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당하고 싶은 여자
우타노 쇼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우타노 쇼고, 민경욱 역, [납치당하고 싶은 여자], 블루엘리펀트, 2014. 

Utano Shogo, [SARAWARETAIONNA], 1992. 2006.

 

  신 본격 미스터리의 매력... 기막힌 트릭, 숨은 복선과 놀라운 반전, 개성 있는 캐릭터, 여기에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이 첨가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 작가와 독자의 팽팽한 신경전과 두뇌 싸움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한다. 사회 부조리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는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본격 미스터리를 경험하지 못해서인지 우타노 쇼고의 [납치당하고 싶은 여자]는 상당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저를 납치하고 남편에게 협박 전화를 걸어줬으면 좋겠어요."(p.7)

 

  최근에 '밀실 살인 시리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우타노 쇼고는 일본 미스터리를 즐겨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이 작품은 1988년 [긴 집의 살인]으로 데뷔한 이후, 1992년에 발표한 그의 초기작이다. 자신을 납치해 달라는 한 여자의 바람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강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납치 미스터리의 경우 범행의 동기 이외에 '납치'와 '감금'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하고, 범행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삼엄한 감시 안에서 '몸값'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납치를 주저했던 또 다른 이유는 납치범들이 남긴 교훈, 즉 '몸값 탈취가 목적인 납치의 경우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라는 것 때문이었다. 소문에는 이 같은 납치가 2차 세계대전 뒤 2백 건 정도 발생했으며, 특히 1970년대 이후로는 매해 열 건 가까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몸값을 손에 넣기도 전에 체포되고 몸값 탈취에 성공한 소수의 사람도 결국 나중에 체포됐다고 한다.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일반 범죄는 그 범죄 행위가 완료된 시점에서 경찰이 움직인다. 예를 들어 살인의 경우, 사체를 발견한 제3자가 경찰에 신고해야 수사가 시작된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제3자가 사체를 발견하지 못하면 경찰은 나서지 않는다. 횡령의 경우 역시 회사 돈을 1억을 쓰든 1백억을 쓰든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면 범죄가 아니다.

  그런데 몸값 탈취가 목적인 납치는 그 성격상 범죄가 진행되는 도중에 경찰이 등장한다. 범인 스스로가 자신의 범죄를 전화나 문서를 통해 제3자에게 밝히고 그 결과 필연적으로 경찰이 등장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경찰에게 정중하게 예고장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범죄가 성공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경찰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면서 범죄를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은 괴도 루팡이나 니주멘소 정도일 것이다.(p.82-83)

 

  작가는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내용을 전개한다. 어느 날, 함께 점심을 먹고 계산하는 사이에 아내는 사라진다. 그날 오후 늦게 한 통의 협박 전화가 걸려 오는데, 아내의 목숨을 담보로 3천만 엔을 요구한다. 경찰은 신분을 감추고 비밀리에 수사를 진행하지만, 범인은 음성사서함의 메시지 녹음을 이용하는 등 한 걸음 앞서서 움직인다.

  다른 편에서는, 심부름센터를 찾아온 미모의 여인은 "저를 납치해주세요"라는 다소 황당한 의뢰를 한다. 이것을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사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돌아가는데...

 

  신 본격 미스터리를 이끌어 가는 작가답게 소설은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만족할만한 재미를 준다. 납치를 계획하고 몸값을 받아내는 장면은 당시로써는 최고의 통신 기술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트릭으로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단순한 납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은 얽히고설켜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 내는 점층적 이중 구조로 되어 있고, 주인공은 함정에 빠져서 이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캐릭터의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고 여성에 관한 차별적인 태도가 살짝 아쉽지만, 수려한 번역과 함께 빠른 사건 진행은 책을 단숨에 읽을 수 있게 한다.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에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번 번역을 통해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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