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사카 고타로, 김소영 역, [골든 슬럼버], 웅진지식하우스, 2008.

Isaka Kotaro, [GOLDEN SLUMBER], 2007.

제5회 서점대상

제21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2009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이사카 코타로? 고타로? 요즘에 나오는 책은 '고타로'로 표기하는 것 같다. 골든 슬럼버란? 영국의 록 그룹 비틀스가 1969년에 발표한 앨범 <애비 로드>의 수록곡이다. 굳이 번역하면 '황금 낮잠'이라고... 같은 제목으로 일본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영화를 제작했다. 서점대상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긴 분량으로 장황한 이야기가 펼쳐지나 꼬리의 꼬리를 무는 전개는 매력적이다.

  비틀스의 열한 번째 앨범이 <애비 로드>였다. 실제로 이 뒤에 <렛 잇 비> 앨범이 나왔고 그게 마지막 작품이 됐지만 녹음 자체는 <애비 로드>가 더 나중이었다. 즉 비틀스가 마지막으로 녹음한 앨범이 <애비 로드>라는 말이다. 이미 분열된 밴드를 폴 매카트니가 어렵사리 뭉치게 했고, 앨범 후반의 여덟 곡은 각각 따로 녹음한 곡을 폴 매카트니가 이어 붙여서 장대한 메들리로 완성했다. 메들리의 마지막 곡이 <디 엔드>라는 게 참 깔끔하다고 모리타는 곧잘 말했다.(p.127)

  "시작 부분 기억나?" 그렇게 말한 뒤 모리타는 첫 부분을 흥얼댔다.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

  "옛날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는 의미던가?"

  "반사적으로, 대학 시절 함께 놀던 때가 떠올랐어."

  "대학 시절?"

  "돌아갈 고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는 늘, 그 시절 우리가 떠올라." 모리타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그의 시선을 더듬더듬 따라가보면 불현듯 시간이 일그러지며 대학 시절, 패스트푸드점에서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던 20대의 자신들과 맞닥뜨릴 것 같았다.(p.127-128)

  과거의 경험(결정)이 현재의 나를 있게 했겠지... 만약, 그때 다르게 했더라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꿈꾸던 대학 시절이 그립다. 그때의 친구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소설 [골든 슬럼버]는 총리 암살사건을 파헤치는 스릴러이고, 대중을 감시하는 사회 그리고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를 비판하는 사회파 미스터리이고, 과거의 회상으로 펼쳐지는 청춘 드라마이다. 작가는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었던 것 같다. 조금은 과한듯하면서도 장르를 바꿔가며 과거와 현재(미래)를 오가는 구성은 다른 재미를 준다.

  "죄 없는 사람들이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두고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나 할 말이 없다. 평소 같으면 대단한 개인 정보, 사생활 침해라며 거세게 반발했겠지만, 1년 남짓한 공포가 센다이 시민은 물론 전 국민을 휘감은 탓인지 법안은 순조롭게 통과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센다이 시가지에는 정보 수집용 단말기, 요컨대 시큐리티 포드가 설치되었다. 범죄 방지와 수사정보의 질과 양 향상을 목적으로, 거리를 지나는 행인의 영상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압축영상으로 포드 내에 보존되었다. 물론 사용한 휴대전화 및 PHS 발신자 정보도 기록되었다.(p.35)

  20년 전, 센다이에서 가네다 사다요시 총리 암살사건이 일어났을 때 매스컴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제 와 차분히 돌아보면 도가 지나친 광적인 소란이었다. 텔레비전과 신문은 경찰청 발표를 거르지 않고 내보냈고 진위가 불확실한 일반인 제보까지 줄줄이 방송하며 시청자들을 선동했다. 아오야기 마사하루를 범인으로 지목한 근거는 상황 증거뿐이었지만, 기이할 정도로 초기부터 실명이 텔레비전에 노출되었다. 놀라운 일이지만 지금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p.69)

  센다이 시가지에서 폭발물 테러로 가네다 총리가 사망한다. 선거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당선된 젊은 총리는 고향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퍼레이드 중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순간 TV로 생중계되고, 도시는 혼란에 빠진다. 신칸센과 재래선의 운행 중단, 주요 도로에 경찰 배치, 부총리 기자 회견, 경찰청 경비국 종합정보과에서 수사를 맡는다. 센다이에서는 (이전에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시큐리티 포드를 도입하고 있었다. 즉시 정보 수집 및 분석이 이루어진다.

  사건 다음 날, 경찰청은 신속하게 용의자를 발표한다. 폭파사건 직후 검문을 피해 달아났고, 목격자의 증언이 있었다. 이어서 매스컴은 용의자에 관해서 진위를 가리지 않고 보도 경쟁을 벌인다. 택배 기사로 일한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2년 전에 아이돌 가수를 치한으로부터 구해낸 영웅이었는데... 한순간에 총리 암살범으로 쫓기게 된다. 억울한 누명... 너, 오즈월드가 될 거라는 음성이 들린다.

  "마을마다 예산은 다르지만 말이야, 그래도 여름 휴가철이면 시집갔던 딸이 아이들 데리고 친정 와서 식구들끼리 함께 구경 가거나 하는 점은 똑같지. 온갖 직업에 다양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보겠다고 한자리에 모여서 하늘로 펑펑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며 아, 크다, 예쁘다, 내일도 다시 힘내야겠다, 생각을 하고, 내년에도 또 보러 오자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불꽃축제의 좋은 점이라고."(p.209-210)

  "불꽃놀이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이 보는 거잖아. 내가 보고 있는 지금, 어쩌면 다른 곳에서 옛 친구가 같은 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아? 아마 말이지, 그런 때는 상대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같은 생각?" 아오야기는 무심코 반문했다.

  "추억이란 건 대부분 비슷한 계기로 부활하는 거야. 내가 떠올리고 있으면 상대도 떠올리고 있지."(p.210)

  '나는 범인이 아니야. 아오야기 마사하루.' 자신이 쓴 글자가 남아 있다. 약간 비스듬하게 누운, 눈에 익은 글씨체다. 문제는 그 밑이었다. 아오야기의 글자보다 가늘고 예쁜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아오야기는 한동안 물끄러미 종이를 내려다봤다. 눈을 꾸욱 감는다. 눈에 익은 글씨체인지, 글을 쓴 진심이 무엇인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목구멍에서 소리가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얼른 안 가도 돼? 그렇게 말하듯 차가 계속 진동을 한다. '그럴 줄 알았어.' 이 한 마디가 가슴을 꽉 죄어온다.(p.368)

  "생각해보면 우리는 말이에요, 멍하게 있는 동안에 법률은 만들어지고, 세금이나 의료 제도는 바뀌고, 그러다 또 어디서 전쟁이 나도 그런 흐름에 반항할 수 없도록 되어 있잖아요. 좀 그런 구조라고요. 나 같은 놈이 멍하게 있는 사이에 자기들 마음대로 다 밀어붙이죠. 전에 책에서 읽었는데, 국가란 국민의 생활을 지키기 위한 기관이 아니래요. 듣고 보니 그렇더라고요."(p.400)

  "각 곡을 필사적으로 이어 붙여 메들리로 완성한 폴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이렇게 말한 게 누구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뿔뿔이 흩어진 멤버들을 다시 한 번 뭉쳐보고 싶었던 거야."(p.452)

  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만나 옛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모든 증거는 짜 맞춘 것처럼 아오야기를 범인으로 몰고 있다. 조작된 이미지... 언론 보도는 여기에 힘을 싣고, 감시 사회에서 빠져나갈 틈은 없다. 사흘간의 도망자 이야기이다.

  "내 이름에는 숲이라는 뜻의 '森(주 : 수풀 삼)'자가 두 개나 들어가니까. 숲과 인연이 질기단 말이야. 그래서인지 가끔은 숲의 목소리가 들려."(p.89)

  필자는 실제로 이 원고를 쓰기 전에 숲 속에 있는 공동묘지까지 찾아가 합장을 하고 왔다. 물론 대답은 얻지 못했고, 숲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p.84)

  비틀스의 '골든 슬럼버'를 들으며(흥얼거리며) 고향 같은 대학 생활을 그리워하고, 앨범이 만들어진 배경처럼 청소년식문화연구회도 어떻게든 한 번 뭉치기를 바라고, 헤어진 연인은 친구보다 못한 관계이고, 우리만의 추억이 있고, 알 수 없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가리지 않고 도움을 주는... 낭만적인 스릴러이다. 어쩌면 결말이 다소 허망하게 보일 수 있으나, 사건 20년 뒤의 르포를 누가 썼는지를 상상하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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