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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할런 코벤, 최필원 역, [숲], 비채, 2012.
Harlan Coben, [THE WOODS], 2007.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애굽기 20:5-6)
만약에 냉전 시대에 국가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 했다면?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모를 대신 고발하고, 이러한 국가를 떠나 살다가 끔찍한 사건에 연류되었다면? 대를 이어 견디기 어려운 고난이 계속된다면? 기독교 신앙에서 오래전에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신의 은혜와 저주에 관한 해석으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물론 요즘에는 다른 해석을 하고 있지만, 기복 신앙에 깊이 물든 한국 교회에서는 한동안 커다란 관심이었다. 실제로 다양한 인간의 삶 속에서 부모의 고단한 인생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현상은 종종 일어난다. 그리고 부모는 이러한 대물림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한다. 정말로 알게 모르게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는 것이고, 험난한 인생의 굴레가 존재하는 것일까?
죽음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동생의 살인사건과 아내의 때 이른 죽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동생의 죽음이 나를 지금의 직업으로 이끈 셈이다. 이제 나는 법정에서 세상의 부조리와 싸울 수 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살아가려고,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한다. 사회의 위협이 되는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내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우리 가족이 누리지 못했던 것을 주려 애를 쓴다. 바로 종결이라는 것.(p.13)
할런 코벤의 [숲]은 한 가족의 기구한 운명의 기록이다. 공산당이 집권하던 구소련에서 아버지는 자신과 자녀를 지키기 위해 대신 아내의 부모를 고발한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고, 아버지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미국에 이민을 온다. 하지만 여름 휴양캠프에서 여동생과 친구 몇 명은 숲으로 들어가 살해 및 행방불명되고,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그 사이에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숲을 헤매는 삶을 살다 죽음을 당한다. 나는 결혼을 했지만, 사랑하는 아내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제는 어린 딸아이만 남았다. 소설은 폴 코플랜드라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내 여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희망이 훨씬 더 잔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동안 나는 도끼날이 번득이는 참수용 도마에 목을 얹어 놓은 듯한 기분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며칠을, 몇 달을, 몇 년을 살아왔다. 이제는 오히려 도끼가 빨리 내려치기만을 기다린다. 내 목이 베어져야 모든 게 청산될 테니까. 사람들은 어머니가 집을 나간 건 그 사건에 대한 충격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어머니가 떠난 건 우리가 그 사건의 진실을 절대 증명하지 못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p.23-24)
절망과 희망이 뒤섞여 검사로서 사회 정의를 위해 살아가던 어느 날, 20년 전에 완전히 종결되지 않은 여동생 사건의 증거가 하나 둘 나타난다. 사건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은 모두 증거를 부정하고 재수사를 원하지 않지만, 폴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사건의 중심으로 점점 다가서는데...
"대학시절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쌍둥이였어. 일란성이 아닌 이란성이었지. 중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일란성 쌍둥이들이 유대관계가 더 강하다고들 하잖아. 아무튼, 2학년 때 그 애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어. 내 친구는 아주 이상한 반응을 보였어. 물론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그 애의 또 다른 일부는 크게 안도하더라고. 자신의 차례가 지나갔다는 거지. 자신의 남은 인생은 무탈할 거라 믿게 되지. 가슴 아픈 비극은 살면서 딱 한 번만 찾아온다면서 말이야. 무슨 얘긴지 이해가 돼?"
루시가 말했다.
"그래."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일생을 무탈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너처럼 정해진 몫을 훌쩍 넘어가는 시련을 줄줄이 겪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시련을 숱하게 겪어도 전혀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야."(p.277)
[숲]은 할런 코벤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사건을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나는 20년 전에 있었던 숲에서 여동생과 관련된 미해결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검사로서 흑인 소녀를 강간한 사건의 재판이다. 그리고 별개의 두 사건은 어느 순간에 접점을 이루어 폭발적인 스릴과 함께 흥미로운 반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여기에서 코벤의 명성이 절대 헛되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은 시선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제공한다. 잘못된 부모의 사랑, 험난한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갈망,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가는 이들, 가족을 잃은 슬픔, 복잡한 시대의 올바른 정의...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코벤의 이야기는 강력한 흡입력으로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