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셀러 -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3
아리카와 히로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아리카와 히로, 문승준 역, [스토리셀러], 비채, 2012. 

Arikawa Hiro, [STORY SELLER], 2010.

 

  사람이 죽음 다음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더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거절이 염려되어 남몰래 사랑하는 이에게 쉽게 고백하지 못하고,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이 영원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며, 서로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매일 확인하려는 것은 거의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7-8)

 

  사랑은 종교적이든, 정신적이든, 하물며 육체적이든... 모든 사랑은 그 나름대로 소중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성향으로 한국 소설이나 드라마 속의 사랑은 잘 보지 않는다. 한때 '최루성 멜로'라는 말이 있었다. 남녀 간의 가슴 아픈 이별이나 비극을 내용으로 하여 보는 이들의 눈물을 억지로 짜내는... 그 영향 때문일까? 멜로는 감정의 낭비가 크고, 비록 허구이지만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어서 일부러 외면하는 장르이다. 그런데 우연히 아리카와 히로의 [스토리셀러]를 읽게 되었다. 처음으로 만나는 작가인데, 내 주변의 모든 블로그 여성 이웃들은 작가에 대해서 호평이다. 독특한 문체와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가독성으로...

 

  "나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책을 읽어왔지만 네가 쓴 글이 가장 재미있었어. 그래서 지금 엄청나게 흥분한 상태라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쓴 사람이 프로는 아니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다는 것에. 읽기만 하는 사람인 내가 처음으로 쓰는 사람을 만난 거야. 더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가진 사람을. 그러니까 네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글을 써왔다면, 나는 네 첫 팬인 셈이야."(p.34)

 

  여기에는 출생의 비밀, 천문학적인 유산, 후계자 경쟁, 심각한 삼각관계, 음모와 배신, 그리고 복수... 등의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 단 두 사람이 나온다. 간혹 몇몇 주변인이 등장하지만, 이 둘의 이야기를 보충 설명할 뿐이고 모든 이야기는 두 사람을 통해서 진행된다. 그리고 조금은 특별하고 흥미로운 구조로 되어 있는데, 남자의 시선에서 쓰인 여자의 이야기가 하나의 사이드(Side A)를 이루고, 여자의 시선에서 쓰인 남자의 이야기가 다른 사이드(Side B)를 이룬다. 즉 두 개의 중편이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입체적인 작품을 완성하였다.

 

  "너는 날개를 갖고 있어. 나는 네가 나는 모습이 보고 싶어."(p.64)

  "날든 날지 못하든 너는 잃어버릴 게 아무것도 없어. 나는 네 영원한 팬이니까."(p.65)

  "네가 날기를 원한 건 나야. 너는 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난 거잖아. 지금, 날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내려오지 않아도 돼. 날았다는 기쁨만 맛보게 하고 미래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내려오게 하다니, 나를 그런 이기적인 남자로 만들지 말아줘."(p.69-70)

 

  Side A에서... 남자는 여자를 같은 디자인 회사에서 동료로 만났다. 모두가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 틈에서 유일하게 혼자 충실한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문어체를 사용하는 그녀, 남자는 컴퓨터에서 여자가 쓴 소설을 읽게 된다. 그리고 한순간에 매료되어 그녀의 첫 번째 팬이 되는데...

 

  "일을 그만두든지 이대로 죽음에 이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p.9)

  "부인의 뇌는 쓰면 쓸수록 급격하게 노화합니다."(p.9)

  "요컨대 부인은 사고(思考)하는 대신 수명을 잃게 됩니다."(p.10)

  "치료 방법은 없습니다. 복잡한 사고를 강요하는 현재 직업을 그만두고, 일상생활에서도 가급적 평범한 사고만 하는 게 좋습니다... 가능하다면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하죠."(p.10)

 

  연애하며 소설을 쓰고, 결혼하여 소설을 쓰고, 전업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쓰고...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데, 여자는 병에 걸린다. 뇌를 쓰면 안 되는, 복잡한 사고를 멈추어야만 하는 치사성뇌열화증후군으로 소설을 계속 쓸 것인가? 아니면 여기에서 그만둘 것인가? 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스토리셀러>는 언제 책으로 나오는 거야?"

  ...

  "단편이라기보다 중편 분량이잖아. 그거 한 편이 책 반 정도를 잡아먹어버리거든. 그렇게 되면 책 구성에 균형이 깨진다면서 항상 제외됐어. 그리고 담당 편집자가 그 이야기에 정말 애착을 갖고 있어. 소설의 느낌을 잘 살려서 만들고 싶다면서 같은 분량에 내용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더 써달라고... 말하자면 그게 책이 되려면 중편 하나가 더 필요한 거야. 책으로 만들고 싶다면 하나 더 써라. 이런 상태지."

  "독자로서 요구할게. 써."(p.151)

 

  Side B에서... 여자는 같은 직장에서 소설을 읽는 남자를 만난다. 남들 몰래 눈물을 흘리며 여자의 소설을 읽는 남자. 여자는 자신이 쓴 소설임을 알리며 둘 사이는 가까워진다. 결혼하고 남자는 절대 지지자가 되어 여자에게 전폭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마치 아리카와 히로의 자전적인 이야기나, 또는 작가로서 바라는 것을 소설 속 인물에게 투영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후원이다.

 

  "돈이나 노력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가질 수 없는 걸 나는 가졌거든.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인생이라니,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실제로 작품에 내 아이디어가 반영된 적도 있고. 이건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즐거움인데 너는 모르겠구나. 쓰는 사람이라."

  "오히려 힌트를 주거나 조언 같은 걸 해줘서 나만 더 이득 보는 느낌인걸."(p.167-168)

 

  남자와 여자로, 작가와 독자로, 남편과 아내로,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의 아름다운 조화는 어느 날 갑자기 조금씩 깨어지기 시작한다. 남자의 교통사고와 췌장암의 발병으로 시련이 다가오는데...

 

  [스토리셀러]는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마지막까지 둘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여자와 마지막까지 첫 번째 독자가 되어 둘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려질 정도로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작가의 시원시원한 글솜씨는 사랑의 알콩달콩함과 이별의 애절함을 감성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입체적인 구조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Side A와 B는 서로 현실과 소설, 소설과 소설 속의 소설 같은 느낌을 주고받는데, 책을 읽으며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소설일까? 어느 것이 소설이고 어느 것이 소설 속의 소설일까? 라는 기분 좋은 혼란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본소설의 매력은 가벼움과 소재의 다양함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만족할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즐거움을 다시 찾은 기분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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