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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 지음 / 샘터사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생각보다 더 공감이 되는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이야기들로 가득찬 책을 읽었다.
방송작가 김미라 님의 글 모음집인데, 이 책은 그냥 편할때 내키는대로 아무곳이나 펼쳐서 읽어도 감동을 준다.
책 표지 맨 앞에는 지은이 김미라 님의 이력이 간략하게 나오는데
남들처럼 숫자나 학력으로 설명하지 않고 소소하고 따뜻한 일상의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는 점이 참 맘에 들었다.
나도 누군가 나를 이렇게 설명해 줄 만한 기준과 따뜻한 이야기로 살아왔는지 참 부끄러웠다.
나는 책 속 모든 부분이 감동이었다.
나도 지은이처럼 잃어버린 첫사랑도 있고, 먼 곳에 떠나보낸 친구가 있고, 가끔은 멀어질듯 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이해해주는 가족이 있어서일까?
읽을때마다 잊고 살았던 따뜻한 추억들과 나에게도 있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들,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과 그리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앞으로는 무언가를 잊어버려도 그렇게 안달낼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목사 아버지가 아들 폴의 장례식에서 했던 대사)처럼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잘 몰라도 그것을 추억할 수 있고, 마음속에 봉인할 수도 있습니다.
비어 있는 자리는 그것대로 다 이유가 있겠지요. - p.31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어도 그 위에 다시 사랑의 집을 쌓으면 된다(- p.19)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는 여지껏 지난 사랑을 완전히 잊어야만 다른 사랑이 가능할꺼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
책 속 누군가 말했던 외로워 죽을뻔 했던 시간들을 겪으면서도 해결할 방법을 몰랐던 내게 이 책은 정말 많은 위안을 주었다.
이름이 새겨진 벤치 이야기에서 나는 예전에 읽었던 어떤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애인과 이별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앞에 배달되어온 그와 함께 앉았던 그의의자.
왜 그는 그녀에게 그 의자를 보냈는지, 그 소파에 앉아 그 이유를 생각해보던 장면이 있었다.
둘이 함께 앉기엔 좁은 의자였지만 그때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아늑하던 의자였는데
혼자앉으려니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던 의자, 아마도 그는 '내게 돌아와 주세요' 라는 메세지를 그 의자에 적어 보낸게 아니었을까?
이와 비슷한 장면은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에서도 나온다.
여주인공 캐리와 에이단을 만나게 해 준 의자, 그리고 이별한 뒤에도 캐리에게 남겨진 바로 그 의자.
이 때의 의자는 '지금은 아프지만 곧 괜찮아질꺼야' 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도 내 삶의 길목에 있는 벤치에는 어떤 말들이 적혀있을지, 누군가에게 쉼터가 되주는 벤치를 많이 남겼길 소망해보았다.
그들은 손을 잡고 걸어갔습니다. - p.45
이 글에선 오래전 잊고 있었던 따뜻한 장면이 떠올랐다.
몇년전 그날도 나는 학교에 가고 있었다. 추운날씨, 가파른 고갯길 특별하기는 커녕 짜증만 나던 그날,
내 몇 발자국 앞을 걷고있던 남,여 꼬마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건 평소처럼 귀여운 아이들의 얼굴이 아니었다.
유치원생쯤 되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춥지? 내가 손 더 꽉 잡아줄께."
남자아이는 그렇게 말했고 둘은 계속 웃으며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갔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도 서로의 손을 꽉 잡아주고 있을까?
그때의 기억을 생각하면 나에게도 그 따스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난 두 장의 사진에도 감동을 받았는데 하나는
p.88 의 등대사진과 다른 하나는 p.178 의 앙상한 겨울나무 사진이었다.
등대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부활> 에서의 대사가 떠올라서 마음에 들었다.
두 등대가 서로 멀리 떨어져있어서 안되보인다는 여자주인공의 말에
남자주인공은 말한다.
"그래도 서로 마주보고 있으니까 괜찮아."
또 겨울나무 사진은 한일합작 드라마 <천국의나무> 의 엔딩 장면이 떠올라 더 이해가 쉬웠다.
사랑하던 오빠의 심장을 이식받고 살아난 여주인공은 둘이 생전에 자주 가던 눈쌓인 언덕 위 나무를 찾아간다. 절망하고 싶은 현실 속에서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새 싹을 틔울 나무를 보면서
그녀는 삶에 대한 희망을 찾았죠.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이 말이다.
아프면 아픈 만큼 앙상해지고 황량해지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겨울 정원을 통해 배웁니다.
우리 삶도 아픔 속에서 잠시나마 호흡을 고르면서 새로운 싹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깨우칩니다.
- p.177
나는 내가 참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이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내게도 즐거웠고,소중했고,행복했던 순간이 많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 역시 감정의 시차로 그를 떠나보냈지만 앞으로도 나에겐 많은 선택들이 남았고
그 선택들로 인해 나도 다시 누군가에게 천천히 조금씩 기울어져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과 추억을 일깨워주고 그래도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그 나름대로 또 의미가 있단걸 알려준 이 책이 참 고맙다.
또 살아가다가 또 잃어버리고 좌절감에 빠져있을때 한번씩 이 책을 꺼내어 읽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