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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하야마 아마리, 장은주 역,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예담, 2012.
Hayama Amari, [29SAI NO TANJOBI, ATO INEN DE SHINO TO KIMETA], 2011.
제1회 일본감동대상 대상
'아홉 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확한 어원이나 확실한 근거는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9, 19, 29...와 같이 아홉이 든 수로 나이에 이 수가 들면 결혼이나 이사를 꺼린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라는 장황한 제목을 보면서 아홉 수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열을 채우기 이전의 아홉은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채우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기 이전에 번데기의 시간을 보내듯이...
하야마 아마리는 얼굴 없는 작가로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일본에 더 큰 감동을!'이라는 슬로건으로 제1회 일본감동대상에서 대상을 받으며 혜성같이 등장했는데, 필명인 아마리는 '여분'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부여한 1년 치 여분의 삶'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절망 가운데 맞이한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로부터 치열한 1년 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스물아홉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어렸을 때에 꿈꿨던 미래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나는 안정된 직장과 애인, 돈... 뭐 하나 갖추지 못한 인생에 절망하고 있었다. 절망이 너무나 큰 나머지, 인생을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스스로 '1년의 삶'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스물아홉 생일로부터 1년간의 치열한 기록'이다.(p.12-13)
태어나는 것이 절망인 사람이 있고, 사는 것이 절망인 사람이 있고, 앞으로 살아갈 것이 절망인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하받고 기뻐해야 하는 스물아홉 번째 생일에 왜 서른이 되는 날 죽기로 했을까요? 도대체 어떤 아홉 수의 사연이 있기에 스스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고 일 년 후의 죽음을 계획할 정도로 무엇이 그토록 절망적이었을까요?
나는 스물아홉이다.
나는 뚱뚱하고 못생겼다.
나는 혼자다.
나는 취미도, 특기도 없다.
나는 매일 벌벌 떨면서 간신히 입에 풀칠할 만큼만 벌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내가 이렇게도 형편없는 인간이었나?(p.21)
3평짜리 원룸에서 혼자 덩그러니 앉아 맞이하는 생일입니다. 동네 편의점에서 사온 조각 케이크에는 달랑 촛불 하나가 켜져 있습니다. 원래라면 큰 초 두 개와 작은 초 아홉 개를 꽂아야 하지만, 그럴만한 자리가 없습니다. "Happy Birthday to ... me."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가 이렇게 긴 줄 몰랐습니다. 케이크 위에 얹힌 탐스러운 딸기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딸기가 툭 하고 떨어져 바닥에 뒹굽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안 울려고 했는데, 의지와는 상관없이 뜨거운 눈물이 볼 위로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뒤룩뒤룩 살찐 서른 즈음의 외톨박이 여자, 파견사원으로 근무하여 3개월마다 직장이 바뀌는 불안정한 삶... 이것이 아마리의 인생입니다.
스스로 부여한 여명(餘命)은 앞으로 1년.
더 이상의 삶은 바라지도 않는다. 오직 인생의 마지막 날을 라스베이거스에서 아낌없이 불태우리라. 그리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자.(p.49)
앞으로 1년이면 20대의 막을 내립니다. 50년을 더 산다고 치면, 집세는 제대로 낼 수 있을까? 수도가 끊긴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냄새나는 늙은이로 혼자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문득 '고독사'(孤獨死)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죽음조차 혼자 쓸쓸히 맞아야 하는 미래의 모습이 암울하기만 합니다. 그때 부엌에 걸어 둔 칼이 눈에 들어옵니다. 손에 칼을 쥐고 죽으려는데, 무섭고 용기가 없습니다. 그때 TV에서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영상이 보였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서른이 되기 직전,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 라스베이거스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생각되는 멋진 순간을 맛본 뒤에 죽는 거야. 카지노에서 전부를 잃어도 상관없다. 인생 전부를 걸고 승부를 펼쳐보는 거다. 그리고 땡, 서른이 되는 날 미련없이 목숨을 끊는다... 이것이 아마리의 계획입니다.
난 미나코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몇 번이고 전율을 느꼈다. 나는 '죽음의 의식(儀式)'으로서 라스베이거스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삶의 출발점'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의 목표와 계획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부러워하기조차 했다. 물론 그녀는 나의 라스베이거스 행에 대해 정반대의 해석을 하고 있지만, 왠지 전혀 의미가 다른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내가 생각해 왔던 나'를 훨씬 더 괜찮은 존재로 격상시켜 주었다.(p.146-147)
스물아홉 생일에 1년 후 죽기로 한 아마리는 라스베이거스라는 목표를 향해 시한부 삶을 시작합니다. 낮에는 파견사원으로 성실히 근무하고, 저녁에는 긴자의 호스티스로 일합니다. 주말에는 누드모델로 활동하고, 틈틈이 영어공부와 블랙잭을 연습합니다. 인생의 목표는 변화의 시작이었고 활력이 되었습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친구가 생겼고, 바쁜 일정으로 체중이 감소합니다. 서서히 외모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인생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1년이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라스베이거스로 떠나는데...
자전적인 이야기로 구성된 이 소설은 읽는 이에게 절망이 무엇이고 희망이 무엇인지를 처절하고 치열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이, 외모, 직업...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한 여자가 스물아홉 생일에 느껴야 했던 처절한 절망감이 생생합니다. 1년 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화려한 승부를 펼치고 죽겠다는 결심은 여성으로서 자존심을 버리고 호스티스와 누드모델로 살아가는 치열함이 뚜렷합니다. 길고도 짧은 1년의 세월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이 소설과 함께 현실에서도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키케로의 말대로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