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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임시 보관 중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평점 :
가키야 미우, 김윤경 역, [인생 임시 보관 중], 문예춘추사, 2026.
Kakiya Miu, [MANDALA CHART], 2024.
내가 다시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인생 2회차 기회가 생긴다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발칙한 상상이다. 그때 나는 원하던 삶을 살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가키야 미우는 여성과 노인을 중심으로 글을 쓰는데, 일본의 불합리한 현실을 꼬집으며 여성주의를 일관성 있게 이야기한다. 소설 [인생 임시 보관 중]은, 63세 주부가 중학교 시절로 타임슬립해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장 기록이다.
좋겠다! 남자들은. 목표를 향해 쭉 달려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에 비하면 여자의 인생은 결혼이나 출산으로 어쩔 수 없이 중단되고 만다. 그러다 보면 순식간에, 예순이다.(p.10)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고등학생 때 이미 인생의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만다라차트, 세부적인 인생설계도를 만들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오타니의 아내는 헌신적인 내조자로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마사미는 불만을 토로한다. 남자와 비교되는 여자의 삶은 결국 가사와 육아와 뒷바라지뿐이다. 학창 시절의 꿈은 사라지고, 예순이 넘어서도 부엌일을 하며 남편으로부터 무시당하는 게 현실이다.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방해 요소를 전부 배제하고 오타니처럼 꿈을 이루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여성이 가슴을 활짝 펴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
... 하지만...... 여성이 가슴을 활짝 펴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게, 어떤 세상?
그런 장대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뭘 해야 할까?(p.40)
그녀는 카페에서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며 만다라차트를 쓰다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2023년에서 1973년 중학교 2학년으로 돌아가는데, 그 시절에 좋아했던 아마가세 료이치를 만난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지만, 1970년대는 철저히 여자를 무시하는 남존여비의 시대였다. 항상 타인의 이목을 신경 쓰고, 여성을 비하하는 유행가를 부르고, 늦은 결혼은 흠이 되고, 대놓고 외모를 조롱한다. 스마트폰이 없는 불편함이 있고, 여자를 대하는 인식의 개선이 절실하다.
이 시대 여자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10퍼센트 정도였는데, 그 대부분이 문학부로 진학했다. 레이와시대까지 경험한 사람으로서 보자면 왜 모두 한결같이 문학부 외의 선택지를 생각하지 않았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하지만 당시의 여고생들은 장래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먼 앞날을 생각하려고 해도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었다. 특히 시골 마을에서는 일반 회사에 근무하며 활약하는 여성들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여성을 정직원으로 채용하는 곳은 신용금고나 농협 등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그나마 결혼하면 퇴직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직업인으로서 본보기로 삼을 여자 어른이 주위에 없던 시대였다. 그 결과, 고교 동급생 중에서 대졸 자격을 직업으로 살린 여성은 교사나 약사가 된 몇 명뿐이었다. 바꿔 말해 교사나 약사라면, 여자의 처지라도 계속 일해도 좋다고 세상이 허가를 내준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p.177-178)
마사미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레이잔대학교 건축학과에 들어간다. 당시에는 여자가 4년제 대학에서 이과를 전공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편견이 있었고, 4년제 대학을 나오면 오히려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머리 나쁜 남자가 똑똑한 여자를 무시했고, 여자는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썩기 시작하는 케이크에 비유되었다.
"우리 회사는 사내 연애로 결혼하는 직원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여직원을 채용할 때는 우리 회사 남자 직원들의 결혼 상대로 적합한지 아닌지를 보게 되어 있다고요."
"신붓감 후보를 찾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뭐야. 잘 알고 있으면서. 당신 같은 우수한 여성은 우리 회사에는 필요 없습니다. 일하는 건 남자들 역할이니까요. 자, 이제 돌아가주시죠."(p.221-222)
전문대를 졸업하면 두 살 더 어리기 때문에, 어차피 2년 정도 일하다가 결혼과 동시에 퇴사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서... 마사미는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 내조하는 여자가 사랑받는 세상이다. 여자는 돈벌이하는 남자에게 부속되어 살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서 어디까지 타협해야 할까? 정말 세상을 바꾸고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
시대상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분명한 주제의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너무 힘이 들어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2022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양성평등 실현 조사에서 일본은 146개국 중 116위였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2018년 의대 입시에서 여성을 차별한 사실이 판명되었는데, 지난 몇십 년 동안 점수를 조작해 왔다고 한다. 전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고, 일본은 우리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