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도관의 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허하나 옮김 / 폭스코너 / 2022년 7월
평점 :
요코야마 히데오, 허하나 역, [교도관의 눈], 폭스코너, 2022.
Yokoyama Hideo, [KANSHUGAN], 2004.
갑자기 추워진 날씨하고 어울리는 책을 읽고 싶었다. 좋아하는 작가이고, 강렬한 제목이 붙은 일본 미스터리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살짝 어긋난 기분...;; 소설 [교도관의 눈]은 교도소하고 관련 없는 6개의 단편 모음이다. 혹시라도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같은 위트나 감정을 파고드는 뭔가를 예상하면 안 된다. 괜한 헛발질은 싸늘함과 우울함을 남기고, 씁쓸한 삶의 이야기는 마음을 더 춥게 한다.
교도관의 눈
자서전
말버릇
오전 다섯 시의 침입자
조용한 집
비서과의 남자
모두 다른 이야기지만,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하나같이 열등감과 자격지심 비슷한 것을 지니고 있다. 직업이든, 감정이든...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니 실수를 범하고 문제를 확대한다. 일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자기반성과 성장을 이루어 가는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욕망과 책임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곤도는 삼십팔 년간의 근무 중 이십구 년을 유치장 교도관으로 지냈다고 한다. 순사(한국 경찰의 순경에 해당한다-옮긴이)로 임명되었을 때부터 일관되게 형사과를 지원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교도관 인생을 걷게 된 것도 형사가 되는 꿈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유키코는 말했다.(p.21)
"사무직원은 경찰서에서 일하지만, 경찰관이 아니잖아. 경찰관들의 속내는 당연히 모르지. 그래도 괜찮아. 경찰관의 가족, 그 정도 마음만 있으면 돼."(p.42)
'교도관의 눈'에서... 현경 교양과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야마나 에쓰코는 또래 경찰관을 의식한다. 경찰에서 삼십팔 년 중 이십구 년을 유치장 교도관으로 있었던 곤도 미야오는 은퇴를 앞두고도 형사과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평범한 불행이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명찰을 잡아 뜯겨 발로 짓밟히고, 이유도 모른 채 무자비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곳에 혼자 남아 울면서 명찰을 주웠다. 다다노 마사유키. 눈물로 글자가 흐려진 탓에 '마사유키(正幸)'가 '후코(不幸)'로 보였다. '다다노 후코(직역하면 '평범한 불행'이라는 뜻. 동음이의어와 유사한 글자를 이용해 스스로를 자조하는 말장난이다-옮긴이).'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웃음이 복받쳐 올랐다. 소리 없이 웃던 다다노는 이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상하게 우스웠다. 다섯 살 때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일마저 납득되는 듯한 기분이었다.(p.71-72)
"나는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 삼십 년가량 전의 일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내 손으로 죽였다."(p.92)
'자서전'에서... 방송국에서 계약직 구성작가로 일하는 다다노 마사유키는 개편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때마침 효도전기 효도 고자부로 회장의 자서전 집필 의뢰가 들어오고, 그는 삼십 년 전의 살인에 관해서 듣게 된다.
그까짓 일로...
귀에 젖은 말이 유키에의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입버릇이었다. 당차고 자존심도 세고 자식 교육에도 엄격한 분이셨다. 끙끙거리며 속앓이를 하고 있을 때면 늘 그 말을 들었다. 그까짓 일로 울긴 왜 울어. 그까짓 일 따위 얼른 잊고 정리하렴.
저도 모르게 그 말투를 물려받은 유키에도 매서운 어조로 자주 사용했다. 집에서만 큰소리치는 두 딸에게. 사회에서 도망치려고 한 남편에게. 그리고 몇 번이나 좌절할 뻔했던 스스로에게도.(p.125-126)
남편은 학교에서 무리하게 '열정적인 선생님'인 양 행동했던 것 같다. 6학년을 맡아 졸업시킨 다음 해에 2학년 담임을 맡게 됐다. 몹시 산만한 아이가 여럿 있어서 요즘 말하는 학급 붕괴 같은 상황에 부딪혔던 모양이다. 수업이나 생활지도는 마음대로 되지 않고, 교장의 질타나 학부모의 압박에 시달리던 중 몸에 이상이 생겼다.
자율신경실조증. 의사에게 병명을 들었을 때의 남편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그럴듯한 병명이 붙은 사실을 기뻐하고 있었다. 이걸로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아도 돼. 그 교실에서 벗어날 수 있어. 일순 그렇게 생각했던 거다.(p.154)
'말버릇'에서... 가정법원의 가사조정위원인 세키네 유키에는 남편을 돌보며 두 딸을 키웠다. 요즘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학부모 갑질 논란은, 이미 일본에서는 2000년대에 성행했었나 보다. 그녀는 새로운 이혼 조정 건에서 아는 얼굴을 만난다.
범인이 저지른 일은 '부정 접속 행위 금지 등에 관한 법률'에 저촉되는 명백한 범죄행위였다. 하지만 S현경에는, 아니 이 방 안에는 피해자라고 일컬을 만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피를 흘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산이나 생활도 침해받지 않았다. 피 흘릴 일이 생기는 건 이 일이 매스컴에 알려졌을 때다. 그때 처음으로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p.200)
기호...
마찬가지였다. 다치하라도 줄곧 그렇게 살아왔다. 공무원. 돈. 방 세 개짜리 관사. 너그러운 아내. 두 딸. 적성에 맞는 일. 기대 이상의 계급... '행복의 기호'를 모아왔다. 언제나 그 수를 세고 확인했다. 늘어나면 늘어난 만큼 과거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p.223)
'오전 다섯 시의 침입자'에서... 현경 정보관리과에서 인터넷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다치하라 요시유키는 오전 다섯 시에 크래커에 의한 홈페이지 바꿔치기, 사이버테러를 발견한다. 황급히 서버를 분리하고 복구 절차를 진행하지만, 네 명의 접속자가 있었다. 책임 논란이 커지기 전에 범인을 찾아야 하고, 네 명의 입을 막아야 한다.
"어쩌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어요. 지역면이고, 작은 기사니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 말은 천사의 음성 같기도 했고, 악마의 음성 같기도 했다.(p.243)
다카나시는 벽에 눈길을 줬다. 스무 장쯤 되는 패널에는 무지개와 구름이 다양한 배합과 앵글로 찍혀 있었다. 언제, 어디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무지개를 카메라에 담는 건 분명 대단히 고생스러운 일일 터. 하지만 시선을 잡아채는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평가해서,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p.254)
'조용한 집'에서... 현민일보 본사 편집국에서 지역면 편집을 하는 다카나시 도루는 16년간 외근 기자로 일하다가 내근직으로 옮긴 지 3개월이다. 기자 경력하고 비교해서 편집 감각은 신입에게도 밀리는 상황인데, 지역 무명 사진작가의 25일까지 전시회를 26일 오늘까지로 기사를 내었다. 뒷수습해야 한다.
마치 연애와도 같이 농밀한 교제를 해온 만큼 두 번에 걸친 거절은 구라우치를 번민하게 했다. 어르신에게 미움받았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르신과 구라우치의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든 '원인'은 짐작되었다. 사무실에서 나온 뒤부터 줄곧 가부키의 오야마(가부키에서 여성 역을 연기하는 남성 배우-옮긴이)를 연상시키는 희고 갸름한 얼굴이 머리에서 아른거리며 떠나지 않았다.
바로 가쓰라기 도시카즈다.(p.295)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마음속 응어리는 감출 길이 없었다. 가쓰라기에게 질투하고 있었다. 초봄부터 줄곧 그랬다. 응어리가 점차 부풀어 올라, 몸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도 맛보았다. 오십 대 남자의 질투. 젊은 부하에 대한 질투.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감정인 만큼 유독가스처럼 속에 가득 차서 구라우치의 마음을 계속 오염시켜나가고 있었다.(p.296)
'비서과의 남자'에서... 지사실 비서과 과장인 구라우치 다다노부는 일찌감치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쪽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시는 일을 한다. 다른 동기에 비해 빠른 출세, 나름의 승승장구로 현지사의 직속 부서장이 되었다. 그런데 새로 뽑은 젊은 감각의 비서에게 어르신의 관심이 쏠리는 것을 질투한다.
불운한 과거를 만회하기 위한 현재의 (집착에 가까운) 노력은 오히려 발목을 잡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습득된 버릇은 대물림을 한다. 가정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 있고, 시간차 트릭의 전조를 볼 수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자격지심'과 '질투심'을 떠올렸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자아 성찰'과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생각난다. 피해자이고 동시에 가해자인 세상,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