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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온 택배
히이라기 사나카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4년 9월
평점 :
히이라기 사나카, 김지연 역, [천국에서 온 택배], 모모, 2024.
Hiiragi Sanaka, [TENGOKUKARA NO TAKUHAIBIN], 2022.
소재의 다양성, 기발한 전개, 가벼운 내용으로 일본의 힐링 소설을 좋아한다. 어느 순간 감동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미스터리의 긴장감도 매 순간일 수 없기에 편견을 두지 않고 읽는다. 히이라기 사나카의 소설 [천국에서 온 택배]는 제목으로 유추할 수 있듯이... 고인이 보낸 택배라는 소재로 받는 사람과 독자에게 전하는 행복 메시지이다. 과거의 앙금을 떨쳐내고 새로운 희망을 선물하는 4개의 단편 모음이다.
우리들의 작은 집
오셀로의 여왕
밤 10시의 숨바꼭질
마지막 과외 활동
에필로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해마다 생일 선물을 보내 달라는 엄마, 연을 끊은 딸에게 귀금속을 유품으로 남기려는 어머니... 사연은 각양각색이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은 천국택배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마지막 택배를 보낸다. 여기에는 무한한 사랑이 있고, 아직 풀지 못한 오해가 있다. 천국택배의 나나호시는 의뢰인이 생전에 지정한 사람에게 유품을 배달한다.
자신이 이 집에 혼자 남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좋네요. 친구들끼리 살면 정말 재밌을 거 같아요."
"말해 뭐 해. 나이가 들면 알 거야.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그때까지 살아왔던 시간보다 예순이 돼서 친구들과 이 집에서 살았던 10년이 훨씬 행복했어. 살면서 제일 즐거운 시기였지. 언제가 청춘이냐고 묻는다면, 난 육십 대라고 대답할 거야."(p.30)
아라가키 유코는 쓰레기 더미에서 산다. 주위에서 저주받은 집, 불길한 집, 마귀할멈으로 불리는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같이 살던 덴코와 가나는 일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셋은 노년에 이르러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우리들의 작은 집'이라고 이름 짓고, 정원을 꾸미고, 노래를 부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유코 혼자 남아 쓸쓸히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천국택배는 그녀에게 두 친구가 남긴 카세트와 녹음된 테이프를 배달한다.
나쁜 손녀라는 자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야에가 자기 인생의 훼방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 이 집이 마음에 안 들면, 한번 해봐.
할 거야. 절대 포기 안 해.(p.83)
스미이 후미카는 시골에서 산다. 맛있는 음식, 깨끗한 공기,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곳이지만, 도시에서 태어났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번 해봐"라는 할머니 야에의 목소리... 열심히 해보라는 응원이 아니라 너 따위가 뭘 할 수 있느냐는 비아냥을 들으며 살았다. 학교를 졸업하면 고향에서 취직하고, 같은 지역의 사람과 결혼해 본가 근처에서 사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폐쇄적인 분위기가 싫었다. 할머니가 인생의 훼방꾼이라는 생각, 후미카는 어떻게든 대학은 도쿄에서 다니기로 결심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천국택배는 그녀에게 휴대용 게임기를 배달한다.
그날 밤 숨바꼭질에서 진 내 잘못이다. 바로 옆을 살펴보지 않았던 내가 나빴다. 그토록 가까이 있었는데.(p.129)
도모야마 유와 미키다 마호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둘은 숨바꼭질을 하면서 놀았는데, 유가 술래를 할 때는 숨은 마호를 절대로 찾지 못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가서도 둘의 숨바꼭질 놀이는 계속되었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좋아했지만, 전하지 못한 마음... 뒤늦게 마호를 찾았을 때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사십 대가 되었고, 유는 매일 저녁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고 늦게 돌아간다. 천국택배는 그에게 마호가 남긴 편지를 배달한다.
스무 살이 되면 서로 축하하면서 다 같이 제방에 모여 야외 수업을 하자던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너희끼리 한번 모였으면 좋겠다.(p.177)
고등학교 때 과학부를 지도했던 사나다 미쓰히코 선생님의 편지가 천국택배를 통해서 전해진다. 사고뭉치, 천덕꾸러기, 형편없는 얘들이 모여 대충 활동했던 과학부 동아리... 부장이었던 오사베는 설탕 1kg을, 말이 많은 구로세는 어린이용 비닐 풀장을, 부모의 지나친 간섭을 받는 이케다는 대형 연을, 폭력 사건에 휘말렸던 후쿠이에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야구를 하다가 그만둔 와카마쓰는 장갑을 준비해서 3월 20일 모교 근처의 제방에서 모임을 가지라는 내용이다. 이상한 준비물, 선생님이 남긴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일까?
고인이 남긴 유품을 택배로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제일 먼저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가 그립고, 애증의 관계였던 할머니가 그립고,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이성이 그립고, 그냥 그 시절이 그립다. 생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를 위로하고, 듣지 못했던 대답을 들려주는데... 천국택배를 받는 주인공은 전부 누군가가 나를 아끼고 있었다는 사실에 자존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