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빠알간 쇼파에 누워 등을 보이고 있는 저 여인의 마음 상태는 어떨까? 제목보다 먼저, 표지의 강렬함이 나를 유혹한다. 요즘 폭풍 인기몰이 중인 <박범신> 작가의 작품이고, 몇 권의 책으로 이미 내 마음에 자리해 버린 <자음과 모음> 출판사의 작품이니 다시 생각할 것도 없이 집어 들었다. 비즈니스.. 책을 읽기에 앞서 난 표지와 제목을 보고 내용을 상상해 보곤 한다. 비즈니스... 일?? 돈?? 이 작가, 속에 담긴 무언가를 내 뱉으려 하고 있다. 두근두근..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마흔이라는 나이를 코 앞에 둔 여자이다. 그녀는 개발하다가 중지된 구시가지에서 삶에 무기력한 남편, 중학생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구시가지의 개발이 중지된 후, 활발히 개발하여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신시가지에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 그녀의 친구가 일하러 가끔 들르고, 서울 강남에 있는 외고에 들어 가기 위해 아들이 밤 늦도록 공부하는 학원과 과외하는 곳이 있다.
그녀의 청춘 시절, 남편은 꿈과 열정으로 고시 공부에 전념했지만 결국 시험에 합격하지는 못했다. 사랑으로 시작한 삶이 점점 피폐해지고, 지금은 서로에게 관심조차 없다. 그녀는 오로지 아들에게만 모든 것을 쏟는 엄마이며, 아들의 삶을 남편의 삶처럼 만들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졸업한 학교가, 생활했던 지역이 내 삶의 뒷받침이 될 수 있고, 나아 갈 수 있는 힘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힘들어 하지만 그녀는 아들이 학교가 끝난 후 매일 신시가지에 있는 학원에 보내고, 그 후 또 매일 과외공부를 시킨다. 강남에 있는 외고로 진출하기 위해... 나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보고 자라 온 환경에 아이는 변화하게 되어 있다. 부모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친구들의 성향은 어떤 지에 따라 아이들의 성격과 목표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그리 시켜 봤자 효율성이 있을까? 과연 아이가 자라서 그 모든 것을 감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녀의 교육관과 인생관 덕분에 요즘 세태를 돌아 보고,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위의 문제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아들의 교육 문제에 고민하던 그녀는 비싼 과외비를 충당하기 위해 비즈니스에 뛰어 들게 된다. 이 비즈니스는 매춘이다. 매춘으로 돈을 벌어 아들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들려 오는 소문에 의하면 책 속의 주인공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도 이러한 엄마들이 많다고 한다. 남편의 밥벌이만으로 아이들 교육을 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매춘에 뛰어 드는 행위... 과연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사회적인 문제인지, 가정적인 문제인지, 윤리적인 문제인지, 상식적인 문제인지... 이제는 헷갈리기만 하다. 대책이 필요하고, 시급한 문제이지만 파헤쳐 해결하기 힘든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도 내일도 변화라곤 없는 무난한 시간들, 혹은 무난하게 마모되는 것 같은 인생이 너무 싫었던 건지도 몰라요. 이곳은...... 수렁이에요.
- p. 104
그 시기 신시가지에서는 '타잔'이라는 도둑이 출몰한다. 부유층의 자택에 침입해 고가품을 훔쳐 달아나는 그 도둑을 잡을 수도, 흔적을 찾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신출귀몰한 그 도둑이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도 있다. 부유한 집만 털어가니 살림이 넉넉치 않은 사람은 오히려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하기까지 한다. 그 도둑 또한 구시가지에 사는 자폐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다. 구시가지의 개발이 중단되고, 신시가를 개발하면서 생긴 피해자였던 것이다. 있는 자들의 횡포로 인해 한없이 헤어나지 못하는 구렁텅이로 빠지기만 하는 그의 인생에 더 이상은 희망이 없는 듯하다. 도둑질을 하는 그의 행위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그와 함께 했다면 나는 과연 그를 신고할 수 있었을까?
그게 잘못이었어요. 문제는요, 밀려나고 또 밀려나면서, 결국은 나를 떠민 자들과 내 자신이 너무나 닮은 꼴이 돼갔다는 것이었어요. 아내가 늘 지적했었는데도요. 이제 그런 나로 되돌아 갈 수 없어요. 지금 내 귀에 들리는 것은, 한가지 뿐이에요. 저 바다의, 신음소리......요.
- p.148
그와 그녀는 어쩌면 사회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범법 행위를 하는 그런 자들을 옹호하는 내가 이상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읽는 동안 나는 오로지 그녀가 가족에게 들키지 않기를... 그의 실체가 세상에 밝혀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행위는 나빴으나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었다. 아니 보듬어 주고 싶었다. 세상으로 부터 그들을 감싸 안아 지켜 주고 싶었다.
온 세상에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밝혀지고 난 후 그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며 사라졌고, 그녀는 자폐증을 앓는 그의 아들 여름이를 품에 안았다. 자신의 아이도 아닌 그 아이를 가슴으로 품었다. 이런 그녀를 욕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 그녀의 인생이 더 이상 고단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본다.
주인공 두 명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리뷰를 썼으나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어 고마운 책임을 밝혀 둔다. 삶에 찌든 현실의 가정 문제, 빈부의 차가 확실한 친구 문제, 개발된 곳과 개발되지 못한 곳에 대한 사회 문제, 장애아를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의 문제, 범법 문제까지 여러 소재가 접목되어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준 고마운 소설이다. 무거운 주제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넘기는 책장에 놀랄 것이며, 의외로 담담하게 범법 행위를 지지하는 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범신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어 보았는데 앞으로 이 작가의 작품을 빠트리지 않고 읽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2011년에 처음으로 접한 책이 <비즈니스>여서 정말 기쁘다.
내 안에 나이 들지 않는 포악한 짐승이 한 마리 살아요. 글을 쓸 땐 이놈이 얌전히 엎드려 있는데, 글을 쓰지 않고 있으면 꿈틀꿈틀 옆구리 생살을 찢고 나와요. 알고 보면 이놈한테 생살이 찢기지 않으려고, 살려고 쓰는 거랍니다.
- p.243 작가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