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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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는 삐딱하다하루이틀 사는 일도 그렇지만 책을 보는 데에서도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미술책 방구석 미술관순식간에 10쇄를 후루룩 넘겼다기에 완전 시선집중 관심이 갔다엄청난 인기의 이유를 꼭 알아보고 싶었다일단 책표지는 ‘so so’ 합격노란 바탕에 파랑과 검정 글자가 명시성이 뛰어나고 글자 자체도 판독성이 뛰어난 제목체다표지 안쪽으로 공간이 있는 듯 소용돌이쳐 화가들의 그림과 얼굴이 나온다글도 잘 썼다술술술 잘 읽힌다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이란 책소개는 아쉽게도 내게 실감나지 않았다책표지와 목차를 열고 훑어본 꼭지들은 모두 열 네 개첫 번째 에드바르트 뭉크로부터 시작되어 드가고흐클림트실레고갱마네모네세잔피카소샤갈칸딘스키뒤샹으로 마무리되는 나열식 목차에 좀 황당했다테마별로 주제를 갖추어 묶어둔 꼭지를 기대한 건 내 욕심이었을까그뿐인가이 미술관은 온동네 남자투성이다아무리 두 번째 꼭지 주인공이 프리다 칼로였다 해도 그녀와 거의 동등한 무게로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가 등장했는 걸칸딘스키의 찌질한’ 연애사의 상대역으로 등장한 가브리엘레 뮌터 역시 화가로서의 예술성이나 청기사파에서의 역할보다는 단순 스캔들의 보조역으로만 머물렀다

원래 야사라는 것이 비밀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 뒷담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좋은 것보다는 안 좋은 것들이 나오기 쉬울 터자연스레 책 안에는 온동네 나쁜 남자들이 우글우글하다요즘이 어떤 시댄데여자 화가가 딱 하나뿐이란 말인가하다못해 케테 콜비츠나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 정도는 넣어줘야 할 것 아닌가삐딱하기 그지없는 나란 인간의 특성상 이 책에 A+는 줄 수 없겠지만미술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유명 (남자미술가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뒷담화 삼매경은 흥미를 끌기 적당하다. 개인적으로는 고갱의 쓰레기 같은 행태가 안 드러난 게 불만이다. 공부도 많이 해 내용도 충실하고 내지 편집이 시원하고 <더 알아보기>가 일목요연했으며 참고문헌이 알차다팟캐스트는 들어본 적 없지만 저자의 입담도 분명 대단했으리라여튼, ‘다 되는’ 능력자 저자가그저 부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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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1주년 한정 리커버 특별판)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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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듯 책과의 만남도 우연이 아니다책벌레 친구들의 소개, SNS 카드 뉴스, 이메일 소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고르는 나이지만공통점은 하나이제는 오프라인에서 책을 고르기보다 온라인 방식으로 책과 만난다어디 나뿐일까그러다 보니 책 제목은 가장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다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이 심쿵하는 제목이 나를 끌어당긴 것은 당연지사언젠가 읽어야지 다운로드한 이북은 새벽 출근길부터 나를 사로잡았다우리는 이렇게 꼭 만나야 했나 보다. 
 
채사장이 쓴 책의 장점은 쉽다는 것『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나 시민의 교양에서 드러난 지식은 책이 말하는 대로 얕아서’ 여러 불만도 받았지만우리나라처럼 참고서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사실 지식-뼈대에 접근성 좋기로 이만한 책도 잘 없다중간중간 글을 끊어주는 졸라맨(?) 드로잉도 뛰어난 가독성에 일조한다생활에 밑줄 긋는 예시도 적절하다열한 계단에서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던 채사장이,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는 자기 생의 관점을 이야기한다이런저런 세상 지식 다 공부해 보았지만 관계가 가장 어려웁다고이 관계를 이렇게 고민해 왔다고조심스레 주저리주저리자기의 관계설()’을 설파한다. 타인과의 관계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분야다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내가 외부의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지를 의심한다이 책은 가장 어려운 분야에 대한 탐구 결과이고고독한 무인도에서 허황된 기대와 함께 띄워 보내는 유리병 속의 편지다이것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는 40편의 이야기가 있다어떤 이야기는 저자 본인의 것이기도 하고어떤 무엇은 저자가 지은 것이기도 하다목차는 크게 네 가지, ‘타인’, ‘세계’, ‘도구’, ‘의미로 구분되어 있으며특히 마지막 다섯 꼭지를 할애해 나는 누구인가?’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를 묻는다내 생각에 저자는 많이 아팠고 많이 포기한 것 같다무엇도 감히 가지려고 하지 못한 한 인간의 삼가 두려움이 내내 드러난다모든 것을 놓았을 때 모든 것을 얻는다는 것말미에는 종교관 아닌 종교관이 드러나 반(反) 종교주의 독자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의외의 발견은 저자의 문체가 아름다웠다는 것저자의 고등학생 시절 시를 썼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충분히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꽤 많은 밑줄을 그으며 문장의 예쁨을 만끽했다역시 전작처럼 술술 읽혀 순식간에 마지막 꼭지에 다다랐다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읽은 삶을 위한 철학수업 주제들과 교차되기도 하고 대조하기도 하면서 다름의 묘미를 즐긴 것 같다고통생활사랑 등의 주제들이 같은 의미와 다른 논리또 다른 방향의 깊이로 오가고 있으니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주제를 관계라 말하지만 나는 이것이 곧 만남이라 믿는다나와 타인과의 만남도구를 딛고 맺는 관계마지막 맞이할 죽음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나 자신지식도생명도고통도죽음도 모두 관계 안에 있다이 모든 것은 이며 곧 가 되리라윤대녕이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에서 쓴 말이 기억난다처음 사랑한 그녀에게 건네준 편지에 기록한나는 너를 알고 모든 사람을 알게 되리라.”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이 만남에의 의지는 곧 사랑이다무엇보다 나 자신을 향한 사랑이다이 생을 사랑하는 투쟁의 방법이다나는 너를 기어이 만날 것이다나는 그 순간을 위해서 끝내 살리라참으로 살리라.” 이 흔들리는 믿음을 굳건한 믿음으로 만드는 여정이 내 마음에 흡족한 나를 만나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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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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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을 앞둔 시절은 아름답다절정(絶頂)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가장 대표적인 그때가 유럽의 19세기말흔히 그 시기를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고 부른다이 시절을 살던 이들은 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1914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야 만다는 걸참혹을 보았을 때 절망처럼 사라져 간 아름다운 시절을 독일 예술사가 플로리안 일리스(Florian Illies)가 책 한 권에 담았다1913년 세기의 여름은 벨 에포크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지금부터 백여 년 전, 1913년은 그야말로 모든 예술이 하나하나 꽃핀 시기다문학음악미술건축사진패션… 그 어떤 것도 빠지지 않는다내가 오랫동안 사랑해 온 예술가들과 미처 몰랐던 예술가들이 각각의 챕터 안에서 자기 존재감을 밝힌다어찌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구성이다. 1월부터 차곡차곡 12월이라니마치 1913년 누군가의 월간 다이어리를 보는 것처럼이 다이어리는 일별로 구분하지 않은 커다란 백지다그는 여기저기에 예인(藝人)들의 이야기를 적는다가끔은 정갈하게가끔은 휘갈겨서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들의 이야기는 얼키고 설켜 기묘한 분위기를 만든다이 책의 광고 중에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의 한 장면을 읽는 것 같다,”는 카피가 제격이다이 책의 노고는 그야말로 자료 수집에 있다플로리안 일리스는 3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해 이 글을 썼다고 한다사실 구성은 어이없게도 너무 상식적이다왜 이런 생각을 그간 해내지 못했을까어찌 보면 너무나 순차적인데역시 창의력은 관찰력이라는 걸 실감한다
 
2014년 이 책을 소개받아 처음 읽을 때는 술술 읽었다이 예인들의 뒷이야기 수다를 듣는 기분으로 벨 에포크의 분위기를 경험했다두 번째 읽을 때는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미술가와 음악가문학가정치가의 이름에 각기 다른 색으로 포스트잇을 붙이며 읽어나갔다세 번째 읽을 때는 기억할 만한 사건에 포스트잇을 붙였다세 번을 읽고 나니 어느 정도 흐름이 잡혔다이 시기는 모더니즘의 종말에 다다른 시기다예민한 인간들로 가득한 예술 분야가 특히 그랬다정치적으로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패악을 부렸다날씨는 작열(灼熱그 자체다어디 폭발하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였다. ‘절정(絶頂)’이었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독일 표현주의의 다리파와 청기사파 이야기마르셀 푸르스트와 토마스 만의 주변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저자가 많은 분량을 할애했기도 하지만 내 관심사가 그곳에 있기도 했다마침 얼마 전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었기에 타이밍이 또다시 좋았다매 달마다 뜬금없이 나오는 모나리자이야기도 긴장 풀기에 좋았다나는 정치 영역에 꽤 무지한데히틀러와 스탈린 이야기는 기대하지 않았다이 책에는 3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는데그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2018년 서울에 사는 내가 그러하듯이1913세기의 여름』 역시 인간의 이야기이다삶의 핵심은 어디에나 인간이므로.
 
역시 나는 수다쟁이를 좋아한다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청산유수(靑山流水)로 해 주는 사람을아니 책을이 책을 읽으면서 의외로 내가 인간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아 놀랐다그동안 야사를 읽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예술가들의 뒷이야기 투성이인 1913년의 다이어리는 참으로 매력적이다벨 에포크는 이다지도 매력적인 인간으로 가득했다나는 얼마큼 매력있는 인간인가내가 아는 누가 이렇게 매력적인가매력은 매력으로 네트워크한다그러니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매력있는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하나 둘셋 넷 만날 때 우리는 아름다운 시절을 다시금 만들고 있다

설령 아름다운 시절이 몰락해도 괜찮다. 몰락 이후에는 또다른 시작이 있으니, 예를 들면 20세기 같은 그런 것. 아름다운 시절을 겪었다면 몰락조차도 그저 아름다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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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철학수업 -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5
이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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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책이 안 들어와서 괴로웠다글은 줄줄 읽는데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단기기억은 장기기억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김수영 전집이 겉돌았다매년 잊어버리고 또 외우는 그 여름의 끝도 이전만큼의 감동이 없다어쩌면 좋아주홍 표지의 책을 두 번이나 읽었는데도 가슴이 움직이지 않아서 절망했다나는 반응하지 않는 건가내 마음은 이다지도 망가진 건가
 
독서대에 책을 세우고 노트북을 열었다찬찬히 써 내려갔다. 손글씨 필사는 상상으로도 감당할 수 없으니자판의 속도대로 생각의 속도를 늦춘다내가 그은 밑줄은 정말 각 꼭지들의 핵심이었는데나는 분명 열심히 읽었는데글줄이 그냥 나를 스쳐간 것 같다붙잡고 싶다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말도 안 된다이렇게 마음 없이 사는 건 너무나 부끄럽다
 
내 세상에 은 무엇인가내게 상처 준 적이 없는 유일한 존재다어떤 순간에도 책은 나와 함께 있었다그럼 그중에 ‘철학 책’은 무엇인가처음 읽은 철학 인문서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처음 읽은 철학 책은 기억한다소크라테스의 변명생각의 폭을 넓혀준이제 철학 책도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첫 씨를 심은 책이다그럼 나는 철학을 알고 있는가삶을 위한 철학수업 띠지에는 철학이 우리 삶을 구원하리라"라는 말이 쓰였다글쎄이건 아무리 봐도 허풍이 아닌가삶을 온전히 구원할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다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그렇게 못한다다만 철학은나를 도울 수 있을 뿐이다. “한번 살아 보라고 용기를 제안할 뿐이다이 책의 핵심은 그렇다처음부터 끝까지 용기
 
삶을 위한 철학수업』 최고의 장점은 쉽다는 것이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고 백 없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대면 과제들을 선정했다는 것어려운 철학자의 이름이나 이론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조금 철학 썰을 풀어본다고 해 봐야이름도 낯익은 칸트니체스피노자 정도다.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적극 활용하여 이해를 돕는다. 사건-사고, 헝그리 정신-궁상, 강자-약자, 소시민과 난쟁이, 자존심-자긍심 등의 섬세한 단어 선택은 섬세한 사고로 인도한다. 그뿐인가, 자신의 과거도 술술 풀어낸다주로 고통의 문제다감옥에 들어가야만 했던 순간과 차가운 벽을 마주하며 절망한 순간, 5년간 마음을 쏟은 공동체가 해체되었던 순간과 원망아내를 독일에 유학 보내고 외가에 아들을 맡겨놓았던 아이의 쓸쓸한 순간과 선물 같은 순간을 이야기한다독자가 저자를 사랑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저자가 자기의 이야기를 허영 없이 풀어낼 때다, ‘망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독자는 저자에게 공감을 느끼고 그의 겸손함을 사랑하게 된다
 
사람은 매일 삶을 외줄타기 한다. ‘을 지키기가 어렵다자칫하면 휘청거리고 쓰러진다위태한 순간을 간신히 붙잡아 다시 선에 올라탄다자신 없는 삶에 머뭇거리며 다시 올라타는 것이 용기다하루 더 살아가겠다는 용기비루해 보이는 삶도 내가 품어 따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내 삶에 대한 긍지다완전히 망가져서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마음을 그냥 내버리지 않는 것그것이 나의 용기이며 긍지였다그리고 이것이 나의 철학이다이 책을 한 번 더 붙잡은 건 저자가 이야기하는 용기였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철학은 살아내는 것이다철학의 궁극적 목표는 자유그러나 여기에는 피 흘리는 것을 전제로 한다대가를 치르는 자유는 편치 않다안정이 없다그러나 철학하며 사는 사람은 종래 자유에 다가간다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에는 다가간다철학은 그리할 수밖에 없는 길이므로자유로 끌고가는 학문이므로우리는 철학이 어렵다는 편견에 갇혀 철학 하며 살 엄두를 못 낸다그러나 단언컨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철학대로 살고 있다이 철학이 어떠한 빛을 내는지어떠한 강도를 가졌는지어디 앞에 용기를 주는지는 다르다나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앞으로 내내 붙들고 살아갈 내 철학을 믿는다
 
만신창이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내가그래도 철학하고자 하는 것연약한 내 철학을 버리지 않는 것이 감각은 아무도 모른다이런 부끄러움을 간신히간신히 견디며 뭐라도 허우적거리는 것이것이 내 삶의 필로-비오스임을 나는 믿는다나는 나를 믿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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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6 - 2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6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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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6권은 꽉 채워 온 동네 애정사다. 특히 마음 정한 서희의 강력한 액션거기에 폭발하는 길상의 액션이 엄청나다지금도 처지가 다른 남녀의 결합은 어렵기 그지없다신분제가 남았던 예전에는 어떠했을까갈등갈등 그리고 또 이도 저도 못하는 갈등길상의 내연녀 옥이네에게 찾아간 서희는 거기 두고 간 길상의 목도리를 보고 질투를 느끼고 돌아온다길상은 이에 만취해 최서희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어천하를 주름잡을 텐가어림도 없다!” 서희 앞에 막말을 쏟아내고 서희 역시 패악한다새로 사 온 목도리를 집어던지면서난 길상이하고 도망갈 생각까지 했단 말이야다 버리고 달아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단 말이야.” 
 
다음날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는 두 사람다 끝난 줄 알았던 관계는 의외의 사건으로 확고해진다용정행 마차 사고이를 통해 길상은 종신 종놈이 되어서라도 서희 곁에 있고 싶은 게 너 본심 아니었나안 그렇단 말이냐떠난다 떠난다 하면서 왜 못 떠나지?” 서희를 떠날 수 없는 자기 운명을 인정하고 그에게 일생을 걸기로 한다서희의 야망을 위한 것임을 다 알지만 서희가 뜻하는 대로
 
사랑은 교통사고라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되는가벼락같은 사고 때문에 크게 다친 서희는 대신 원하는 것을 얻는다길상 역시 바라던 것을 얻는다순결하지 않아도 뜨겁게 열망했던 곳으로 간다천재지변조차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이 잔인한 세상이 극한으로 칼을 휘두르다가도 한 번쯤은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도 있다는 거다만신창이 사람의 생은 내일을 알 수 없어서 하루 더 살아볼 만하다마침 피투성이 마음이던 나는 이 사고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또 다른 사고가 와도 나는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끝끝내 무엇인가를 얻고야 말 것이다
 
"길상의 사랑이 범상한 남녀의 사랑일 수 없게 잘 조련되어온 것이었다 할지라도관음상(觀音像)을 향해 느끼듯이전혀 일방적이요 정밀한 그런 유의 사랑이었었다 할지라도어느 날 갑자기 그 대상이 이쪽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게 된다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무상(無償)에서 보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일이요 상대의 고통이 고통으로 오되 희열이 따를 것이 거의 틀림이 없다그런데 길상은 왜 절망하는 것일까견디기 어려운 오뇌 속으로만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더이상 접근할 수 없는 거리에서 이상현은 빙빙 돌다가 떠나고 말았다그들의 접근할 수 없었던 거리는 길상과 서희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다서희의 대상으로서 상현은 사모(思慕)와 기혼자(旣婚者), 이 두 상극 선상(相剋線上)의 존재요 길상은 야망(野望)과 하인(下人),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상극된 것은 아니다야망은 불순물이다불순물은 혼합될 수 있는 것이다상현과 사이에 질러놓았던 지름목은 길상과 서희 사이에는 제거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드러내려는 서희의 모험을 길상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서희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다던 그러나 길상은 그것만은 용납할 수가 없다서희와의 거리는 절체절명의 것이다왜냐자존심 따위사내로서의 오기 따위 그런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사랑의 순결 때문이다순결을 지키고 싶은 때문이다대체로 길상의 심정은 이런 정도로 밝혀볼 수 있겠고 서희의 경우길상이 생각했던 것처럼 서희 역시 그렇게 믿고 있음이 틀림없다시초부터 야망의 수단이 아닌 길상과의 결합은 가능할 수 없었다적어도 길상과의 결합에 그것 이외 어떤 구실로 서희는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었겠는가자식을 버리고 구천이를 따라간 생모를 생각해서라도그렇다면…… 서희의 보다 깊은 영혼 속에는 숙명적인 길상과의 애정이 잠을 자고 있었다 할 수는 없을까무시무시한 내적 투쟁은 과연 야망의 좌절에서만 빚어졌다 할 수 있을까강렬한 질투강렬한 패배감광적인 증오심." 
 
서희에게 거절당한 상현은 조선으로 돌아와 마음잡지 못하고 헤매고길상의 일편단심으로 간도행에 따르지 않은 봉순기생 기화를 만나러 간다별당아씨를 떠올리며 세상을 원망하는 환이는 진달래 화전 같은 사랑의 흔적을 떠올린다그는 윤씨부인이 남겨준 혼수’ 땅문서를 독립운동자금으로 쓸 것이다조준구 때문에 목숨을 잃은 정한조의 아들 석이가 등장한다아비 없이 고생하던 그는 구원 같은 손을 붙잡고 의병 내에서 자기 자리를 잡는다.
 
토지 6을 끝맺으며 깨달은 것, ‘Love is Everywhere’. 역시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비록 모든 사랑이 따뜻하고 포근하지만은 않을지라도사랑의 속성은 본디 고통이다그걸 알아버렸다그래도 사랑은, 어떻게든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 살아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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