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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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권일영 역, [용은 잠들다], RHK, 2006.

Miyabe Miyuki, [RYU WA NEMURU], 1991.

제45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이런 발칙한 상상은 멜 깁슨 주연의 영화 <왓 위민 원트>(2000.)로 만들어졌다. 광고 기획자로 일하는 주인공은 어느 날 욕실 바닥에 넘어져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뒤에 여자들의 속마음이 들린다는 설정이다. 그는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훔쳐 승진하고, 또 좋아하는 여자를 유혹한다. 현실에서 실제로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것은 희극이 아니라 비극에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 영화보다 훨씬 먼저 출간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용은 잠들다]는 마음을 읽는 두 초능력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범인, 잡힐까요?"

  신지가 물었다. 고개를 들고 경찰관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범인이라니?"

  "당연하죠. 맨홀 뚜껑을 열어둔 사람이요. 설마 수도국 직원이 닫는 걸 깜빡했을 리는 없잖아요."(p.31)

  고사카 쇼고는 주간지 <애로 Arrow>의 기자이다. 폭풍우 몰아치던 날에 길가에 펑크 난 자전거를 세워둔 이나무라 신지라는 소년을 차에 태워주는데, 이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둘은 얼마 가지 않아서 도로 한복판에 빗물이 거센 물살을 이루며 흘러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곳은 맨홀 뚜껑이 열려 있었고, 곧이어 한 아이의 실종 소식이 전해진다. 소년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맨홀을 열어 놓았고, 지나가던 아이가 빠져 죽었다는... 그래서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아니,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야. 능력은 누구나 갖고 있어. 잠재적으로는 말이야. 다만 대부분 그걸 밖으로 끌어낼 능력이 없는 거지. 밖으로 끌어내는 능력도 함께 갖고 태어나는 아이는 적다고 바로잡아야겠네. 그 양쪽의 능력을 함께 갖추고 있는 사람이 초능력자, 사이킥이지. 그리고 말이야, 내 경우에도 그랬지만 초능력에 가속도가 붙게 되는 것은 열한두 살쯤부터인 모양이야. 2차 성징이라던가? 다른 능력도 마찬가지지. 예술적인 재능이나 운동 능력 같은 것 말이야. 나이가 그쯤 되면 아이 스스로도 알게 되지. 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스케치를 더 잘한다, 달리기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진 적이 없다. 몇 번 연습하지도 않았는데 금방 잘해 낼 수 있구나. 그런 것들이 재능이겠지? 어른들은 흔히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나? 이 애는 그림에 재주가 있다. 친척 가운데 누구누구를 닮았다, 분명히 재능이 있어, 유전이야, 라고."(p.77-78)

  "사이킥의 능력도 다른 재능과 마찬가지야.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어. 연습하지 않으면 그 재능은 잠들어 버리지. 연습을 하면 좋아져. 대개는 말이야. 그리고 어느 사이킥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 크지 않을 경우 본인이 기분 나빠하거나, 주변 환경이 좋지 않거나 해서 그 힘을 잠들게 해 버린다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어. 세계적인 화가가 될 수 있을 만큼 그림에 큰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라 해도 본인이 그림을 그릴 생각이 없다면 평생 그림 한 장 그리지 않고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 하지만 사이킥의 경우 그리 쉽게 잠들어주지 않을 정도로 능력이 클 때는 그렇지가 않아. 간단치가 않지. 본인이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연습하지 않으면 치명적으로 위험해지는 거야!"(p78)

  어처구니없는 대화였다... 신지는 상대방의 기억을 스캔해서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초능력자, 사이킥(Psychic)이라고도 하는 남과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대부분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한다. 능력은 성장 환경의 영향을 받는데, 재능처럼 개발하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능력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기자는 눈속임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현실과 비현실, 합리와 불합리는 아주 잘 어우러진 형태로 공존한다.

  영원히 교차할 일이 없는 철길과도 같다. 우리는 그 양쪽에 바퀴를 얹고 달리고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가가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현실을 초월해야 할 종교가가 세금을 안 내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인텔리전트 빌딩을 지으면서도 진지한 얼굴로 고사를 지낸다. 합리의 레일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냉혈한이 되고, 불합리의 레일로 기울어지면 광신도가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어느 지점에선가 탈선하게 되어 있다.(p.88-89)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합리와 불합리 사이에서... 그가 본 것은 전부 사실일까? 남의 기억을 읽는다고 해도 그것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방법은 없다. 누구나 속마음을 부인하고 거짓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감정으로만 치우치면 자칫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세상 경험 없는 소년은 맨홀 뚜껑을 열어 놓은 범인을 찾았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초능력이 무기력하고, 오히려 정신세계를 갉아먹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모두 보고, 듣는다면... 이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끊임없이 밀려오는 속마음, 속마음, 속마음의 홍수. 거기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능력을 컨트롤해야 할 뿐 아니라 자기감정까지 자제해야 한다. 속된 말로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이가 말이나 태도로 표현하지 않는 한 주위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문제가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전부 들린다면? 듣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듣지 않아야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과연 그 호기심을 완전히 억누를 수 있을까? 그리고 상대방의 진심을 알게 되고 나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p.144-145)

  오다 나오야라는 소년이 편집부를 찾아온다. 신지의 능력을 전면 부정하면서 그가 속임수를 썼다고 주장한다. 초능력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으니 더는 만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한다. 신지와 나오야는 어떤 관계일까? 초능력을 말하는 소년과 이것을 부인하는 소년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눈앞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진짜 사이킥이라면, 그에 걸맞은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조사하면서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청취하기로 한다.

  오다 나오야는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기에 그런 결론에 다다른 것일까. 툭하면 다투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 인생의 목적을 잃고 술에 빠져든 아버지. 그들의 속마음과 고뇌 그리고 꿈과 희망. 그런 것들이 빤히 보이면서도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아, 모든 걸 단절하고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 것일까.(p.392-393)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자기 자신 안에 용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신비한 모습의 용을 말이죠. 그 용은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함부로 움직이고 있거나, 병들어 있거나 하죠."(p.469)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 안에 용을 한 마리씩 키우고 있는 것일까? 남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런저런 여건으로 끌어내지 못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용이 깨어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그런데 특별한 능력은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으면, 상처로 결국 단절된 삶을 살게 된다. 고사카 쇼고에게 의문의 편지가 배달되고, 누군가 과거의 기억을 건드리며 협박을 한다. 진실을 알기에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고, 또 누군가는 그만큼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초능력의 명과 암을 확실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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