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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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이영미 역, [화차], 문학동네, 2012.

Miyabe Miyuki, [KASHA], 1992.

제6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소설 [화차]가 이렇게 노골적이고, 대장정의 추적 드라마였던가... 오래전에 구판(시야, 2000.)을 읽었을 때는 일본소설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충격이 어마 무시했다. 본격하고 구분하는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신판을 읽는 느낌은 탄탄하고 세밀한 구성으로 미스터리의 교과서라는 생각이다. 세키네 쇼코라는 이름, 우쓰노미야라는 지명, 신용카드 사용과 개인정보 보호라는 주제... 등 이미 내용을 알고 있어도 재미있다. 예전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문장의 맛을 찾을 수 있고... '화차'(火車)란? 생전에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실어나르는 불수레라고 한다.

  "은행과 신용판매회사의 신용정보기관 양쪽 모두에서, 세키네 쇼코라는 이름이 '요주의자 명단'에 올라 있었기 때문입니다."(p.28)

  젊은 여성의 실종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다. 도시에서는 길거리에 방치된 쓰레기통 뚜껑이 도난당하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빈번하게 여자들이 모습을 감춘다. 그러나 젊은 여자의 단독 실종에 '개인파산'이 얽혀 있는 경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가족이 다함께 야반도주를 했다면 모르겠지만, 남자가 아니라 빚 때문에 여자 혼자 도망을 치다니.(p.33-34)

  사고로 한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휴직 중인 형사 혼마 슌스케에게 죽은 아내의 먼 친척이 찾아온다. 은행원이라는 조카뻘 되는 남자는 결혼을 앞두고 실종된 약혼녀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한다. 세키네 쇼코는 신용카드를 만들기 위해 신용조회를 했더니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어 있었고, 그 이후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개인파산하고 관련하여 사라진 여자를 찾는 과정은 아주 생생하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이 호적등본을 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구라사카 가즈야 씨의 약혼녀는 단순히 '세키네 쇼코'라는 사람의 호적을 이용한 것만이 아니라, 그걸 모조리 자기 걸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p.114)

  "화차?"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혼마에게 이사카가 천천히 뒷말을 이었다.

  "화차여, 오늘은 내 집 앞을 스쳐 지나, 또 어느 가여운 곳으로 가려하느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어젯밤에 집사람이랑 개인파산 얘기를 나누던 중에 문득 떠올랐어요. 옛날 노래예요. <슈교쿠슈>(무로마치 시대의 개인 시가집)에 있던가."

  그것은 운명의 수레였는지도 모른다. 세키네 쇼코는 거기서 내리려 했다. 그리고 한 번은 내렸다.

  그러나 그녀로 변신한 여자가 그것도 모르고 또다시 그 수레를 불러들였다.(p.145)

  그녀가 다니던 직장에 가서 이력서를 확인한다. 첫 번째 반전은, 이력서는 거짓이다. 고용보험을 확인하고, 5년 전 파산신청을 담당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다. 두 번째 반전은, 사진 속 얼굴은 세키네 쇼코가 아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 행세를 한 것이다. 살았던 집에서는 아무런 흔적이 없고, 앨범 속 사진을 한 장 얻는다. 주민표, 호적등본, 호적부표를 확인하고 진짜 세키네 쇼코부터 조사한다. 고향, 동창, 옛 직장... 신용사회에서 한 여자의 인생은 꼬일 대로 꼬여있다. 단서를 찾아, 퍼즐의 조각을 맞춰야 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들에게 천만 엔, 이천만 엔씩 빌려주는 업자가 있다는 것부터가 비정상적이죠. 그러나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것은 이 업계 자체가 장렬한 자전거조업(만성적으로 자기 자본이 부족하여 타인의 자본을 잇달아 거두어들여서 가까스로 이어가는 조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빌려주고, 빌려주고, 또 빌려주는 겁니다. 마지막에 뒤집어쓰는 게 자기네 회사만 아니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 그럴 수 있는 겁니다. 사실 은행이든 신용판매회사든 신용대출이든 대기업은 좀처럼 마지막 차례가 되지 않아요. 지금 얘기한 구조 속에서 피라미드 상층에 있는 업자는 절대 당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청구서는 아래로, 또 아래로 밀려갑니다. 그에 짓눌려 채무자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중채무자라는 이름에 옥죄어서, 두 번 다시 떠오를 수 없는 곳까지 침몰해갑니다."(p.157-158)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이런 속임수에 걸려들기 쉽습니다. 소비자신용은 젊은 층 이용자 개척에 힘을 쏟고 있으니까요.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겠지만, 기업은 고객에게 달콤한 말밖에 안 합니다. 이쪽이 현명해지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현 상태에서는 그 부분이 뻥 뚫려 있는 겁니다. 대형 도시은행에서 학생용 신용카드를 발행한 지 올해로 딱 이십 년째인데, 그 이십 년 동안 어느 대학교가, 고등학교가, 중학교가 이 신용회사에서의 올바른 카드 사용법을 지도했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일인데 말이죠. 도립 고등학교에서는 졸업을 앞둔 여학생들을 모아 메이크업 강습을 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멋을 부릴 여유가 있으면 신용사회로 나가는 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가르치는 강습도 같이 해야 옳은 거 아닙니까?"(p.160)

  작가는 개인파산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사용자의 부주의보다 구조의 문제로 보고 있다. 젊은이에게 무분별하게 노출된 대출 서비스, 카드 한 장으로 누구나 쉽게 어디서든 돈을 빌릴 수 있다. 무리한 이자는 상환일을 어기면 금세 불어나서 빚이 빚을 부르는 설계이다. 우리나라도 사채 폭리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는데, 일본의 대부업을 도입(또는 진출)해서 생긴 것 같다. 처음 사회에 진출하는 이에게 올바른 신용카드 사용 교육은 꼭 필요하다.

  ......선생님, 어쩌다 이렇게 많은 빚을 지게 됐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난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p.170)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그러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죠. 그런데도 허물을 벗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혼마보다 앞서 다모쓰가 대답했다. "성장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후미에가 웃었다. "아니에요.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p.346)

  당신들 두 사람은 같은 부류였다.

  혼마의 뇌리에 스친 말은 그것이었다. 세키네 쇼코와 신조 교코. 당신들 둘은 같은 고통을 짊어진 인간이었다. 같은 족쇄에 묶여 있었다. 같은 것에 쫓기고 있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당신들은 서로를 잡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p.368)

  진짜 쇼코와 가짜 쇼코 사이의 접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억울하게 빚을 지고, 단지 행복하기 위해 빚을 지고... 그러면서 인생은 꽃가마(花車)를 타지 못하고 불수레(火車)에 오르게 된다. 결국 두 여자의 고된 인생은 같은 부류였고, 서로를 잡아먹었다. 형사의 체계적인 추적, 마지막까지 탄탄한 전개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소설은 아주 세밀하고, 논리적이고, 방대하다. 역시 미야베 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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