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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평점 :
한승원, [겨울잠, 봄꿈], 비채, 2013.
아마도 작년 말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 인터넷 서점의 블로그에서 한승원 작가의 신작을 연재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다는 것인데, 얼마 되지 않은 자료를 가지고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여 역사소설을 쓴다는 것이 매우 신기했습니다. 새삼스럽게 이것이 한평생 글을 써온 장인의 능력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무튼, 한겨울의 노고와 열정은 고스란히 원고지로 옮겨졌고... 완연한 봄이 되어서 진노랑의 완성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국내 작가의 역사소설은 오랜만입니다. 역사는 하나의 사실(fact)을 두고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른 의미와 해석을 할 수 있어 흥미롭지만, 그만큼 책을 선택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더구나 역사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고, 개인적인 성향이 특유의 진지함과 무거움을 싫어해서 한동안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겨울잠, 봄꿈]은 실제 역사를 토대로 하고 있으나, 역사보다는 문학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오 척 일 촌(약 155센티미터)의 키와 아흔 근(54킬로그램)의 무게인 작달막한 전봉준의 몸뚱이에는 현상금 천 냥과 군수 벼슬이 걸려 있었다. 그의 얼굴로 날아드는 차가운 어둠 속의 눈발은 차가운 절망의 새까만 가루였다.(p.10)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으로 대표되는 조선 후기(고종 31, 1894년) 봉건 사회의 수탈은 극에 달했고, 결국 농민들은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부정부패의 척결과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대규모 항쟁을 일으킵니다. 그 중심에는 녹두장군이라 불리는 전봉준이 있었고요. 하지만 승승장구하며 한양으로 진격하던 동학은 공주 우금치에서 현대식 무기를 앞세운 일본군에게 대패하여 뿔뿔이 흩어집니다. 이후에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인 저항을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고 전봉준에게는 천문학적인 현상금이 걸립니다. 소설은 이러한 절망 가운데 잠행으로 시작합니다.
민중들에게 구세의 희망이었던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에는, 스승인 예수를 팔아먹었다고 알려진 유다라는 제자가 있었다. 심신이 지친 데다, 하늘과 연계한 민중운동에 한계를 느낀 예수는 여느 때 자기와 은밀하게 속말을 나누곤 하던 유다에게 밀고를 하라고 명령했다. 유다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그 명령에 따라 밀고했고, 그 대가로 사제와 원로들에게서 은돈 서른 닢을 받았다. 예수는 자기가 머지않아 빌라도의 공권력 속으로 잡혀 갈 것임을 제자들에게 예언하고 최후의 만찬을 베풀었다... 그 결과, 머리에 쓴 가시관 때문에 피를 줄줄 흘리면서, 스스로 어깨에 짊어지고 올라간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는 청사에 기록된 바 모든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순교한 성자가 되었는데, 유다는 스승을 팔아먹은 만고의 배신자가 되었다. 양해일은 전봉준이 김경천에게로 가겠다고 했을 때, 예수의 최후와 유다를 떠올렸다.(p.12-13)
전봉준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그는 순창 피로리로 김경천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일단 몸을 숨겨 지쳐있는 심신을 달래고 장정을 다시 모아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희망보다는, 잡으려 하는 자에게 잡혀주려는 것입니다. 잘린 그의 목이 종로 네거리에 걸리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피를 보여주기 위해... 명분 있게 잡혀 명분 있게 죽기 위함입니다.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옛 동지는 밀고자가 되어 새벽녘에 민보군을 이끌고 옵니다. 전봉준은 몽둥이질에 다리가 꺾이고 포승에 묶입니다. 동구 밖에서 매복해 있던 일본군이 몰려와 강제로 입을 벌리고 재갈을 물립니다. 그리고 몸뚱이를 가마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철동이, 을식이, 바우, 뒷방이는 전봉준을 태운 가마를 메고 밤길을 달렸다. 그들은 동학군으로 나갔다가 도망쳐 온 사실을 물시해준다는 것과, 백 냥씩의 돈이 생기게 된다는 즐거움으로 발을 땅에 딛지 않은 듯싶었다.(p.42)
가마 안에 앉은 전봉준은 두 가지 고통에 시달렸다. 하나는 으깨진 발등과 부러진 정강뼈, 재갈 찬 입의 고통이요. 다른 하나는 사로잡힌 채 눈을 뻔히 뜨고, 일본군의 잔혹한 만행들을 보아야 하는 치욕과 분노의 고통이었다.(p.106)
"사실은 제가 장군이 살아나실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구만이라우. 장군은 제 말대로만 하시면 되는 것이어라우. 장군에게 행운이 다가오고 있어라우. 제가 누군지 아시오? 저는 대일본제국 정계의 막강한 실력자인 이토 히로부미 각하의 양아들이어라우. 제 아버지 이름을 조선식으로 말한다면 이등박문이고, 이토 겐지라는 제 이름은 이등건차여라우."(p.90)
순창 피로리에서 한양까지 천 리 길의 압송이 시작됩니다. 철동이, 을식이, 바우, 뒷방이는 평생을 억압 속에서 노예처럼 일하고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긴 이름 없는 민중입니다. 잠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동학에 몸담기도 했지만, 이제는 돈 몇 냥에 팔려 가마꾼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가마를 멘 어깨가 짓눌리고 다리가 뻐드러져도 마을 앞 옥답 서 마지기가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호송 행렬은 담양, 나주, 광주, 하남, 장성, 정읍, 전주, 삼례를 지나 공주 우금치에 이릅니다.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글 선생을 하며 살아온 전봉준은 접주가 되고 농민군의 대장이 되어 동학을 이끌던 며칠 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일본군의 기관총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십만 대군을 싹 쓸어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수많은 백성의 죽음과 패전의 책임은 무력감으로 영혼을 짓누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가마 안에서 멀미를 괴로워하고, 다친 다리와 묶인 팔의 욱신거림을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안을 명목으로 백성을 짓밟는 일본군의 만행에 치욕과 분노를 느낍니다.
조선인 천종관이라는 국적과 이름을 버리고 일본인 이토 겐지로 살아가는 남자... 그는 조선은 더러운 나라이고 희망이 없음을 말하며 전봉준에게 은밀한 제안을 해옵니다.
"장군은 반드시 살아나야 혀라우. 살아나서 일본으로 건너가 제 아버지 이토 히로부미 각하를 만나가지고, 새 사람이 되어야 혀라우. 그래가지고, 제 아버지가 주선해주는 대로 영국이나 미국에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 새로운 조선을 위해 진짜로 더 큰 일을 해야 혀라우."(p.131-132)
"장군, 확실하게 일본으로 건너가시겠다는 마음을 굳히시고 마음속에서 흥선대원군이라는 존재와 동학군이라는 허깨비의 무리를 지우십시오.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이나 명분보다는 시적이고 감성적인 가슴으로 현실을 받아들이십시오. 조선 땅의 동학군이 전멸해버리고, 일본군이 사실상 조선 땅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성적으로, 냉엄하게 받아들이십시오."(p.282)
"제 아버지 이토 히로부미 각하가 말씀하셨어라우. 오래 사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인 것이라고라우. 조병갑이 같은 탐관오리들보다 오래 살아야 혀라우."(p.300)
한양에 도착하면 반드시 죽게 될 전봉준에게 이토 겐지는 아주 매력적인 제안을 해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정치력으로 사형을 면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의 양아들이 되어 영국이나 미국 유학을 할 수 있다는...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와 정부 요직에서 탐관오리를 제거하고 새 조선을 만들라는... 얼마나 달콤한 유혹입니까...
지금 나 이렇게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혀를 물어 끊고 자결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다. 죽어서는 안 된다. 지금 죽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그러면 살아 어찌할 것인가. 한양으로 가야 한다. 몇 천 냥씩에 벼슬을 팔아먹은 탐관오리들, 나라를 썩어 문드러지게 한 벼슬아치들의 얼굴에 내 피를 뿌려주어야 한다. 잘린 내 목을 종로 네거리 한복판에 내걸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라고 해야 한다. 아니다. 이토의 말대로, 일본으로 건너가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이 되어야 한다. 영국이나 미국이나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새 문물을 공부하고, 전혀 새 사람이 되어 조선으로 되돌아와, 나라를 이 꼴로 썩어 문드러지게 해놓은 자들을 정치해야 한다. 새로운 조선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려면 일본의 개가 되어야 한다. 일본의 개가 된 다음, 조선을 망하게 한 사람을 이토보다 더 잔인하게 물어뜯어야 한다.(p.220)
잡히기 전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던 전봉준은, 잡힌 후에는 세 가지 갈림길에서 고뇌합니다. 더러운 세상의 치욕을 뒤로하고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어 자결할 것인지, 아니면 한양으로 올라가 종로 네거리에 피를 뿌리며 명분 있게 죽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토의 제안대로 살아남아 일본의 정치적 앞잡이가 될 것인지... 끊임없는 이토의 회유와 살기 위한 본능의 몸부림 그리고 이성의 판단 사이에서 한 인간은 고뇌하고 고뇌하고 고뇌합니다.
속담에 '산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길목에서 누군가 삶을 제안합니다. 유력한 정치가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답니다. 신세계라고 여겨지는 곳으로 보내준다고 합니다. 다시 돌아와 복수할 기회를 준다고 하는데... 이것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전봉준은 역사의 전설로 남게 된 것 같습니다.
[겨울잠, 봄꿈]을 읽으며 얼마 전에 읽은 하무로 린의 [저녁매미 일기](비채, 2013.)가 자꾸 연상되었습니다. 하나는 일본의 역사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역사소설이라는 것. 하나는 지나친 연공으로 봉기를 계획하는 농민을 설득하여 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삼정의 문란으로 봉기하는 농민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 예정된 죽음을 기록했다는 유사함이 있으나, 하나는 정도의 삶을 살다가 할복을 명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을 꿈꾸다가 참수를 명받은 것.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애잔함이 전체를 지배하지만, 하나는 강인함과 의연함이 느껴지고, 다른 하나는 처절함과 한이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맛깔스러운 글맛이 일품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