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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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 노진선 역, [스노우맨], 비채, 2012. 

Jo Nesbo, [THE SNOWMAN], 2007.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아침 11시. 무채색 하늘에서 쏟아지는 함박눈이 외계 행성의 무적함대처럼 로메리케의 언덕과 정원, 잔디밭을 침공했다.(p.12)

 

  한여름에 읽은 한겨울의 서늘한 연쇄살인의 향연, 마치 SF의 한 장면처럼 시작하는 이 소설은 스칸디나비아반도 서쪽에 위치한 눈의 도시 오슬로와 베르겐을 배경으로 하는 스릴러입니다. 해리 홀레 반장(경감)이 등장하는 시리즈로, 개인적으로는 [레드브레스트](비채, 2013.)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만나는 요 네스뵈의 작품입니다. 전작과 비교하여 계속해서 등장하는 익숙한 배경과 주변인물은 독서의 친근감을 더해줍니다. 비슷한 구조이면서 점점 진화하는 작가의 글솜씨는 또 다른 재미를 주고요. 반면에 서서히 망가지는(?) 주인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기도 합니다. 연대기적인 구성으로 생생한 시대묘사는 마치 현실의 세계를 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편의 영화로 만들기에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바다표범들이 바다에 나가 먹이를 찾기 위해 베링 해협을 떠날 때가 오면, 수컷은 암컷을 죽이려고 할 겁니다. 왜냐고요? 베르하우스 암컷 바다표범은 절대 같은 수컷과 두 번 짝짓기를 하지 않으니까요! 암컷 입장에서는 유전형질의 생물학적 위험성을 분산시켜야 하거든요... 생물학적으로 볼 때 암컷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짝짓기를 하는 게 당연하고, 수컷은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수컷은 다른 아기 바다표범들이 자신의 자손과 같이 먹이를 두고 경쟁하는 걸 막고자, 암컷을 죽이는 겁니다."(p.22)

 

  소설은 동물적인 본능이라고 할까요? 생물학적인 몇몇 이론을 토대로 앞으로의 사건 전개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레드브레스트]에서는 제목에서와같이 진홍가슴새(개똥지빠귀)의 특이한 겨울나기를 통해서 남들과는 다른 평범하지 않은 삶을 선택한 사람들과 그로 인한 노르웨이의 어두운 역사를 이야기했다면, 여기에서는 바다표범의 특이한 번식 행동을 통해서 거짓된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다루고 있습니다.

 

  요나스는 식탁 의자에 올라가 밖을 내다보았다. 정말로 집 앞 잔디밭에 눈사람이 있었다. 엄마의 말처럼 커다란, 대형 눈사람이었다. 눈과 입은 조약돌로 코는 당근으로 만들었다. 모자도, 목도리도 두르지 않은 채 산울타리에서 꺾은 나뭇가지로 만든 듯한, 앙상한 팔 하나만 있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바라보는 방향이 잘못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사람이란 원래 길가 쪽, 그러니까 열린 공간을 바라보며 서 있는 법인데...(p.39)

 

  늦가을, 겨울의 문턱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여인들... 실종 신고가 들어오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어떠한 범행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단순 가출로 여기는데, 하지만 연쇄적으로 실종이 일어나고 현장에는 어김없이 눈사람이 놓여 있습니다. 해리는 눈사람이 발견된 장소를 살인 사건의 현장으로 생각하고, 비슷한 범행의 전과자들을 살피며, 실종자들 사이의 어떤 연관성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한 가지 뚜렷한 접점을 찾아내는데...

 

  "과학자들이 경험이 많은 권투선수들의 뇌 활동을 측정한 적이 있어. 권투선수들이 시합 도중에 꽤 여러 번 의식을 잃는 거 알아?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여기서 잠깐, 저기서 잠깐 의식을 잃는다지. 그런데 몸은 마치 그게 일시적이라는 걸 아는 듯이, 통제력을 발휘해서 다시 의식이 들 때까지 버틴다는 거야... 그 오두막에서 나도 넋이 나갔어. 단지 차이점이라면 오랜 경험상 그게 일시적이라는 걸 내 몸이 알았을 뿐이야."(p.264)

 

  수사팀의 공조로 범행의 몇 가지 패턴이 드러납니다. 실종된 여인은 모두 아이가 있는 유부녀라는 것, 범행 현장에는 눈사람이 남아 있다는 것, 매년 첫눈이 내리는 날에 실종자가 발생했다는 것, 이름이 알려진 유명 형사에게 흔적을 남긴다는 것, 그리고 최근에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범행의 주기가 짧아졌다는 것... 소설은 1980년과 1992년의 과거와 2004년의 현재를 교차합니다. 단순히 현재의 연쇄 실종 사건만이 아니라 과거의 어느 사건과 이런저런 얽히고설킨 사연 속에서 마침내 극에 달한 범행을 서술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사건을 맡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동료들은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납니다. 이것을 잊기 위해 술에 의지하지만, 결국에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고... 살은 마르고,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질 정도로 일에 몰두하며 살아갑니다. 마치 권투 선수가 경기 중에 조금씩 의식을 잃으며 경기를 하다가 결국에는 어느 순간 뇌에 치명적인 손상이 오는 것처럼...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주인공 캐릭터를 보면서 인간의 굳은 의지와 인간의 연약함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레드브레스트]와 [스노우맨] 사이의 내용이 매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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