 혐오하게 된 것은 모친을 잃고 나서부터였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새어머니는 짐승이었다. 여자가 아니라 암컷이었다. 그것을 몸으로 알게 된 그는 마침내 세상의 여자라는 여자는 모두 추접스러운 생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p.11-12)
어머니는 여자 혼자의 몸으로 나를 키웠다. 낮에는 공사현장의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봉투 붙이기 부업을 했다. 나는 어머니가 자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어머니에게는 자주 맞았다. 시험에서 사십 점을 맞았다, 글씨를 못 쓴다, 젓가락을 잡는 방법이 이상하다, 급식 주머니를 들고 오지 않았다, 구두를 흙으로 더럽혔다, 목욕을 오래 한다, 감기에 걸렸다 -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맞았다. 어머니는 나날의 생활에 너무 지쳐서 그 스트레스를 딸한테 풀었다. 나는 어머니의 고생을 알기 때문에 내가 맞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냥 맞았다. 어머니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도록 숨을 죽이고 살았다(p.145)
그 여자는 마치코라고 한다. 마치코는 그를 '시게보'라 부른다. 때로는 '썩을 놈의 노인네'라고, 더 심할 때에는 '빌어먹을 놈'이라고 내뱉는다. 그리고 '빌어먹을 놈'이라 부를 때에는 항상 그를 발로 찬다. 그는 머리를 맞고 뺨을 꼬집히고 손가락을 꺾인다. 목이 졸려 기절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마치코로부터 그런 대우를 받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왜 때리는지 물어도 마치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온몸으로 저항을 해보아도 마치코는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고, 오히려 증오에 가득 차 그를 괴롭히는 것이다.(p.158)
여태까지 경찰은 어느 정도는 가즈야를 애 취급하고 있었다. 참고인 조사나 취조 때에도 엄하게 추궁하지 않는 여성 수사원에게 맡겼다.
그러나 결국 남성 베테랑 수사원이 나서게 되었다. 열다섯 살 소년은 겉보기보다 훨씬 교활하고 악랄했다.(p.358)
'프로버빌리티의 범죄'라는 것이다. 'Probability'란 '있을 법한 것'이라는 의미로 수학이나 철학적으로는 '확률' '개연성'으로 번역된다.(p.374)
독창적이고 기발한 트릭은 특유의 유머와 위트의 옷을 입고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하지만 이러한 소설적인 재미와는 별개로 곳곳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여성관'은 읽는 이를 조금 불편하게 한다. 여자는 악하고, 혐오의 대상이며, 무능하고,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서술한다. 욕망에 사로잡혀 결국 살인이라는 파렴치한 범죄가 일어나지만, 그것을 저지른 초라한 인간의 뒤에는 하나같이 여자가 있다.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는 여성은 어떤 모습일까?
우연히 만난 한 권의 책으로([납치당하고 싶은 여자], 블루엘리펀트, 2014.) 우타노 쇼고와 신 본격 미스터리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단순히 하나의 트릭과 반전이 아니라 여기에 또 하나의 뒷이야기를 첨가하는 점층적 이중구조는 오락성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풍성하게 한다. 앞으로의 독서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