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짝반짝 추억 전당포 ㅣ 스토리콜렉터 11
요시노 마리코 지음, 박선영 옮김 / 북로드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요시노 마리코, 박선영 역, [반짝반짝 추억 전당포], 북로드, 2012.
Yoshino Mariko, [OMOIDE AZUKARIMASU by Mariko Yoshino], 2011.
동화를 좋아하시나요? 어린 시절에 처음으로 만난 동화는 [피터 팬]입니다. 물론 직접 읽은 것은 아니고요. 당시에 회사를 다니던 사촌 누나가 함께 살았는데, 매일 밤마다 잠들기 전에 조금씩 읽어 주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읽은 동화는... 어느 날, 시장통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우연히 옆집에 사는 고등학생 형을 만났습니다.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한쪽 구석의 서점으로 가더니, 여기에서 하나 골라보라고 해서... 박진감 있는 제목과 중세 유럽풍의 기사들이 그려진 표지가 취학 전 사내아이의 시선을 끌었나 봅니다. 그래서 고른 것이 [원탁의 기사]였습니다. TV에서도 아서왕의 모험을 내용으로 하는 만화영화가 방영 중이었는데, 책에서는 마녀가 나오지 않고 내용이 크게 다른 것을 보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한국 전래동화]입니다. 동화 자체의 기발한 상상력이 좋았고, 독특한 주인공 캐릭터와 그들이 갖춘 특수한 능력이나 아이템 설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여 해피엔드의 결말은 순수한 아이의 마음에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험으로 저는 동화를 좋아합니다.
요시노 마리코의 [반짝반짝 추억 전당포]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동화 같은 소설입니다. 배경은 현대적이지만, 한 어린아이와 다른 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고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마법사가 등장합니다. 어른들은 모르는 신비한 세계가 펼쳐지고요. 사소한 오해와 작은 사건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점점 확대되어 결정적인 순간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합니다. 물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추억'에 관한 내용입니다.
"전당포라는 건 말이지, 네가 맡기는 것의 보관료로 돈을 지불해. 네가 맡기는 걸 전당품이라고 해. 어렵니?"(p.15)
"네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돈을 갚으면 전당품은 돌려줘. 하지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돈을 갚지 않으면 전당품은 내게 되는 거야. 다시 말해 너는 더 이상 전당품을 돌려받을 수 없어."(p.16)
"네 추억. 정말정말 즐거웠던 추억, 혼나서 억울했던 추억, 쓸쓸했던 추억. 너는 나한테 그런 추억들을 이야기해주는 거야... 그걸 듣고 그 추억에 얼마를 줄지, 값을 정하는 건 내 마음이야. 그러니까 내가 정말 재미있거나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 많은 돈을 주고 추억을 보관할 거야. 하지만 네가 비슷한 추억을 몇 개나 갖고 오거나 내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 추억에는 많은 돈을 줄 수 없어."(p.16)
요즘에는 전당포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구지라사키 마을에서는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전당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찾지 않는 바닷가 절벽 아래에는 아이들만이 갈 수 있는 '추억 전당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몰래 이곳에 와서 현대적인 외모를 가진 마법사를 만나 거래를 합니다. 자신의 추억을 맡기고 가격을 매겨 얼마간의 돈을 받아가는 것이죠. 여기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기분을 움직인 추억이어야 한다.
- 추억을 이야기하면 마법사는 내용에 따라 적당한 가격을 제시한다.
- 거래가 성사되면 맡긴 추억은 기억에서 지워진다.
-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돈을 갚으면 추억을 되돌려받을 수 있지만, 돈을 갚지 않으면 다시는 돌려받을 수 없다.
- 추억은 하루에 하나밖에 맡길 수 없다.
- 인생 최초의 추억은 어떤 내용이라도 8,888엔을 준다.
"그래도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돈을 내고 돌려받으면 되잖아요?"
...
"아이들 대부분이 찾으러 오지 않아... 돈은 있지, 다들. 어릴 때보다는 말이야. 하지만 그 소중한 돈으로 추억을 되찾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추억 같은 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특별한 문제될 일은 없으니까."(p.20)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나날은 과거의 추억보다는 현재의 돈 몇 푼이 더 귀한가 봅니다. 마법사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돈을 갚으면 추억을 되돌려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의 필요에 따라 추억 전당포를 이용합니다. 갖고 싶은 게임기를 사기 위해 찾아오는 꼬마, 소문을 듣고 마법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온 중학교 신문부 부장, 왕따 당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찾아오는 소녀, 마법사와의 친분으로 추억을 이야기하지만 절대로 맡기지 않는 소녀... 세월은 흘러 이들에게도 스무 살이 다가옵니다.
"만나고 싶다, 만나고 싶다. 이런 건 우리에게는 없는 마음이야.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잖아?"
"어, 그런가요?"
"그래. 왜냐하면 우리 마법사는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거든. 때문에 지금 만날 수 없더라도 앞으로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 너희 인간이 누군가를 정말정말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언젠가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될 날이 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p.42)
유한하기에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는 인간과는 달리 영원하기에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마법사... 그녀는 왜 추억을 담보로 하여 아이들만이 찾을 수 있는 전당포를 만들었을까요? 요시노 마리코의 기발한 상상력은 기대할만합니다.
[반짝반짝 추억 전당포]는 어른들이 모르는 바닷가 절벽 아래, 마법사가 사는 한 채의 집, 추억을 맡길 수 있는 전당포,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움, 신기함과 신비로움... 이러한 동화적인 설정이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더구나 허황한 상상이 아니라, 추억과 관련하여 작가의 철학이나 논리가 이야기 속에 잘 녹아 있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무엇이 필요하고, 정작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가벼우면서도 잔잔한 이야기가 가슴을 파고들어 진지한 여운을 남깁니다.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전부 다 소중한 내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