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와 몬스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8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가이도 다케루, 권일영 역, [나니와 몬스터], 비채, 2013. 

Kaidou Takeru, [NANIWA MONSTER], 2011.

 

  개성과 다양성의 존중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대한민국에서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즐긴다는 것은 아직도 조선 시대의 폐쇄적인 사고에 얽매여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한 인간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함께 누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학연의 끈이 없다는 이유로, 가장 많이 팔리는 작품은 순수문학의 범주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문단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문학상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도대체 왜 이러한 차별과 편 가르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르와 소재에서 우리보다 관용적이고 유연한 일본 문학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나니와 몬스터]는 오랜만에 만나는 가이도 다케루의 소설입니다. 메디컬 서스펜스, 메디컬 엔터테인먼트라고 불리는 그의 작품은 의학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과 기발한 상상력이 결합하여 의료계의 다양한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전의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예담, 2007.)에서는 대학병원을 배경으로 의료 시스템의 문제와 그로 말미암은 의료 종사자들의 고뇌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은행나무, 2008.)에서는 지역 산과 의료 체계의 모순과 출산 시스템의 붕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 더 진화하여 폭넓은 범위에서 후생노동성의 의료 정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흐음.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 조짐'이라. 새, 돼지에 이어 이제 낙타인가? 기묘한 일이로군."(p.25)

 

  "첫째, 전염성이 강합니다. 인플루엔자 캐멀이 신종이고 국민 대부분이 면역력이 없어 감염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기초 질환이 있는 환자,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심각한 증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습니다."(p.53-54)

 

  '나니와'는 오사카 지역을 가리키는 옛 이름입니다. 지금도 곧잘 사용하는 명칭인데, 여기에서는 거대한 행정 시스템을 갖춘 가상의 도시로 그려집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에서 발생한 신종 인플루엔자 캐멀은 점차 전 세계로 확산하여 위기감이 고조됩니다. 당국은 숨 가쁘게 공항을 중심으로 유입 차단 방역을 시행하고, 몇 개의 도시에 우선하여 진단 키트를 배포합니다. 하지만 방역에 구멍이 뚫린 것일까요? 해외 여행자가 아닌데도 감염의 증상이 나타나고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것을 집중적으로 보도합니다. 나니와는 심각한 사회 혼란을 초래하고 지역 경제는 마비되어 파산 위기에 처합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진단 키트가 있는 도시에서만 질병이 보고되는 이상 현상이 감지됩니다. 여기에는 어떤 음모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 개업의는 축구로 말하자면 골키퍼 같은 신세야. 잘해봤자 본전이고 실수하면 신문에 큼직하게 나오지. 그래도 골키퍼가 우리보다는 나아. 골키퍼는 페널티킥을 멋지게 막아내면 신문에 톱기사로 실리지만, 개업의는 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해도 기자들이 전혀 기사를 쓰지 않잖아. 그러다가 실수하면 원수라도 진 듯이 기사를 써대고. 일할 맛이 나지 않아."(p.23)

 

  "기자 녀석들은 뭔가 실수가 없는지 그것만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니까. 우리가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기사를 써대고. 하기야 월급쟁이 의사들보다 많이 버는 건 사실이지만, 회계 처리하고 손님 접대하고 설비투자 비용까지 다 계산에 넣으면 그리 많지도 않잖아. 게다가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한번에 훅 가는데, 그런 터무니없는 기사나 쓰다니."(p.38)

 

  "개업의는 수입이 많다고 언론에서 떠들지만 이런 경리 업무까지 혼자 처리해야 하고 그것도 자칫 실수하면 큰일나죠. 야구선수를 생각해보라죠. 방망이로 공을 때리는 녀석들이 그렇게 높은 연봉을 받아도 누구 하나 투덜거리지 않잖아요? 그런데 목숨을 구하는 의사가 수입이 좀 많으면 아우성치며 발목을 잡고 늘어지죠. 이 나라는 이상해요."(p.45)

 

  손에 든 무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변호사라면 이런 상담도 돈을 받는다. 원래 이런 상담 또한 전문 지식을 제공하는 일이니 의료 상담료를 청구해야 한다는 논의가 의사회 내부에서도 있다. 하지만 건강에 관한 문제를 그렇게 획일적으로 대응하면 사회 의료는 설 자리가 없다.(p.70)

 

  어찌 보면 언론은 치밀하게 사회 감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의학을 전공한 작가의 시선은 그보다는 개업의의 고충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기사의 호들갑으로 부정확한 공포가 전달되는 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관료는 법을 잘 안다. 좋게 이야기하면 유연하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법을 즉흥적으로 적용한다. 검찰이 정의를 들이밀어도 속으로는 웃고 있다. 그런 녀석들이 조직 방어를 위해 일치단결하여 자기 정당화에 매진하면 만만치가 않다. 관료는 자기들 이익을 위해 법률 조항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변경하여 법에 담긴 참뜻을 제거한다.(p.338)

 

  사법의 정의를 집행하는 기관인 검찰. 그건 좋다. 하지만 그 검찰이 조직적인 부정행위를 저질렀을 때는 대체 누가 처단하는가...

  검찰은 누구에게도 감시를 받지 않는다. 검찰이야말로 사회의 최고 권력이라는 이야기다.(p.339)

 

  "사법과의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치는 품성이 형편없고 약점이 너무 많아서 상대를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힘이 없는 반란군인 셈입니다. 제3의 권력인 언론은 여기저기 펼쳐진 검찰의 보이지 않는 손 안에 있습니다. 그들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한다면 검찰의 폭주를 억제할 수 있지만 그들은 이빨 부러진 늙은 개가 되어 주인에게 꼬리나 칠 뿐입니다."

  ...

  "그럼 지금 대체 누가 사법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

  "제어할 수 있는 존재는 의료뿐입니다."(p.440)

 

  작가는 국가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와 언론을 담당하는 기자의 팽팽한 긴장 관계뿐만 아니라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와 사법을 담당하는 검찰의 날 선 신경전을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조금은 과장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료를 이 모든 것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의사와 기자, 검사와 관료, 의사와 검사, 그리고 의사와 관료 사이의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구조가 매우 흥미롭네요.

 

  인적으로 다른 사회파 미스터리와 비교하여 가이도 다케루의 작품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사회(의료)의 부조리를 고발하여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가상의 도시 나니와를 의료 행정, 의료 공화국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현실에서의 의료 입국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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