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구라치 준, 김윤수 역,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작가정신, 2019.
Kurachi Jun, [TOFU NO KADO NI ATAMA BUTSUKETE SHINDESHIMAE JIKEN], 2018.
작년 여름 책을 출간하자마자 읽었는데, 뒤늦게 쓰는 서평이다. 일본 속담에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죽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재수 없는 상황을 떠올렸지만, 시원치 않은 사람을 빈정댈 때 하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 속담으로는 "접싯물에 코 박고 죽는다"가 비슷한 의미이다.
ABC 살인
사내 편애
피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밤을 보는 고양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딛혀 죽은 사건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마치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각기 다른 장르로, 작가의 센스가 돋보이는 6개의 단편 모음이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
누구든 상관없다.
이유도 딱히 없다.
그냥 죽이고 싶다.
속이 후련해질지도 모르니까. 그게 다다.(p.9)
'ABC 살인'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을 오마주하고 있다. 추리와 블랙코미디의 결합으로 묻지마식 범죄를 다루고 있다. 짧은 분량으로 짜임새 있는 글을 완성하기가 쉽지 않은데, 시작은 아주 좋다!
마더컴이란 '마더컴퓨터'의 줄임말이다. 정식으로는 '종합식 기업인사 관리운용총괄시스템'이라는 명칭이 있지만(영어의 직역이라서 길다) 아무도 이처럼 어려운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모든 일을 맡아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마더컴퓨터'이고, 그것도 길어서 '마더컴'이라고 줄여 부른다. 부르기 쉬운 탓인지 어느새 사회에 정착되었다.(p.44)
'사내 편애'는 제일 재미있게 읽었는데, 가까운 미래 컴퓨터가 인사 관리를 포함해서 회사를 총괄 운용한다는 설정의 SF이다. 마더컴으로 불리는 인공지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인공을 끔찍이 아낀다. 하지만 당사자는 부담스러움을 넘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결국 이직을 결심하게 되고... 마지막 한 줄의 반전이 백미이다.
마쓰미야 마유의 시체는 천장을 향해 똑바로 누워 있었다. 당연히 얼굴도 천장을 행해 있다. 거기까지는 딱히 이상한 점이 없는 타살 시체이다. 나카모토 경부에게는 특별히 새롭지도 않다. 물론 천장을 향한 피해자의 입에 그런 것이 꽂혀 있지 않았을 때 이야기지만......(p.83-84)
'피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은 기이한 살인사건 현장을 이야기하는데, 피해자의 입에 파가 천장을 향해서 꽂혀 있다. 기분 나쁘다고 해야 할지, 엉뚱하다고 해야 할지, 우스꽝스럽다고 해야 할지... 범인은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벌였을까? 진실은 호러에 가깝다.
미코가 앉아 있다. 나와 할머니의 이불 사이에. 머리맡에서 1미터 정도 떨어진 다다미 위에 흑백의 고양이가 덜렁 앉아 있었다. 달빛만이 비치는 어둠 속에서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오도카니. 그런데 미코는 그저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p.126)
'밤을 보는 고양이'는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감각을 지닌 고양이를 소재로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빛이 내리는 어둠 속을 계속해서 응시하는 고양이 미코... 정말 고양이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앞으로 쓰러진 시체와 그 주변에 흩어진 두부. 게다가 시체의 후두부에는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닥쳐 죽은 것으로 보인다. 1944년 12월 초순. 제국육군특수과학연구소 2-13호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이다.(p.157)
두부 모서리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문득 언 두부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딛혀 죽은 사건'은 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의 실험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다. 밀실 공간에서 시체의 머리 옆에는 두부가 흩어져 있다. 장황한 설명과 비교해서 다소 황당한 결말이다.
네코마루 선배는 하마오카의 학창 시절 선배다. 대학을 나온 뒤 취직도 안 하고, 서른이 넘어서도 어슬렁어슬렁 놀며 지내고 있다. 자유인이라고 할지. 한량이라고 할지. 괴짜로 할지. 무책임한 언동으로 학생 때부터 눈에 띄었던 유명인이다. 호기심이 가는 대로 촐랑촐랑, 태평하게 살아가는 길고양이 같은 인물이다. 그 선배가 왜 이런 곳에?(p.231)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은 본격 추리이다. 연구소에서 개발한 첨단 신소재를 본사로 안전하게 가져와야 한다. 엄중한 보안이 있어야 하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네코마루 선배를 만난다. 학창 시절 기이한 행동으로 유명한 그가 여기에 왜 있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6개의 단편은 호불호가 확실히 갈렸다. 어떤 것은 짧으면서 기발함이 있고, 어떤 것은 길면서 지루함이 있다. 그래도 일본소설 특유의 가벼움과 추리소설 특유의 센스가 돋보여서 좋았다. 역시 단편은 짧고 가볍고 기발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