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서윤빈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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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서윤빈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재난을 다루는 연작소설집이다. 저자인 서윤빈 작가는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루나」라는 작품으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소설집 「파도가 닿는 미래」, 「날개 절제술」, 장편소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등이 있다. 처음에 이름만 봤을 때는 요새 떠오르는 여성 SF 작가들과 결이 맞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색을 해보니 남성 작가 분이어서 약간 놀랐다.

기후변화로 인한 사건들과 재난에 대처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에는 총 7개의 재난 단편 소설이 담겼다. 이상 기후로 폭우와 폭염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엄청나게 비싼 생선을 배달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이상 기후의 안전 지대인 벽을 넘어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한때는 인기있는 관광지였으나 사람들의 피부를 녹여버리는 무서운 해변이 되어버린 이야기 등 기후 때문에 인류가 편하게 살기 힘들어진 시대를 배경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책을 덮고 나니 두번째 소설 「농담이 죽음이 아니듯, 우리는 땀 대신 눈물을 흘리는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죽어버린 아이, 하지만 부패하지도 않고 너무나 미스터리한 상태로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유지되고 있었다. 수장의 방식으로 아이가 담긴 관을 계속 떠내려 보내지만 어떤 이유에서 인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의문의 남자와 여자가 집에 찾아오고, 기후 때문에 변해버린 거주 지역을 기점으로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래의 이야기지만, 어떻게 보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도 보이는 거 같아서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종말'은 책이든 영화든 많은 문화 콘텐츠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종말에 잘 대비하고 있는 걸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날씨도 사상 최대 36도에서 38도 사이를 기록 중이다. 지구 온난화와 갈수록 더워지고 있는 한반도. 책에 등장하는 이상기후들이 머나먼 미래가 아니고 상당히 가까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 변화, 재난이 인류에게 종말을 가져오지 않기 위해 다함께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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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사는 사람 샘 올트먼 - AI 시대를 설계한 가장 논쟁적인 CEO의 통찰과 전력
키치 헤이기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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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키치 헤이기 <미래를 사는 사람 샘 올트먼>










샘 올트먼. 이제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다. ChatGPT를 탄생시킨 OpenAI의 CEO. 화제의 인물인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ChatGPT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지에 대해 많이 궁금하던 와중에, <미래를 사는 사람 샘 올트먼>이라는 평전을 발견했다. 이 책은 키치 헤이기라는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가 샘 올트먼이 급부상한 과정과 기술에 대해 저술한 책이다. 샘 올트먼을 다룬 첫 평전이기에 정말 빨리 읽고 싶었다.

ChatGPT 탄생 이전, 샘 올트먼의 오래 전 학창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는 호기심이 정말 많으면서, 좋아하는 일에는 12시간 동안에나 빠져 있을 정도로 몰입력이 우수한 학생이었다. 스타트업 창업도 경험을 하고, 애플이 주최하는 기술 설명회 참가, 투자자 유치 등 굵직한 일들을 젊은 나이에 해내게 된다. 운이 좋아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서 그런지 ChatGPT는 기업의 영리추구가 아닌, 인류에게 유익한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출발하게 된다.

업무적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의 동성 남편과 대리모 출산에 대한 이야기, 일론 머스크와 협력 그리고 이별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특히 일론 머스크는 OpenAI에 5천만 달러나 거금을 기부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기부 이후로 OpenAI의 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샘 올트먼과 논하게 되고, 테슬라로 인수,합병되어서 안정적인 자금을 지원받기를 원했으나, 결국 샘 올트먼과의 의견 차이로 갈라서게 된다. 테슬라는 현재 xAI 라는 인공지능 회사를 만들어서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샘 올트먼은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주지사가 되고 나중에 대통령이 되어서 사회를 바꾸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주변인들의 만류로 아직까지는 정치에 입문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그가 정치판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바꾸겠다는 그의 초심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ChatGPT가 만드는 이로운 세상은 결국 대한민국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두꺼운 책이었지만 문장이 어렵지 않고, 한 챕터 한 챕터 모두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해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요즘 업무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ChatGPT와 구글 Gemini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다들 쓰길래 나도 써봐야지 하면서 이제 없으면 허전하고 불안할 정도가 되었는데 앞으로 또 어떤 인공지능 플랫폼들이 생기고 발전할 지 정말 큰 기대가 된다. ChatGPT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샘 올트먼이라는 이름을 한 번은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p.21

「저는 경력 초기에 굉장히 운이 좋아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어요. 이제 흥미롭고 중요하고, 유용하고 영향력이 크고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한 일을 하고 싶지, 돈은 더 필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결정을 내릴 겁니다. 그가 잠시 뜸을 들이면서 적절한 단어를 찾았다. 시간이 흐르면 이상해질 결정이죠.」

p.123

올트먼은 실제로 고환암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그해 여름 케임브리지 아파트에서 12시간 동안 코딩에 몰두하면서 라멘만 너무 많이 먹어서 괴혈병에 걸렷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는 또한 그해 여름에 NEA와 자금 조달 대화를 계속했고, 스프린트에서 일하는 청의 지인을 만나러 갈 생각이라고 말해서 Y 콤비네이터의 동료들을 놀라게 했다.

p.143

「샘은 아주 보기 드문 친구예요. 그를 만나자마자 곧바로 와, 이 친구 정말 탐구심이 많고, 사려 깊고, 통창력이 있고, 편견이 없고, 현명하고,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했죠. 바로 그 순서대로 말이죠. 샘을 만나자마자 즉석에서 그를 일론이나 빌 게이츠, 패트릭 콜리슨, 스티브 잡스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싶었어요.」 와이든의 말이다.

p.184

2008년 6월 프레젠테이션 직후 스물두 살의 올트먼은 테크 업계의 스타로 부상했지만, 또한 대담한 패션 선택으로 테크 블로그 세계에서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세상이 아직 그의 이름을 분명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제 사람들은 <칼라 두 개를 겹쳐 세워 입은 남자>는 기억하게 되었다.

애플 내부에서 루프트는 대박 상품이었다. 다운로드 건수가 급증했고, 몇 달 뒤 애플이 해외 출시를 준비할 무렵 잡스는 자신이 아이폰 출시 예정일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모든 나라와 언어에서 루프트의 위치 기반 기술이 제대로 작동할지 확인받고 싶어 했다. 당시 기술 상태를 감안하면 이는 어려운 주문이었다.

p.270

그 대신, 대다수 참석자들—과 머스크, 스티븐 호킹, 많은 인공 지능 연구자를 비롯해 모두 합쳐 8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결국, 테그마크의 말을 빌리자면 <목표가 불분명한 지능이 아니라 유익한 지능>이 되어야 한다는, 인공 지능 연구의 목표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서한 참여자들은 인공 지능이 <유익하게> 유지되도록 보장하는 연구를 확대할 것을 호소하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의 인공 지능 시스템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p.306

뒤이어 3월에 전 세계 2억 명이 시청하는 가운데 6개월 더 발전한 알파고가 세계 바둑 챔피언 이세돌을 꺾었다. 구글의 공동 창립자 세르게이 브린과 최고 경영자 에릭 슈미트가 서울로 날아가 자사가 창조한 기계를 응원했다. 알파고는 다섯 경기 중 한 경기에서 무척 이상한 수를 두었는데, 몇몇 바둑 해설자는 처음에는 실수라고 생각했다. 기존 행마와는 거리가 멀게, 그냥 바둑판 위의 빈 공간에 아무렇게나 검은 돌을 놓은 것 같았다.

p.309

이 시기 동안 머스크와 올트먼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들러서 오픈AI 개발 팀의 진행 상황을 살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비롯한 여러 회사를 운영하던 머스크는 분명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올트먼도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유력한 네트워크인 Y 콤비네이터를 진두지휘하는 벅찬 업무 때문에 매주 방문하는 것 말고는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P.310

역사적인 테크 호황이 한창인 실리콘 밸리의 최정상에 앉아 있는 올트먼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는 실패하고 있었다. 집세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YC 리서치도 미래의 <가능한 최선의 도시>를 건설하는 일에 착수했다. <도시는 무엇에 최적화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주거 비용을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 같이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었다.

P.324

트럼프가 승리하자 올트먼은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이 아는 유일한 방법으로 트럼프 당선을 막기 위해 노력했었다. 이 경우는 보트플리즈라는 유권자 등록 터보 택스 소프트웨어의 개발 비용을 대고 직접 만들었다. 이제 그는 다시 코딩으로 눈을 돌려 <트랙 트럼프>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트럼프 취임 100일 동안 대통령이 한 행동을 그의 선거 공약과 비교해서 점수를 매기는 사이트였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사용해서 전국 각지에서 트럼프를 찍은 유권자 100명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에게 직접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블로그에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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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과 상식에 관하여 -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관계성을 향한 탐구의 여정
최성환 지음 / 좋은땅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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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 <익명과 상식에 관하여> 















<익명과 상식에 관하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익명'과 '상식'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1장 <생각의 숲>부터 14장 <다시 생각의 숲으로>까지 총 14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익명, 상식, 신념, 이념, 그리고 개인과 사회로 키워드를 확장하면서 저자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왔던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거대 익명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언론과 교육이라는 전통적인 매개체를 통해 오랜 기간 자리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아 온 '상식'에 대해 저자는 물음표를 던진다. 우리가 믿는 상식은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이 생각들은 항상 옳은 것일까? 


저자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 하루 8시간씩 꼬박꼬박 일하는 회사원들. 어떻게 보면 자유로울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임금을 많이 받는 정규직들과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비정규직들. 이들을 보면 평등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법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해야 하는 국가임에 분명함에도, 그리고 우리 상식으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 삶의 모습은 정반대이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상대방의 불운에 의한 안식으로 유지되는 사회만큼 비참한 곳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서열의 계층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고, 자신보다 낮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안식을 느끼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가면 갈수록 살기가 빡빡해지고, 밝은 미래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 이 상황에 딱 맞는 말이 아닐까? 


출산율 0.7명.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오늘 아침에 보았다. 아파트 가격은 치솟고, 물가는 오르고, 기업들은 채용 규모를 감소하고, 내 월급은 오르지 않는다. 출산율이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문제임을 알지만 바꾸기가 힘들다. 잘못된 현 상황을 조금씩 개선해 나아가기 위해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관심을 갖고 행동할 수 있을까? 투표를 잘해야 한다. 전 국민 투표율이 90퍼센트를 넘긴다고 생각하면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물론, 선거기간에만 포퓰리즘식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니 일단 저질러보고 생각하자. 국민의힘이랑 민주당 둘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다수가 믿는 '상식'을 한번 깨보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생각들을 한 번씩 다 의심해 보게 되었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 강조한 것처럼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지 고민해 봐야겠다. 모든 문장이 가슴에 와닿았고, 기록해두고 싶은 구절도 많았지만 아래의 분량 정도로만 남겨 놓는 것이 좋겠다. 자세한 책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주제인 만큼, 독서모임에서도 같이 읽어고 생각을 공유해도 좋을 것 같다. 








p.21-22

'생각을 제한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자. 이 질문의 답은 이 책의 핵심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만약 생각을 제한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그 무엇에 대항할 수 있다면, 생각의 지평을 조금이라도 넓힐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생각의 숲에서 길을 나타내는 표지는 우리가 피부를 직접 맞대고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런 현실 속의 환경이 제공하는 수많은 요인은 생각의 숲의 지형을 마음대로 휘저어 수만 가지 생각을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p.35

사회의 목소리는 알 수 없는 자들로부터, 밝혀지지 않은 이름들로부터 터져 나온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익명'이라는 용어로 함축하고자 한다. 사회의 거대한 익명은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암시를 보내는데, 암시는 구체적인 내용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의미 전달의 방법이다. 암시는 모든 개인의 행동, 언어, 심지어 표정, 분위기 모든 것에 녹아 들어가 있으며, 사람을 연결시키는 모든 의사소통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p.36-37

실제로 우리는 가치편향적인 언론과 교육이 국민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배웠으며, 외형상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익명의 암시는 언론과 교육의 효과에 선행하는 더욱 근원적인 것이다. 만약 익명의 암시가 없는 언론과 교육이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이는 인간 공동체에서 익명의 암시는 교육이나 각종 미디어가 없더라도 작동한다는 의미다. 다른 측면에서 언론과 교육은 우리에게 각종 가치를 주입하는 암시의 최종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p.44

이런 자본의 암시로 만들어진 생각들은 너무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기에, 이를 인지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의 익숙함이란 특별하게 인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익숙함은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낯설고 어색한 감정을 거울로 삼아야만 알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익숙하여 쉽게 인지되지 않는 생각들은 사회 구조, 법령, 자본의 분배 지형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일상생활 속의 사람들의 숨결 속에도 숨어 있다. 


p.84

우리는 모두에게 익명인 상태로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대다수는 여전히 익명인 채로 남아 있다. 우리는 관계를 맺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본인의 존재를 드러내고 고유한 이름으로 불린다. 익명의 관계로 편입되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아주 조금씩 나눠 갖는 것과 같다.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이야말로 관계의 본질이며, 그 관계의 마지막 핵심에는 서로에게 모든 것이라 선언하는 사랑이 있다. 


p.97

익명의 그림자가 암시하는 공포는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그 가치가 무엇을 가리키든 상관하지 않는다. 자본을 지향하는 사회는 자본이 공포를 만들어 내며, 관계를 지향하는 사회는 관계가 공포를 만들어 낸다. 공포는 그 가치의 방향에 따라 함께 움직일 뿐이다. 


p.125

우리 시대의 안식은 쉽게 변질될 수 있기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언제든지 특정 대상의 파멸을 통해 안도하는 비정상적이고 파괴적인 안식의 감정으로 발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상대방의 불운에 의한 안식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사회만큼 비참한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의 개인들이야말로 완전하게 고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방의 불행을 근거로 안식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기제는 자본의 서열로 계층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활발하게 작동하며, 이렇게 삐뚤어진 안식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p.151

정치는 사회의 무의식적 영역인 익명의 외침과 암시를 의식화하는 중심에 있으며, 이를 현실화시킨다. 그렇기에 익명의 그림자로 야기되는 문제가 현실에 터져 나오면 결국 정치적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념적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존속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행위를 위반하는 탐욕적인 행태들은 법으로 금지된다. 특히 경쟁은 자본주의 시장의 핵심 가치로, 경쟁을 무력화하는 자본의 탐욕적인 행태야말로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가장 우선적인 것이다. 


p.161

익명의 암시로 견고화된 상식들 중에는 기존의 상식과 충돌하여 전복되고 폐기되는 상식도 있는 반면, 기존의 상식과 공존하는 상식 역시 수두룩하다. 물론 상식이 폐기되는 과정이란 순탄치만은 않은데, 상식의 폐기는 현실의 거대한 기둥 하나가 무너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는 상식은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힘을 수반한다. 상식이란 누군가의 입에서 말해지는 한마디, 누군가가 종이에 쓴 한 문장을 넘어서는 실체적인 힘을 갖는 것이다. 


p.191

상식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며, 강한 당위성을 갖고, 익명의 의식적인 연장이며,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식의 본질적인 성격이다. 한 인간의 눈에 비친 세상, 한 인간이 말하는 세상은 바로 그 인간의 상식이라 해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상식은 사람의 사고와 행동체계에 있어 매우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사회화된 사람들 중에 상식이라는 개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사회화란 바로 그 사회의 상식을 습득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p.206

자본주의 시장은 자유롭게 있는 자에게 책임을 반드시 묻는 법이다. 자본주의는 그 사람이 생활을 이어나는 것을 어렵게 하여, 자유를 추구하는 상태를 일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결국 그는 일자리를 찾아야 하며, 시간을 빼앗기고, 좀 더 빠른 신체적 노쇠함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현실에서 우리가 평등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부분적으로는 자유롭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자유롭다. 


p.208

우리가 자본으로부터 그나마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생활을 이어 나가는 데 적당한 재산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갖는다면 상황에 따라 노동시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노동을 줄임으로써 새롭게 확보한 시간을 통해 성찰적으로 자신과 사회를 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물질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정신적 목마름을 느끼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적당함이란 어느 수준인가 하는 것이다. 

p.213

우리가 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상식을 과감히 거둬 내고, 현상을 새롭게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과 상식의 대조를 통해 그 상식으로부터 연역되는 사실들이 그에 부합하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차라리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마치 인류의 일원이 아닌 것처럼 철저하게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p.223

상식의 믿음이 쌓이면 자연스레 신념으로 발전하게 되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신념과 확신 없이 이뤄지는 일은 없다. 사실 신념 그 자체는 특별히 어렵게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신념은 확고부동한 믿음 전부를 포함하는 것이며, 이런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일상적인 것이다. 


p.294

생각의 숲에서 나무속을 헤치며 정신없이 뛰어다니기보다는 잠시 멈추고 주위를 살펴볼 여유가 당신에게 필요하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사회의 이념과 상식을 떠올리고 천천히 의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눈을 사회와 개인의 현실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 실제 현실의 모습이 과연 무엇인지 집중해 보자. 상식에서 이념으로 이어지는 것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익명 속에 스며들고, 익명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암시를 보낸다. 


p.311

우리가 당면한 사명은 현실을 바로 보는 것, 바로 그것이어야만 한다. 현실을 제대로 바라봄으로써 사회의 이념과 자신의 신념에 대한 고찰이 시작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련의 무게를 감내하기 벅찬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많은 이가 서로 머리를 맞댄다면 조금은 수월해질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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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독일어 1등 외국어 시리즈
Mr. Sun 어학연구소.윤성민 지음 / oldstairs(올드스테어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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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Sun 어학연구소 <1등 독일어>




<1등 독일어>는 독일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단 한 권으로 충분히 독학할 수 있도록 기획된 교재이다. 기본 독일어 문법부터 실용 회화까지 언어의 모든 필수 분야를 망라한 이 책의 제작 기간은 무려 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보통 교재들은 어려운 단어, 문장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 책에는 그런 군더더기들은 모두 배제하고 알짜배기 핵심들만 모아놓았다고 하니 큰 기대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동영상과 리스닝 파일, 독일어 단어 1000개 PDF 파일을 함께 제공한다고 한다. 해커스 토익 교재는 부수적인 자료들은 돈 주고 다운 받아야하는데...이 가격에 이 정도면 가성비 있고 좋은 것 같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생각보다 많다. 벨기에,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를 사용할 수 있다니...나중에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이번에 배운 독일어를 한번 써봐야지! 




독일어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시작해, 영어와 독일어의 차이, 그리고 동사, 명사 등 본격적인 독일어 문법에 대해 알려준다.  


intro. 독일어에 대하여_12p

1장. 영어는 Be동사, 독일어는 Sein 동사_46p

2장. 명사의 성, 수, 격을 따른다! 관사_74p

3장. 6가지 모양의 일반 동사_114p

4장. 대명사&소유형용사_150p

5장. 동사를 도와주는 조동사_190p

6장. 의문사 활용하기_214p

7장. 명사를 변신시키는 전치사_244p





영어와 독일어의 발음과 알파벳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많이 다르다. 발음의 경우, 한국식으로 알파벳을 그대로 읽으면 독일어 발음과 가까워서 그리 어렵지 않다. 영어로 die는 '다이'로 발음하지만, 독일어 die는 '디'로 발음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그리고 독일어에만 움라우트라는 변모음을 만드는 특수기호가 있는데 단어와 같이 공부하면 쉽게 적응할 것 같다.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모든 단어가 여성, 남성, 중성으로 구분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로 한국 사람은 'Korean' 한 단어이지만, 독일어로는 한국 남자 'koreaner', 한국 여자 'Koreanerin'으로 구분해서 사용한다. 남자 웨이터/여자 웨이터, 남자 대학생/여자 대학생, 남자 축구선수/여자 축구선수도 모두 단어가 다른데 규칙이 있다. 보통 남자 단어에는 er를 뒤에 붙이고, 여자 단어에는 erin으로 붙이면 되는 것 같다. 예외적인 상황도 있을 거 같으니 좀 더 공부하면서 배우는 걸로.  



<1등 독일어>라는 책 이름에 걸맞게 이 책은 독일어 입문자들에게 아주 딱 맞는 책이다. 독일어에 대한 설명부터 영어와의 차이를 설명해 주는 부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필수 단어와 문장들 모두 좋았다. <먼 나라 이웃 나라>가 생각날 정도의 재밌는 만화 이야기도 이 책의 볼거리 중 하나다. 독자의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독일어 실력을 단기간에 향상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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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의 통찰 - 국제질서에서 시대의 해답을 찾다
정세현 지음 / 푸른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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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정세현의 통찰>












이 책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학 정세에 대해 논하고 있다. 중국, 북한, 미국, 일본에 대해 저자는 솔직하고 매우 직절적으로 현 상황 및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 과연 우리나라는 사방으로 둘러싸인 여러 나라 속에서 어떤 국가와 친해져야 할까? 저자는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현재 상황 속에서 친미에만 집중하지 말고 변방 국가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향후 국제 정세가 재편되었을 때 중심이 되는 강대국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 다수가 중국을 싫어하는 반중 정서가 매우 강한데,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 수 있으니 무조건적인 부정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한국에 사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단편적으로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는데 이 부분에서 약간 반성하게 되었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군대, 하나의 국가 수장이 존재하는 남북이 통일된 통일한국이 아닌, 각각의 체제를 존중하고 경제적으로 협력관계를 돈독히 해나아가는 '남북연합'에 대한 내용도 인상 깊었다. 주변 친구들과 얘기를 해봐도 남북통일을 열망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통일을 했을 때 우리나라 국민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엄청나다면 굳이 통일을 해야 할까라는 의문도 든다. 나도 저자처럼 경제적 협력관계만 유지하는 남북연합의 형태가 우리나라 국민에게 와닿고, 서로 출혈이 적인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지 않나 싶다.    


뉴스로 지나가는 국제 정치 이슈들을 이 책을 통해 한 번에 요약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연륜이 깊고, 연세가 꽤 있으신 저자분이시지만 생각은 깨어있는 분이어서 책을 읽으면서 많이 놀랐다. 현 정권에도 도움 되는 조언들을 많이 해주셔서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p.18

국제정치의 민낯을 보여주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시작해 보자. 나는 국제정치라는 게 조폭의 세계와 같다고 생각한다. 조폭들은 보통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믿는다. 폭력을 사용할 때 핑계나 명분은 나중에 만들고 먼저 행동부터 한다. 또한 자기 조직의 '영역'을 침범하는 뜨내기 깡패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 뜨내기 깡패들에게 배후가 있을 경우에는 더 극렬하게 저항을 하거나 반격한다. 명분도 구실도 필요 없고 무조건 치고 들어가서 버르장머리를 고쳐놓는 것이다. 


p.24

미국은 중국 견제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하고 북핵 문제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따라서 가진 힘 가운데 60-70퍼센트는 동아시아에 쓰고 있는 셈이고 남은 힘이 30-40퍼센트밖에 안 된다. 러시아의 힘은 물론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경우 지리적으로 러시아에 가깝고, 미국은 멀리 있으니 좀 밀어붙여도 간섭하는 데 한계가 있을 테고, 우크라이나 전체는 아니더라도 흑해로 나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돈바스 지역쯤은 잘하면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p.84

일본은 자국 중심의 국제질서인 대동아공영권-팍스 자포니카를 세워서 아시아의 주인 행사를 하고 싶었던 그 꿈을 아직 품고  있다고 나는 본다. 중국은 중국대로 팍스 시니카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팍스 자포니카를 성사시키려는 꿈과 팍스 시니카 부활의 꿈은 서로 충돌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과 중국의 관계는 처음부터 좋을 수가 없다. 그나마 우리가 중국하고 그런대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던 것은 우리에게는 적어도 팍스 코리아나의 꿈이 없기 때문이다. 


p.112

한 국가의 외교정책의 목표는 첫째가 안보다. 둘째가 번영, 셋째가 권위다. 첫째 목표인 안보의 방법론에서 1번은 자주국방이다. 혼자서  감당 못할 때 동맹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안보는 먼저 자기 힘으로 확보를 해야지 처음부터 남의 힘으로 보장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자칫 속국이 될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 않나.

p.194

결국 이런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지정학적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지 북한과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미국과 한목소리만 내서는 남북 간의 평화적 관계를 만들 수 없다. 때로는 미국과 불편해지더라도 일단 남북 관계부터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p.286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은 미국이 북핵 문제 협상에서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도록 설득해 협상을 시작하게 하고, 그 협상의 결과로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거다. 이것이 가장 바랍직하다. 핵이 없는 남한이 핵을 가진 북한과 협상을 하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핵을 쓸 것처럼 위협하면서 우리의 양보를 요구할 테니까. 우리는 어떻게든지 미국을 설득해서 북핵 협상을 빨리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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