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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자살 - 개정판 ㅣ 변호사 고진 시리즈 3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9월
평점 :
도진기, [정신자살], 황금가지, 2017.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끝맺음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숨은 이야기를 포함해서 하나하나 맞아떨어지는 결말은, 감탄과 함께 글쓰기 장인의 인고한 세월이 느껴진다. 전직 부장판사이고 현직 변호사라는 작가의 특별한 이력, 정신을 파괴해서 육체를 치료한다는 새로운 개념, 어둠의 변호사 고진과 경찰대의 희귀종 이유현의 활약, 거기에 4년 전 악연(?)이 다시 드러난다. [정신자살]이라는 제목과 소설의 시작은 매우 좋았지만, 석연치 않은 결론으로 가능성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정신자살연구소라......
이 간단한 웹페이지가 나를 짙은 당혹감에 휩싸이게 했다. 정신을 파괴해서 육체의 생을 치유한다...... 괴이한 발상이었지만, 생사의 경계선에 있는 나 같은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p.16)
고진은 4년 전 돌연 판사직을 그만두고 법정 주변에서 사라졌다. 그 후로 변호사 사무실을 열지 않고 법정에도 나가지 않으며 오직 뒷길에서만 사건 의뢰를 받아 왔다. 정공법보다는 법률의 맹점을 이용해 제멋대로의 사건 해결을 꾀하는 그의 변칙적인 행태 때문에 은밀한 의뢰인들 사이에서는 '어둠의 변호사'라는 별명으로 꽤 알려진 인물이 되어 있었다.
이유현이 고진을 알게 된 건 그가 판사를 그만두기 전, '어떤 사건'에 같이 휘말리면서였다. 두 사람의 기질은 록과 트로트의 조합만큼이나 안 어울리는 듯했지만 기묘한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고진이 법원을 그만둔 뒤 일체의 연락이 끊어졌다가, 1년여 전 우연히 두 사람은 재회했다. 이유현은 4년 전의 그 사건이 고진의 신경을 휘저은 내막을 안다. 이유현은 뒷길을 걷는 고진을 탓하면서도 불가사의한 사건에서 발휘되는 그의 직관력을 인정하고 답답한 사건의 내막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동료보다 많은 것을 공유한 기묘한 관계였다.(p.31-32)
파탄 난 결혼생활, 아내는 '미안해. 나를 찾지 마.'라는 아주 짤막한 쪽지를 남기고 1년 전에 가출했다. 아내에 대한 의존성, 예술가다운 섬세한 감성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이 돋보인 여자였다. 그녀는 왜 나를 좋아했을까? 주변에는 남자가 많았고,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아내가 사라지자 내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서른 남짓한 인생, 그냥 대충 살면 곱절 이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죽음을 향해서 내달리는 무의미함이 아닌가... 자살을 생각하고, 정신자살연구소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기 편한 말로 한마디씩 던집니다. 죽을 용기로 살지 그랬어, 가족을 생각해야지...... 참 피상적인 참견이죠. 자살자들은 영원한 침묵이라는 단 하나의 구원만을 추구한 사람들입니다. 그보다 고독한 사람이 있을까요. 자기 손으로 묘혈을 파는 사람들의 운명적인 의지의 깊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외자로서 이런저런 말을 감히 할 수는 없었지만 저에게도 그들의 짧은 생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기적보다 더 낮은 확률로 부여받은 생명이지 않습니까? 생물학적으로는 부모의 그 무수한 정자와 난자의 순열조합 중에 우연히 얻어걸린 생명입니다. 아버지가 만약 그날 회식이라도 있어 늦게 들어왔다면 성립할 수 없었던 인생입니다. 그 부모의 부모, 조조부모 세대, 그 이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또 그 부모의 사랑과 만남의 확률론까지 계산하면 그 생명은 한 우주의 탄생과도 맞먹는 압도적인 기적입니다. 물론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생명이야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나'로부터 역산해 보면, 다른 사람이 아닌 하필 '내'가 태어날 확률은 원숭이에게 타이프라이터를 던져 주었을 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두드려 낼 확률 이하입니다. 로또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행운, 그 생명의 한 방울을 그리도 허무하게 소멸시키다니요. 의사들은 환자의 몸에 난 종기 하나를 고쳐 내기 위해 백날을 고전했는데, 정작 그 환자는 20층 빌딩 꼭대기에서 훨훨 몸을 던져 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p.44-45)
컴퓨터 하드를 포맷하고 새로운 데이터를 저장하듯이 인간의 정신을 초기화하고 새로운 기억을 프로그램할 수 있을까... 인간은 우울증을 비롯하여 금전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생을 끝내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다소 실험적이면서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이탁오 박사의 등장인 4년 전에 이어서 이번에도 살인사건으로 이어진다.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는 사건...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는 듯한 기분... 인간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신이 되기 위한 포석인가 아니면 오락처럼 즐기기 위한 장난에 불과한 것인가...
"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좋은 말씀들만으로는 자살을 막을 수 없단 말일세. 현대에서는 더 이상 정신수양으로 해탈에 이르기 힘들듯이 자살을 막는 일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해. 대신 '약물'과 '기술'이 있지 않은가. 사이코패스는 교화될 수 없지. 유일한 방법은 세로토닌을 투여하는 것뿐이야. 설교로 대응할 수 없기는 우울증도 마찬가지야. 거기엔 프로작 투여 이상의 방법은 없어. 그렇다면 자살에는 대처할 수 있는 다른 '기술'이 없을까. 생각을 바꾸면 돼. 정신이 길을 잘못 들었으면 말일세, 그걸 헛되이 단련시킬 게 아니라 오히려 병든 정신을 파괴해 버려야지. 쉽게 말해 영혼을 리셋해 버리면 된다, 이거야. 그게 이름하여 내가 하려는 정신자살 시술이란 말이지."(p.227)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 함정에 빠뜨리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술... 고진 변호사와 이탁오 정신과 박사는 서로 닮은 같은 부류이다. 고진은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고, 이탁오는 정신의 문제를 이용하여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종하고 선택하게 한다. 쫓는 자와 도망하는 자의 라이벌 구도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둘의 간격은 조금씩 좁아진다.
흥미롭더군. 역시. 인간은 누구라도 다르지 않았어.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호들갑스럽게 동정하지만, 과연 내면에서도 그럴까? 상투적인 감상주의를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뒷감당 걱정 없이 설정하라면 그들은 어떤 모습을 띨까? 사람들은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자신의 주머니를 가장 먼저 들여다본단 말일세. 어느 누구라도 말이야. 자신의 목숨과 만 명의 목숨이 걸린 문제에서 인간은 어느 쪽 스위치를 누를까? 아, 만 명이 부족하다면 100만 명은 어떤가? 100만 명이 죽어 자신이 산다면? 그것도 아니라면 그 반대편을 가볍게 하는 건 어때? 목숨이 아니라 자신의 전재산과 100만 명의 목숨, 자기 가족의 생명과 100만 명의 목숨이라면? 난 들키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는 조건하에서는 인간은 주저 없이 자신 쪽을 보존하는 스위치를 누른다고 생각해. 무균 상태에서는 말이야. 그들이 유별난 욕심쟁이라고 생각하나? 절대 아냐. 보통 사람이야. 사람은 누구든 양심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악을 선택해. 각자의 저울은 천차만별이라도 그 눈금은 하등 다르지 않은 게 인간이야. 인간이란 동물, 참으로 재미있지 않나......"(p.340-341)
상황윤리, 선택의 갈림길에서 정말로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인가... 나를 우주의 중심에 두고, 나를 중심으로 살다가 어느 순간 이것이 무너지면 과감히 생을 포기하는 불완전한 존재... 그래서 정신자살연구소를 찾아 육체 대신 정신을 파괴함으로 생을 유지하며 새로운 삶을 사는 것부터 해리성 장애와 다중인격까지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법정과 법률에 관한 생생한 서술이 장점이나 결국에는 발목을 잡은듯하다. 사회파 미스터리로 우리나라의 '자살 문제'를 심층 다루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