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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를 쓰는 방법
미국추리작가협회 지음, 로렌스 트리트 엮음, 정찬형.오연희 옮김 / 모비딕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로렌스 트리트, 정찬형, 오연희 역,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 모비딕, 2013.
Lawrence Treat, Mystery Writer's of America, [MYSTERY WRITER'S HANDBOOK], 1976.
남이 쓴 글을 읽고 하는 날카로운 비평과는 다르게 막상 내가 글을 쓰려고 하면 수많은 난관에 부딪힙니다. 좋은 글을 쓰는 요령, 특히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것일까요? 글쓰기와 연관된 책은 오래전에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해냄, 2007.)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내용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좋은 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습을 통해야 한다는 평범하면서도 절대적인 진리를 말했던 것 같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이나 탁월한 능력을 타고나지 않는 이상 창작의 과정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땀과 눈물의 결실이라는 생각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재인, 2010.)을 읽을 때였습니다. 목차를 보면 아시겠지만,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12가지 패턴과 탐정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약간 비틀어서 나름의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쓴 소설입니다. 문득 작가는 독자들이 알지 못하는 추리소설의 어떤 법칙이나 작법을 이미 통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추리소설을 쓰는 어떤 규칙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아주 특별한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수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수개월에 걸친 시행착오를 덜 수 있는 지름길과 암시, 그리고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작가가 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과 규칙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종국에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좌절과 희망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전업 작가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 길을 걸어가건 삶의 내용이 풍성해진다는 건 마찬가지다. 이 책을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앞으로 이전보다 글을 비판적으로 읽고, 좀 더 잘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p.8-9)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은 미국추리작가협회(MWA, Mystery Writer's of America)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응답을 토대로 1976년에 발표한 내용입니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1800년대의 에드거 앨런 포나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고, 1950~60년대의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의미는 절대로 퇴색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추리작가들이 공개한 글쓰기의 노하우는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읽고 감상하는데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1) 왜, 글을, 그것도 추리소설을 쓰는가?(p.19)
2) 한 편의 이야기로 꽃피울 수 있도록 씨앗이나 싹을 제공한 아이디어는 무엇이었는가?(p.41)
3) 언제, 어떻게 글을 쓰는가? 당신의 작업 방법을 개략적으로 알려 달라.(p.94)
4) 현재 추리소설에서 나타나는 상투성 중에 가장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p.267)
5) 글을 쓸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이 있거나 부분적으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p.275)
6) 추리소설가로서 오랜 시간에 걸쳐 터득한 최고의 비결은 무엇인가?(p.305)
설문은 여섯 개의 질문으로 되어 있는데, 수백 통이 넘는 회신 중에서 엄선된 내용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좋아하는 일이고 자신의 삶이라는 응답과 생계를 위해서 하는 일이고 그 과정은 심히 고되다는 진솔한 고백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중요시하고 신문기사를 모으거나 꿈을 기록하는 일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일상입니다. 제목을 정하고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결론이나 주제를 먼저 정하고 글을 쓰기도 합니다.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데, 한 가지 공통점은 대부분 글을 쓰는 일을 규칙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플롯이라면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대단원까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이 사실보다 분명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대단원이 마련되어 있어야만 각 사건들과 분위기를 정해진 의도대로 끌고 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좋은 플롯에 필수인 적절한 결말이나 인과관계를 갖출 수 있다.(p.68)
기발한 아이디어로 남들과 다른 플롯과 이야기 구조를 세울 수 있다면, 장르와 시리즈를 정하고 편집자를 사로잡는 개요를 작성할 수 있다면, 적절한 시점으로 독자의 시선을 끄는 실감 나는 인물이 등장한다면, 배경과 분위기가 무르익어 서스펜스를 자아내고 수려한 문체로 작품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면, 상투적인 함정을 피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맥락으로 논리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것은 우연이 아닌, 작가의 의도이고 치밀한 계산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여기에 유익한 세부적인 조언을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스터리와 스릴러는 순수문학과 비교하여 오락성을 추구한다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문학성이나 작품성과는 연관이 없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추리소설은 단순히 사건의 수수께끼를 푸는 퍼즐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다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양상, 특히 인간의 내면세계를 매우 잘 반영하기에 항상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죄악의 문제를 다루기에 전혀 가볍지 않은 장르입니다. 추리소설을 쓰기에는 아직 이르나 추리소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눈을 뜨게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