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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1주년 한정 리커버 특별판)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람과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듯 책과의 만남도 우연이 아니다. 책벌레 친구들의 소개, SNS 카드 뉴스, 이메일 소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고르는 나이지만, 공통점은 하나. 이제는 오프라인에서 책을 고르기보다 온라인 방식으로 책과 만난다. 어디 나뿐일까, 그러다 보니 책 제목은 가장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이 ‘심쿵’하는 제목이 나를 끌어당긴 것은 당연지사, 언젠가 읽어야지 다운로드한 이북은 새벽 출근길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우리는 이렇게 꼭 만나야 했나 보다.
채사장이 쓴 책의 장점은 쉽다는 것,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나 『시민의 교양』에서 드러난 지식은 책이 말하는 대로 ‘얕아서’ 여러 불만도 받았지만, 우리나라처럼 참고서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사실 지식-뼈대에 접근성 좋기로 이만한 책도 잘 없다. 중간중간 글을 끊어주는 졸라맨(?) 드로잉도 뛰어난 가독성에 일조한다. 생활에 밑줄 긋는 예시도 적절하다. 『열한 계단』에서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던 채사장이,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는 자기 ‘생의 관점’을 이야기한다. 이런저런 세상 지식 다 공부해 보았지만 관계가 가장 어려웁다고, 이 관계를 이렇게 고민해 왔다고. 조심스레 주저리주저리, 자기의 ‘관계설(說)’을 설파한다. “타인과의 관계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분야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내가 외부의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지를 의심한다. 이 책은 가장 어려운 분야에 대한 탐구 결과이고, 고독한 무인도에서 허황된 기대와 함께 띄워 보내는 유리병 속의 편지다. 이것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는 40편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이야기는 저자 본인의 것이기도 하고, 어떤 무엇은 저자가 지은 것이기도 하다. 목차는 크게 네 가지, ‘타인’, ‘세계’, ‘도구’, ‘의미’로 구분되어 있으며, 특히 마지막 다섯 꼭지를 할애해 ‘나는 누구인가?’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내 생각에 저자는 많이 아팠고 많이 포기한 것 같다. 무엇도 감히 가지려고 하지 못한 한 인간의 삼가 두려움이 내내 드러난다. 모든 것을 놓았을 때 모든 것을 얻는다는 것, 말미에는 종교관 아닌 종교관이 드러나 반(反) 종교주의 독자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의외의 발견은 저자의 문체가 아름다웠다는 것. 저자의 고등학생 시절 시를 썼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충분히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꽤 많은 밑줄을 그으며 문장의 예쁨을 만끽했다. 역시 전작처럼 술술 읽혀 순식간에 마지막 꼭지에 다다랐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읽은 『삶을 위한 철학수업』의 주제들과 교차되기도 하고 대조하기도 하면서 ‘다름’의 묘미를 즐긴 것 같다. 고통, 생활, 사랑 등의 주제들이 같은 의미와 다른 논리, 또 다른 방향의 깊이로 오가고 있으니.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주제를 ‘관계’라 말하지만 나는 이것이 곧 ‘만남’이라 믿는다. 나와 타인과의 만남, 도구를 딛고 맺는 관계, 마지막 맞이할 죽음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나 자신. 지식도, 생명도, 고통도, 죽음도 모두 관계 안에 있다. 이 모든 것은 ‘너’이며 곧 ‘나’가 되리라. 윤대녕이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에서 쓴 말이 기억난다. 처음 사랑한 ‘그녀’에게 건네준 편지에 기록한, “나는 너를 알고 모든 사람을 알게 되리라.”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이 만남에의 의지는 곧 사랑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향한 사랑이다. 이 생을 사랑하는 투쟁의 방법이다. “나는 너를 기어이 만날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위해서 끝내 살리라, 참으로 살리라.” 이 흔들리는 믿음을 굳건한 믿음으로 만드는 여정이 내 마음에 흡족한 나를 만나는 일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