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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야쿠마루 가쿠, 이정민 역, [어느 도망자의 고백], 소이미디어, 2022.
Yakumaru Gaku, [KOKKAI], 2020.
죄의식과 진정한 속죄에 관해서... 일본의 소년범죄를 다루며 꾸준히 글을 쓴 작가는, 최근에는 범죄와 형벌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운 글을 쓴다. 늘 그렇듯이 다양한 의견과 논쟁이 뒤따르지만,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작가 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와 노인성 치매를 소재로 하여 또 한 번 현실의 문제를 마주한다.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해서 사람을 치어 죽이고 달아났다. 붙잡히면 상당한 중죄로 다스려질 것이다.
수년간 교도소에 갇히고, 사회에 나온 뒤에도 사람들에게 범죄자라는 뒷손가락질을 받고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내 인생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모님과 누나도 범죄자 가족으로서 떳떳하지 못한 삶을 강요받게 된다.(p.37)
마가키 쇼타는 여자 친구의 메시지를 받고, 한밤중에 빗길에서 음주 상태로 운전하다가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치고 도망간다. 다음날 뉴스 보도로는 피해자는 80대 여성으로 200m를 끌려가서 사망했다고 한다. 되돌리고 싶은 상황이다. 노리와 후미히사는 인플루엔자로 고열에 시달렸는데, 아내는 새벽에 편의점으로 얼음을 사러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가해자는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피해자는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아야카와 사야마 일행은 내가 체포된 것을 알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교도소에 수감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교도소는 도대체 어떤 장소이고 그곳에서 얼마나 갇혀 지내야 할까. 출소한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거나 또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거나 결혼할 수 있을까. 장차 아이를 가질 수는 있을까. 그러고 보니 누나는 예정대로 신이치 씨와 결혼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변함없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출소하면 다시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을까.(p.66-67)
몸을 가늘게 떠는 마가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사키는 그 눈물의 이유를 상상했다.
그것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뉘우침의 눈물일까. 아니면 자기 앞길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눈물일까.(p.107-108)
곧바로 이어진 경찰 수사는 용의자를 특정하고, 쇼타를 체포한다. 유치장에 갇힌 범죄자의 심리는... 치인 게 사람인 줄 몰랐다고, 신호등은 차량 진입 신호였다고 하며 과실을 주장한다.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의 편지를 쓰지만 거절당한다. 인터넷에서 악성 댓글과 비난이 난무하고, 가족의 신상 털기가 이루어진다. 가족을 잃은 피해자의 심리는... 이것은 누가 봐도 살인이다. 예상치 못한 이별과 상실의 아픔은 깊은 절망과 원한으로 마음에 사무친다.
법정에서 피고인이 흘리는 눈물은 사죄와 뉘우침의 눈물일까? 아니면 막막한 자기 처지에 비관한 눈물일까? 현실의 문제이고, 논란의 쟁점이다. 마가키 쇼타는 징역 4년 10개월의 형벌을 받는다.
'해야 할 일이 있다.'
마가키 쇼타의 판결이 나온 날에 나고야에 가자고 권했더니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며 거절했다.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 말이 마음에 걸린다.(p.146)
여느 일본 미스터리하고는 다르게 범죄의 수사나 재판의 과정보다 그 이후에 중점을 둔다. 세월은 흘러 마가키 쇼타는 만기 출소한다. 교육평론가였던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와 이혼했다. 누나의 결혼은 파혼으로 끝났다. 전과자라는 낙인과 주위의 시선으로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일용직으로 산다. 그 사이 친구들과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생겼고... 결국 어울릴 수 있는 건 같은 신세의 전과자들뿐이다. 하루아침에 아내를 잃은 노리와 후미히사는 사설탐정을 고용해 마가키 쇼타를 조사한다. 90에 가까운 노인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다짐하지만, 고령으로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만날 일이 없을 테니 지금 말할게. 우리 가족은 너 때문에 불행해졌어. 그런데 가장 불행한 건 우리도, 더욱이 너도 아니야."(p.225)
저쪽에 가면 더 편해지지 않을까.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반성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생활하는 편이 훨씬 살기 편할지도 모른다.(p.295-296)
젊은 날 실수라고 하기에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고, 그 대가는 아주 혹독하다. 그날 이후 피해자는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범죄자는...? 불행은 당사자만 아니라 가족 전체로 확산하고, 어쩌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은 평생 속죄하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범죄 소굴로 들어갈 것인지... 살기가 녹록지 않다. 속죄와 용서, 인간성의 회복에 관한 이야기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