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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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 최필원 역, [도로변 십자가], 비채, 2012. 

Jeffery Deaver, [ROADSIDE CROSSES], 2009.

 

  최근에 국내에서 살인 사건에 연류된 용의자들이 수배를 피해 필리핀으로 도주하여,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납치와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은 마닐라를 거점으로, 피해자들이 인터넷 카페에 올린 여행 계획을 보고 의도적으로(모 기업 파견 직원으로 현지에서 오랫동안 사는 것으로 속여) 접근해 연락처를 교환하는 등 친분을 쌓았고, 여행안내 및 편의 제공을 미끼로 유인하여 현지에서 감금한 뒤에 국내에 있는 가족을 협박해 몸값을 송금받는 수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모바일 SNS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인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은 자신을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고 소통을 나누는 중요한 도구이지만, 이것을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혹시 들뜬 마음에 휴가나 여행 계획을 인터넷 공간에 올린 적이 있으십니까? 이것은 빈집 털이범과 납치 강도범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불손한 목적으로 다가와 결정적인 순간에 돌변한다고 하니, 물질적인 피해와 인간적인 배신감은 뒤로하고 생명의 위협에까지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범죄 현상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요? (한국에서는 번역 출간이 늦어 아쉬움이 있지만) 제프리 디버의 [도로변 십자가]는 캘리포니아 연방수사국(CBI) 요원인 '캐트린 댄스'가 등장하는 시리즈로(세밀한 묘사, 정교한 플롯, 충격적인 반전을 제공하는 제프리 디버는 천재 법의학자이면서 전신 마비 환자인 '링컨 라임'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와 동작학 전문가로 뛰어난 수사력을 선보이는 '캐트린 댄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를 1년마다 번갈아 집필한다고 합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다툼이 현실의 공간에서 범죄로 연결되어 연쇄적인 사건으로 번지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갓길의 모래바닥에는 십자가 하나가 꽂혀 있었다. 도로변 기념비. 높이가 45센티미터 정도인 십자가는 누군가가 나뭇가지 두 개를 주워와, 어둠 속에서 꽃집 주인들이 쓰는 철사로 대충 묶어 만든 것 같아 보였다. 십자가 아래에는 짙은 빨간색 장미 몇 송이가 놓여 있었다. 십자가에 걸어놓은, 판지로 만든 동그란 판에는 사고 날짜가 파란색 잉크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p.10)

 

  으스스한 분위기의 월요일,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한 경관은 몬터레이 방향 캘리포니아 1번 고속도로 도로변에서 꽃으로 장식한 십자가를 발견합니다. 교통사고 피해자를 위해 추모하는 기념비로 여겼으나, 내일 날짜가 적혀 있어... 뭔지 모를 사건의 징후가 느껴집니다.

 

  인터뷰와 심문에서의 동작학적 분석은 기선을 다져놓는 과정이다. 기선은 상대가 진실을 얘기할 때 보이는 태도들의 목록이다. 손을 어디에 두는지,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얼마나 자주 마른침을 삼키고 헛기침을 하는지, 말이 항상 '음'으로 시작되지는 않는지, 발로 바닥을 두드리지는 않는지, 몸을 웅크리거나 앞으로 기울이지는 않는지, 답변하기 전에 머뭇거림이 있는지.

  신뢰할 만한 기선이 마련되면 동작학 전문가는 상대가 거짓 답변을 내놓을 이유가 있을 만한 질문을 던져놓고 상대의 반응이 기선을 벗어나는지 지켜본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그에 따른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기선을 벗어나는 제스처나 말투를 쓰게 된다. 댄스가 가장 좋아하는 인용문은 '동작학'이라는 표현을 백 년이나 앞서 사용했던 찰스 다윈이 했던 말이다.

  "억제된 감정은 거의 언제나 몸짓으로 드러난다."(p.52-53)

 

  사건이 일어난 화요일, 도로변 십자가가 놓인 근처의 해변, 한 여학생이 클럽 주차장에서 납치되어 트렁크에 갇힌 채 옮겨 버려집니다. 다행히 밀려든 바닷물은 차 전체를 삼키지 못했고, 극적으로 구조됩니다. 댄스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피해자를 만나는데, 동작학 전문가의 눈은 뭔가를 숨기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진실을 찾기 위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컴퓨터를 분석하는데...

 

  "동요가 일면서 글쓴이들은 점점 난폭해져 갑니다. 그리고 결국엔 블로그 전체가 떠들썩한 싸움판이 돼죠."(p.108)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면 이렇게 다투지 못할 겁니다. 블로그에선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토록 격렬한 싸움이 며칠, 길게는 몇 주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p.109)

 

  "비평가들은 그냥 말과 사진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것들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주먹만큼이나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죠. 게다가 상처도 훨씬 오래 남습니다."(p.110)

 

  한 개인이 창간해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은 자극적인 기사와 선정적인 특종으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매일 여기에 달리는 수많은 댓글은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치열한 논쟁을 넘어서 격렬한 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어느 특정인을 상대로 사진과 글을 올려 마녀 사냥식으로 여론을 몰아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터넷상에서의 싸움이 현실에서의 복수로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은 아닌지? 수사의 방향이 정해집니다. 그리고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계속해서 사건은 발생합니다.

 

  제프리 디버의 [도로변 십자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 동안에 있었던 연쇄 사건의 기록입니다. 범인은 도로변에 꽃으로 장식한 십자가를 놓아둠으로 범행을 미리 예고합니다. 그리고 경찰의 추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실행하여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동작학 전문가, 컴퓨터 전문가, 범죄 수사 전문가가 모여서... 살아남은 피해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인터넷 사이트의 모든 댓글을 분석하며, 범행 예고와 패턴을 연구합니다. 작가는 누가 범인이고?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으며? 왜 이렇게 되었는가? 라는 서술을 통해 마치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현대 사회의 인터넷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악플, 중독, 살인... 라는 소재를 조합해서 매번 예상을 뒤집는 전개가 흥미롭고, 논리적이고 개연성 있는 수사 진행이 마음에 듭니다. 다만 한 가지, 인터넷과 현실을 오가는 범죄가 이미 만연한 시대라서 참신성이 약하다는 생각입니다. 출간의 타이밍을 조금만 더 빠르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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