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 게임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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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이도 준, 이선희 역, [루스벨트 게임], 인플루엔셜, 2020.

Ikeido Jun, [ROOSEVELT GAME], 2012.

"8 대 7일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장 재미있는 스코어라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지. 일명 루스벨트 게임(한국에서는 '케네디 스코어'라는 말로 알려져 있다)이라고 한다네."(p.280)

야구와 경영을 접목한 소설이다. (일본에서 실제로 쓰는 말인지 모르겠...;;) 제목인 '루스벨트 게임'은 "야구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임 스코어는 8 대 7이다"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이라고 한다. (제목이 스포일러이고...;;) 야구의 데이터 분석과 기업의 경영철학이 맞물려... 생존을 위한 기업 간의 투쟁과 승리를 향한 야구팀의 분투를 박진감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이라는 소재로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지금처럼 불경기가 계속되면 언젠가 워크셰어링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앞으로 정규 직원의 급여나 고용에 칼을 들이대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 절감의 노력을 보여주어야 하겠지요. 야구팀에 3억 엔을 사용하면서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이자고 말하면 씨도 먹히지 않을 겁니다."(p.23-24)

"영업을 하러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 같은 전자부품 제조업체는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사회인야구를 하는 덕분에 '아하! 회사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요. 이건 영업할 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야 예전에는 성적이 좋았으니까 그렇지."(p.25)

아오시마제작소는 중견 전자부품 제조업체로 연 매출은 500억 엔이고, 경상이익은 약 40억 엔이다. 여기서 매년 사회인(실업) 야구팀 운영에 3억 엔을 지출하고 있다. 한때는 호황으로 경영이 안정적이고, 야구팀 또한 연승을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금융위기와 함께 경기 침체로 경영이 악화되고, 야구팀은 연패로 위축되어 있다. 더구나 감독은 팀의 에이스 선수 두 명을 데리고 경쟁사인 미쓰와전기로 가버린 상황... 새 감독을 뽑았지만, 회사 내에서는 구조조정과 야구팀의 해체를 논의한다.

"이 팀에는 훌륭한 선수들이 많아. 그들의 힘이 백이라면, 지난 몇 년간은 50퍼센트밖에 사용하지 않았지. 그걸 백 퍼센트까지 끌어올리는 게 내 역할이야."(p.40)

뒤떨어진 기술력을 영업력으로 만회하고 있다는 뒷이야기를 들을 만큼 미쓰와전기의 영업조직은 굳건한데, 그런 조직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반도였다.(p.134)

작업복을 입고 등장한 감독 다이도는 대학에서 스포츠과학-야구통계학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야구부를 지도하다가 처음으로 아오시마제작소 실업팀을 맡게 된다. 실력이 알려지지 않은 감독은 아마추어 이상, 프로 미만의 실력을 지닌 비정규직 선수들을 데리고 데이터 야구를 시작한다. 고참 선수와 신참 선수를 구분 없이 대하고, 스코어북 데이터를 세심하게 기록하며... 타율보다 출루율을, 수비 실책보다 타점 능력을 보고... 약한 투수력을 타격전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아오시마제작소는 탄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하고, 규모가 있는 미쓰와전기는 폭넓은 영업력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이다. 전자부품 생산, 이미지센서 납품 등으로 경쟁 중이고, 야구도 라이벌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와 미쓰와의 문화는 너무나 다릅니다."

똑같이 전자부품을 취급하는 회사이지만, 아오시마제작소는 지금까지 항상 새로운 제품을 추구해왔다. 한편 미쓰와전기는 앞장서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지 않고, 잘 팔리는 타사 제품을 모방한 유사품을 만드는 방법으로 성장해왔다.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일지 말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제품을 개발하기보다, 다른 회사가 먼저 개발해 좋은 실적을 거둔 제품의 유사품을 만드는 편이 저렴한 비용으로 돈을 벌수 있기 때문이다. 미쓰와전기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그런 회사들이 적지 않다.(p.156)

그는 사장이 되어도 컨설턴트 시절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회사를 보았다. 그곳에는 실적을 나타내는 숫자는 있어도 직원들의 인생과 미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없었다. 그것이 창업자인 아오시마와 호소카와의 차이였던 것이다.

일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지 부품이 아니다.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모든 것의 효율만 따졌는지도 모른다......(p.217)

불황은 생산 축소, 납품가 하락, 은행권 압력... 등으로 이어져 기업의 존속마저 위태롭게 한다. 구조조정과 야구팀 해체는 기정사실이 되고... 이러한 때 미쓰와전기는 아오시마제작소에게 합병을 제안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기업문화... 호소카와 사장은 회사가 돈을 벌어도 직원이 불행하면 의미가 없고, 직원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비로소 경영이 성공한 것이라는 창업주의 경영이념을 깨닫게 된다. 효율과 실적이라는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다.

어디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지만,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는... 글로벌 기업 중에서 기술과 혁신으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있고, 모방과 유사품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두 기업(?)을 모델로 하지는 않았겠지...;;ㅋㅋ

야구팀은 단순한 취미 생활도, 쓸데없는 비용도 아니다. 아오시마제작소에 필요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야구팀은 아오시마제작소의 정체성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정체성은 내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외치는 회사의 방침이자 중요한 철학이다.

하지만 그것을 은행이 이해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명확한 숫자로 나타내야 한다. 아오시마제작소에 야구팀이 얼마나 공헌하고 있는지, 금액으로 확실히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p.333)

"내가 야구팀을 만들기로 결심한 건 회사를 만든 지 7년째였지. 운 좋게 고도성장기의 파도를 타고 작은 차고에서 만든 영세 기업이 성장의 계단을 뛰어오를 때였네. 그때는 5백여 명의 직원들이 매일 땀투성이가 되어 아침부터 밤까지 정신없이 일했지. 밤늦게까지 야근하거나 휴일에도 회사에 나오는 건 늘 있는 일이었다네. 그래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모두 열심히 일했지. 그런 직원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네. 그 결과 야구팀을 만든 걸세."(p.341-342)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늘 그렇듯이 기업은 회생하고, 야구 시합은 이긴다. 클리셰 남발과 뻔하고 뻔한 이야기지만, 과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오시마제작소의 야구팀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니라 기업의 역사이고, 가치이고, 철학이다. 길고 장황한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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