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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열차 ㅣ 아카가와 지로의 유령 시리즈 1
아카가와 지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12월
평점 :
아카가와 지로, 한성례 역, [유령 열차], 씨엘북스, 2012.
Akagawa Jiro, [YUREI RESSHA], 1978.
역시 세상은 넓고 모르는 작가는 많은가보다.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로 잘 알려진, 소문으로만 들었던 아카가와 지로의 작품을 드디어 만났다. 가볍고 유쾌한 '유머 미스터리'라서 최근의 젊은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1976년에 등단하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일본의 원로 작가라고 한다. [유령 열차]는 그의 데뷔작이다.
유령 열차
유괴범의 배신
얼어붙은 태양
비옷을 입은 시체
선인촌(善人村) 마을 축제
이 책은 흔히 '유령 시리즈'로 불리는데, 1976년부터 2011년의 [유령 주의보]까지 총 23권을 출간하였다. 유령이라는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35년간의 꾸준한 집필이라고 하니, 글쓰기 장인의 인고한 세월과 그 뒤의 영광이 보이는듯하다.
[유령 열차]는 모두 5개의 단편으로, 각각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소설의 재미를 위해 '역설'이라는 코드를 사용하고 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난 전혀 평범하지 않은 열차, 완벽한 범행을 꿈꾸는 자의 결정적인 순간의 배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휴양지에서 얼어붙은 사건, 비가 내리지 않는 공간에서 비옷을 입은 시체,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선인들이 사는 마을의 흉악한 범죄... 그리고 또 하나의 매력은 여대생 나가이 유코와 40대 우노 경감이 이루는 콤비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은 두 사람의 좌충우돌은 살인 사건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어느 순간 허를 찌르는 냉철한 추리로 소설에 빠져들게 한다.
'유령 열차'는 일종의 밀실 트릭으로, 온천 여행객들이 달리는 열차 안에서 사라진다. 나가이 유코와 우노 경감은 사건을 수사하며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데, 톡톡 튀는 개성과 미묘한 19금으로 1970년대의 유머를 맛볼 수 있다. 과연 유령 열차의 비밀은 무엇인지...
'유괴범의 배신'은 신문을 오려내어 만든 협박 편지와 딸의 실종 사건이다. 첫 번째 만남 이후 아무런 기약 없이 떨어져 있던 두 주인공은 또 다시 사건 현장에서 만나게 되고, 점점 미묘한 감정으로 흐른다. 과거의 사연과 현재의 사건 그리고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얼어붙은 태양'은 한창 뜨거운 여름날에 호텔 방에서 동사한 시신이 발견된다. 연인으로 발전한 우노 경감과 나가이 유코는 또다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주변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라! 그러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비옷을 입은 시체'는 비가 오지 않는 날에 지하 서고에서 낡은 비옷에 고무장화를 신고 우산을 든 시체가 발견된다. 전혀 어울리지 않은 우노 경감과 나가이 유코는 연인처럼, 때로는 삼촌과 조카처럼 행세하며 수사를 진행하는데, 연이어 비슷한 복장으로 사람이 죽어간다...
'선인촌 마을 축제'는 선량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선인촌 마을에 나가이 유코와 우노 경감이 초대된다. 마을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푸는데, 그 뒤에는 어떤 음모가 꿈틀대고 있다...
대부분은 살인 사건을 다루지만, 두 주인공의 므흣(?)하면서도 아웅다웅하는 모습으로 오히려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출간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기분보다는... 그 시절에는 이런 분위기에 대중들의 관심이 쏠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유치하거나 논리성이 떨어지지 않은 본격 추리의 맛은 일품이다. 나이 차이가 확연한 두 주인공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다음의 시리즈가 궁금하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