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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5 - 2부 1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간도에서의 삶, 《토지 2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동 평사리 사람들은 용정에서 삶을 다시 일군다. 눈에 띄는 건 열아홉의 서희다. 1부에서 철없는 모습도 보이던 위엄있는 소녀는 사라지고, 어느덧 불편할 만큼의 위엄을 지닌 성인이 되었다. 이제 ‘여자’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그러니 서희의 속내, 애정사가 등장하며 나는 당황할 수밖에. 서희는 사모해 온 상현에게 큰 상처를 주고, 길상은 봉순에의 그리움과 서희에의 숭배 안에서 절망하며 과부 옥이네와 살림을 차린다.
지위와 미모, 위엄으로 자기를 싸맨 여자들은 어떻게 사랑하는가, 대개 그들은 애정운이 없다. 대상에 있어서도 환경과 타이밍에 있어서도. 물론 자기에게 진실하지 않아서의 이유도 있다, 꽤 크다. 이상현과 서희의 속내가 드러날 때 얼마나 놀랐는지. 이상현에게 의남매를 제의하며 길상을 언급할 때 또 얼마나 놀랐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참 못됐다. 상현에게 솔직한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괴롭히고 굴복하게 하기 위한 꾀라니. 이건 비참해도 너무나 비참하다. 상현 뿐 아니라 서희에게도, 모두에게 비참하다.
이상현을 생각할 때면 서희 마음에는 분통이 치솟는다. 불이 난 뒤 집을 짓고 새 집으로 이사를 하고, 그런데도 상현은 그동안 여전히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서희는 옹졸한 위인 같으니라구 하며 마음속으로 경멸을 했으나 무시하는 마음은 잠시였고 매일 투지에 가득 차서 상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자존심을 빡빡 긁어놓은 사내, 나타나기만 하면 내가 받은 상처의 열 배 스무 배로 갚아주리니, 서희의 기다림은 순전히 그 보복을 위한 정열로써 지탱되어 있었다. 때로는 자기 처지가 그러하니 애써 피하는 거라고 자위를 해보기도 했으나 그런 이해심보다 노상 앞질러 달아나는 것은 자기 위주의 철저한 이기심이었다.
서희는 자신이 결심한 대로 처신할 것을 믿어 의심한 일이 없다. 상현과의 애정의 갈등에 있어서도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이냐, 그 해답은 이미 작성된 바이었고 수정할 생각은 없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도 서희는 자기 결단에 의심을 품은 일이 없다. 설사 상현이 이성을 잃고 결사적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서희는 결코 그와는 인연을 맺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땅 속에 뿌리를 박은 바위만큼 움직일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서희는 자제심을 잃지 않고 자기와 마찬가지로 뻗대어보는 상현이 괘씸한 것이다.
나는 그대를 그리워하고 그대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 우리가 혼인을 못하는 이유는 그대에게 있고 내게 있는 게 아니다. 하니 그 보상은 그대가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 나와 같이 겨루려 하는가? 서희의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굳게 지키는 성이라 하여 어찌 창을 들고 한번 휘둘러보려 하지도 않느냐? 휘둘러보지 못하고 멀찌감치 서서 아리송한 태도만 취하는 상현이 노여운 것이다. 휘두르고 달려드는 창을 서희는 분질러버림으로써 애정을 확인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남겨놓고 끝장을 내고 싶은 것이다. 서희는 그러한 자신의 욕망을 깊은 애정으로 믿고 있었다.
최서희를 스칼렛 오하라에 빗댄 곽아람 작가의 비유가 떠오른다. 역시 짝 있는 남자를 오랫동안 사랑한 스칼렛, 그녀 역시 애슐리를 평생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가까이, 곁에서. 의남매가 되어서라도 그 사람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비난하겠는가. 표현은 잔인했지만 그래도 나는, 최서희가 그렇게까지, 자기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정도로 상현을 사랑했다고 믿고 싶다.
어느 물체를 만졌을 때 확실히 손에 잡혀지는 감촉만큼 서희는 자신의 직감을 언제나 신봉한다. 내 직감이 한 번이나 빗나간 일이 있었던가? 틀림없이 길상에게 무슨 변화가 일고 있는 게야, 틀림없이
‘그럴 리가 있나, 그럴 리 없지. ’ 권위의 깃털을 온통 세우고 공작새처럼 화려한 우월감과 표범처럼 표독스런 자부심을 환기시키며 발목이 묶인 길상을 눈앞에 보기 위해 서희는 신앙 같은 자신의 직감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맹렬히 닻줄을 감아올린다. 그럴 리가 있나, 그럴 리 없지. 아암 그건 이 더위에서 온 망상이니라. 망상이구말구. 네가 나를 떠나 어딜 간단 말이냐? 너의 이십칠 년의 세월은 나를 위해 있었던 거구 내가 세상에 나온 십구 년의 세월을 너는 내게 충성했었다. 더위에서 온 망상이야. 이부사댁 서방님이 떠난 후 내 마음이 허해진 탓이 아니겠느냐?
서희에게 길상은 무엇일까. 집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뜨겁고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권위적이다. 『토지』의 스포일러는 너무나 다양하고 각각 유명해 앞으로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은 예정된 일. 이런 마음으로 정녕 결혼생활이 가능할까? 서희가 바라는 건 끝까지 길상이 자신에게 헌신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계속 아가씨와 머슴처럼 살아갈 수 있는. ‘당연히’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물론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의사 박에스더 역시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박에녹과 결혼했다. 자신을 여자로 제한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 그러나 미국 유학 내내 에스더를 위해 헌신한 박에녹이 죽자 그녀가 얼마나 큰 후회를 했었던가. 그런데 지금 최서희의 의도는 아무리 봐도 사랑스럽지 않다.
수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남자를 선택한다. “여자는 자기를 안 좋아해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해. 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후회해.” 너무 일반화된 통념이라 어찌 반박하기도 어렵다. 물론 이 순간 NOW,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상이라 하여도 우리가 꿈꾸는 결혼은 같은 눈높이를 가진 이와의 마주봄이 아니던가. 길상은 속내를 쏟아낸다. “네. 의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상전에 대한, 나를 길러 준 데 대한 의리가 아니라 그 말입니다. 서희애기씨는 보물입니다. 연꽃이지요.” 이런 길상을 ‘선택할 수 있는’ 서희의 처지가 부러워야 하는 걸까.
금녀의 전신이 와들와들 떤다. 무서움 때문이 아니다. 환희다. 날아갈 듯, 금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한다 생각했으나 혀가 굳어버렸는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대체 당신네들은 뉘시오, 하고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인숙을 빠져나와 어두운 거리로 나왔을 때 금녀는 하늘의 별들을 우러러본다. 비로소 마음속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는 곳이 도둑의 소굴이든 악마가 살고 있는 곳이든, 다만 김두수를 떠나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금녀는 정체 모를 두 사나이가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신비스런 존재로 여겨진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큰 약점인가. 절망에서의 탈출 뒤에 온 희열이란 또 얼마나 서글픈 찰나인가. 희망이 일렁이는 금녀 가슴에는 뜻하지 않았던 조바심이 아프게 저 바다의 파도가 방천을 치듯 쉴 새 없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빼앗길 그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겐 불안이 없다. 지금 금녀가 가져보는 앞으로의 자기 운명에 대한 기대와 흥미가 과연 희망적인 것인지 그 어떤 실마리도 잡아보지 못한 채 방향도 알지 못한 채 악몽 속에 허덕여온 여자는 희망 그 자체를 겁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금녀에게는 절망 그 자체가 삶이었었는지 모른다. 순간 불꽃 튀기듯 뻗치어온 절망과의 대결, 그 긴박한 찰나 찰나가 삶의 증거였었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서러움이나 근심이나 불안은 절망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온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금녀는 목구멍까지 꾸역꾸역 치밀어오르는 오열을 참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살아야 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5권의 말미에 눈에 띄는 건 금녀라는 뉴 페이스.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이 여자의 생명력이 놀랍기 그지없다. 이는 임이네가 표출하는 악랄한 생명력과는 너무나 다르다. 대체 이 차이는 무엇인가, 생명을 믿는 것과 돈을 숭배하는 것. 그 차이일까? 임이네는 나날이 거인이 되어간다. 월선이의 이해는 어디까지인가, 임이네의 뻔뻔스러움은 어디까지인지 끝이 없다. 용이는 대체 어디 가 있는가. 현재 스코어 용이는 『토지』 찌질한 주인공 1위다. 『토지 인물사전』이 출간될만큼 수없는 등장인물만큼 그들의 대화는 차지고 생각할 거리는 많고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