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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보이는 살인
테라시마 요우 지음, 권하영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5월
평점 :
테라시마 요우, 권하영 역, [나에게만 보이는 살인], 북플라자, 2025.
Terashima Yo, [KITSUNEGARI], 2023.
제9회 신초 미스터리 대상
제일 먼저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하는 소설이다. 테라시마 요우의 [나에게만 보이는 살인]은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한 경찰 소설이다. 남성 중심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아닌 조금 가벼운 느낌으로 경찰 드라마가 연상된다. 특히 주인공 캐릭터 간의 케미가 훌륭한데, 개성 강한 인물들의 티키타카 활약이 돋보인다.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체계적인 수사의 전개는 재미있지만, 특유의 상명하복으로 진중한 경찰 소설을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다.
"그때 사고로 너는 약혼자와 오른쪽 눈 시력을 잃었어. 원통한 건 알지만, 사고였어. 벌써 3년 전이야. 너도 이제 그만..."
그 말을 덮듯 오자키가 의자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에요. 그게...,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사고 때 기억이 돌아온 게 아니에요. 사실은 봤어요."(p.46)
오자키 사에코는 3년 전에 오토바이 사고로 약혼자는 죽고, 동승한 그녀는 오른쪽 눈을 실명한다. 이미 조사가 끝났지만, 그녀는 교통사고의 원인에 의심을 품고 남몰래 수사를 한다. 그리고 사고 현장에 갔다가 오른쪽 눈으로 그날의 일을 또렷이 보게 된다.
유게 타쿠미는 40대 중반으로 만년 경위이다. 진급은 일찌감치 물 건너 갔고, 오른손의 부상으로 악력을 잃어 총을 쏘지 못한다. 경찰서의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외톨이로 지내는 괴짜인데, 그럼에도 수사에 관한 통찰력은 아주 뛰어나다.
후자카와 코우키는 30대 중반의 총경으로 토사카 경찰서 서장으로 부임한다. 아버지는 재계의 거물로서 경찰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는 탄탄한 배경과 실력으로 엘리트 코스를 걷고 있다. 10년 전에 초임으로 타쿠미에게 경찰 연수를 받았고, 오자키도 같이 있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셋은, 그들만 있을 때는 계급이 아닌 별명을 부르는 친밀한 사이이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에 각각 다른 광경이 들어오는 눈의 장애입니다. 물건이 이중으로 보이는 혼란시나 복시를 일으키죠. 외상성 사시가 공간이라면 오자키의 경우 시간이에요. 왼쪽 눈은 현재, 오른쪽 눈은 3년 전. 각각 다른 시간의 광경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건 능력이라기보다 오토바이 사고가 일으킨 일종의 눈 장애에 가깝습니다."(p.118)
"일단 그런 능력을 지닌 건 눈뿐이라서 3년 전 광경이 보이기는 해도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자키의 눈은 자유롭게 공간을 이동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왼쪽 눈이 보는 것과 똑같은 장소의 3년 전 광경이 오른쪽 눈에 보인다는 뜻입니다. 3년 전 시간대에서 보고 싶은 장소가 있으면 그곳으로 오자키가 이동해야 합니다."(p.119)
오자키의 왼쪽 눈은 현재를, 오른쪽 눈은 같은 곳에서 3년 전을 볼 수 있다. 소리는 들을 수 없고, 양쪽 눈으로 시간이 다른 두 개의 광경을 보면 뇌에 들어오는 정보가 많아 과부하로 의식을 잃을 수 있다. 타쿠미와 코우키는 이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곧 검증이 이루어지고... 오자키가 당한 교통사고의 원인을 밝히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능력은 비밀로 하고, 셋은 미제 사건 전담 형사부 특별팀을 꾸리게 된다.
"알겠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오른쪽 눈의 능력으로 알아낸 상황 증거만으로는 여우를 체포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체포한다 해도 자키 씨의 목격 증언을 법정으로 가져갈 수는 없으니 기소 이후에 공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면, 여우를 힘들게 우리에 넣어도 결국 도망치겠죠."(p.340)
미제 사건 전담팀은 첫 번째로, 토사카시 사사즈카 일가 4인 살해 사건을 재수사한다. 일가족이 자택에서 무참히 살해된 미해결 사건으로, 3년 전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사건 현장에서 오자키는 오른쪽 눈으로 살인을 목격한다. 끔찍한 살육이 일어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방관자로 무력감을 느끼는데, 범인을 꼭 잡아서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결심을 한다.
보이는 것 안에 단서가 있고, 보이지 않는 것 안에 답이 있다. 오자키의 오른쪽 눈으로 알아낸 상황 증거만으로는 범인을 법정에 세울 수 없다. 사건 후에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는 범인을 뒤쫓고, 지금은 철거된 아파트 자리에서 크레인에 매달려 공중수색을 벌이고, 지하철로 사라진 범인의 단서를 하나하나 추적해 나간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야기의 진행은 아주 논리적이다. 초능력 형사와 괴짜 형사와 부호 형사의 결합은 기발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주인공 각각의 서사는 분량을 할당해서 좋은데, 일가족 살인 사건이라는 잔혹함과는 별개로 범인의 서사가 약해서 아쉬움이 있다. 좀 더 매력적인 악의를 그리고 주인공의 성장과 시대의 메시지를 포함하면 좋았을 것 같다. 다음 이야기를 예고하는 듯한 장면으로 끝나는데, 캐릭터의 케미가 좋아서 시리즈를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