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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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나는 처음부터 이 책을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
<월하의 연인> 이란 책을 빌려온다는 것이 같은 작가라는 데에 착각을 하고는 이 책을 덥석 집어온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해서야 전에 한번 읽었던 책인것에 의아해 했으나
곧 내가 책을 잘못 가져온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짜피 오래 전에 읽어 결망들이 기억도 안나는 터라 끝까지 읽으리라 마음먹었다.
 
처음 '수국꽃정사' 를 읽을때만해도 은은하게 아름답게 묘사된 사랑이야기임에도 묘하게 슬퍼서
읽기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으나 점점 읽어갈수록 작가의 색다른 이야기들의 매력에 푹 빠져서 나머지는 정말 단숨에 읽었다.
사실 이 책을 다시 읽고나서야 월하의 연인을 온전히 읽어야겠다는 다짐이 굳게 들었다.
그전에는 기억나지 않았던 작가와 단편이라 조금 망설였던 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단편들은 끝이 허무할때가 많아서 단편집을 고를때는 무척 신중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사다 지로의 단편에는 특별한 맛이 있다.
상투적인 소재를 다루는 듯하면서도 그 묘사력이 너무 아름답고 표현력이 뛰어나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처음 두 편은 내용이 약간 어려운 듯도 하지만 나머지 이야기들은 정말 재미나게 읽힌다.
특히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단편인 '장미도둑' 은 매우 유쾌하다.
이 글은 어린 소년이 바다에 나가있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글로만 되어있는데
어머니와 첫사랑 소녀의 어머니와 닉 이라는 선생님에 대한 삼각관계를 소년만 끝까지 모른채 천역덕스럽게 이야기는 계속된다.
나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이 헛똑똑이 소년의 글이 너무 유쾌했다.
또 '히나마츠리' 편에서는 어쩌면 요즘에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감동적이게 표현된 가족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도 그렇게 순수하게 어머니와 그리고 어머니의 남자친구를 아끼는 소녀의 마음에는 무척이나 감동해 버렸다.
마지막 편은 정말이지 유쾌하기 짝이 없다.
나의 어머니에게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평소엔 용납하기 힘들었다해도 왠지 이젠 웃고 넘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책 속 6편의 단편은 거의 대부분 희망적인 결말로 글을 끝내고 있다.
물론 삶의 모든 일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절망의 나락 속에서도
항상 희망과 웃음이 있다는 진리를 작가는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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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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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1~2년쯤 전의 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마지막으로 함께 교보문고에 갔을때 그 친구는 이 작가의 책을 모으는 중이라며
이 책을 샀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이 작가의 책은 두번 정도 본 적이 있다.
<꼬마 니콜라> 와 <좀머씨 이야기> 로 말이다.
좀머씨...는 조금 슬픈 이야기라 기억되고 있지만
니콜라는 아직도 내가 유쾌하게 생각하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장 자끄 상빼의 그림은 간결하고 아주 재미있다. 그저 무심히 그어놓은 스케치같지만 왠지 따뜻한 느낌이다.
온통 그림과 고작 몇 줄의 이야기.. 단순한 이야기에서 많은 감동을 주는 멋진 작가같다.
 
마르슬랭은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며, 시 읽기를 잘하는
그래서 별로 불행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문제를 안고 있는 소년이다.
바로 얼굴이 시도때도 없이 빨개지는 일이다.
소년은 그저 자신의 얼굴이 왜, 어째서 빨개지는 궁금해할 뿐 그저 자신의 삶에 만족해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소년은 다른 소년을 만나게 된다.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소년 르네이다.
르네 또한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재채기였다.
그러나 르네 역시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왠지 중요해 보였다.
저마다의 문제점이 있었지만 그들은 딱히 불행하지 않았으며, 다만 서로를 알게 됨으로써 좀 더 행복해했다는거..
나는 항상 지금 내가 불행하다고 여기고 나 또한 자주 빨개지는 얼굴로 고민이 많았는데
이들은 주어진 삶에도 만족했지만 좀 더 행복해지는 것도 더 행복하다는 사실 자체로 즐겼다.
 
이 책은 서로의 컴플렉스를 극복해내고 우정을 만들어가는 두 친구의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 둘은 자신의 단점들을 서로 컴플렉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르슬랭은 한밤중 르네의 기침소리를 듣고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행복해했으며
르네 또한 마르슬랭의 빨개진 얼굴을 의식하기보단 가끔식 멋진 색깔의 얼굴로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마르슬랭은 자신도 감기에 걸려 르네와 함께 재채기를 할 수 있단 사실에 기뻐했고
르네 또한 한여름 더위에 얼굴이 빨갛게 익을수록 친구와 같아졌다고 좋아했던 것이다.
 
중간에 작가가 개입하여 둘의 이별을 현실의 그 수많은 이별 중에 하나와 같지 않게 만들어줘서 참 기뻤다.
 
이 책을 알려준 내 친구는 지금 먼 호주에 공부하러 잠시 내 곁을 떠나있다.
르네와 마르슬랭처럼 지금 잠시 떨어져있다고 해도 곧 다시 예전처럼 즐겁게 함께할 것을 나는 믿는다.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많은 나지만 그 부족한 면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채워주는 내 소중한 친구.
책을 보고 르네와 마르슬랭이 잠시 부러워졌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큰 선물인 우정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어서 책을 읽고 나서 참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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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1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 잘 보았습니다.
저도 좋아하는 책인데, 또 좋아하는 분을 뵈니 반갑네요~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어서 몇자 적고 갑니다.
위에 적어주신 '꼬마니꼴라'와 '좀머씨 이야기' 모두 쌩페의 삽화는 맞구요.
글은 르네고시니와 파트리크 쥔스킨트..랍니다 ^^
그럼 항상 즐 독서하세요~~(^^)/

미니반쪽 2008-03-19 17:09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알고있어요^^ 이 작가의 그림을 저 책에서 봤다는걸 줄여서 쓴거랍니다..
ㅎㅎ 어쨌든 그림도 글도 사랑스럽죠^^
 
르네상스 미술이야기 1 - 미술이 태어난 날
조승연.앤드스튜디오 지음 / 세미콜론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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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술에 대해 설명되어 진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나에겐 무척 새롭게 다가온 책이었다.
나는 예술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고 사실과 비슷하게 그린 그림만 좋아하고
대체로 작품에 대한 평은 '아름답다.' 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편협한 시각만을 가져왔었다.
 
이 책은 허구의 인물인 카테리나 라는 소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마치 소설을 읽듯이
아주 쉽고 재미있게 서양 예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의 부흥에 대해
미술과 건축, 당시 사회와 문화 그리고 역사까지 폭넓은 지식을
그림과 함께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흥미를 갖게 하고 있다. 
 
그저 돌이나 다듬고 환쟁이라 치부되어 천하게 여겨지던 석공들이
어떻게하여 예술가로 존경받게 되었는지를 알게되자
역시 그저 무언가 탄생하기까지 그저 아름답게 짠 하고 생겨나지는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정치적 싸움에 휘말려 이용당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예술가들의 피의 역사 위에
그렇게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하게 되었다니..
그저 새롭고 발전적인 문화운동인 줄만 알았던 르네상스에 이런 이야기가 숨겨 있는 줄은 몰랐다.
덕분에 많은 아름다운 예술을 보게 된 나는 호사로운 시간을 보냈지만
가끔은 비운의 젊은 화가 마사초나 재미있는 표정의 따뜻한 그림을 그리던 필리포 리피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책 속에는 르네상스 초기의 많은 예술가가 나온다.
재벌 메디치를 중심으로 그 후원을 받았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와 조각가 도나텔로
그 친구들인 마사초와 마솔리노, 우첼로, 기베르티 그리고 수도승 예술가였던 필리포 리피와 프라 안젤리코 등
모두들 나름대로 독특한 화법으로 그 당시 예술을 발전시켰으나
그 중 나는 선지자같은 생각으로 그 친구들의 지도자같던 브루넬레스키의 생각과 작품들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특히 내가 평소 좋아하던 피렌체 대성당의 마지막 건축 책임자였던 사실도 알게 되어 좋았다.
 
이 피렌체 대성당이 완공에 이르기까지의 연대표가 나온 부분이 있는데,
나름대로 이 책이 여러 부분에 신경을 썼다고 느낀 점은
연대표 설명에도 작지만 재미있는 유머를 끼워넣었다는 점이다.
 
1294. 아르놀포 디 캄비오 라는 길고 외우기 힘든 이름의 건축가가 건설을 시작한다. - p.113
 
하지만 나는 이 연대표에서 두가지 이해가 안되는 점이 생겼는데
하나는 조토 디 본도네 라는 분의 사망시기였다. 연대표에서는 그가 1337년 사망했다고 적혀있지만
앞서 p.22 에서는 1375년이라고 되어있어서 동명의 다른 사람인지 지금도 헷갈리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조토가 성당 건축 책임자로 임명된 년도가 1334년이라고 표시된 점이다.
그의 출생년도 역시 앞에 나온대로 치면 1315년인데 그렇다면 그는 19살에 건축책임자가 되었다는건데
그 당시엔 아무리 어린 나이부터 어른대접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명성있는 화가나 건축가만이 성당 건축을 맡을 수 있어서
브루넬레스키도 오랜동안 명성을 떨치기 위해 노력했었는데
조토는 그 나이에 벌써 무슨 일로 그렇게 명성을 떨쳤었는지 조금 의아했다.
 
감동을 받았던 문구는 바로 예술의 부흥을 도운 메디치 사장의 말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빛을 보았던 위대한 메디치, 비록 그가 가끔은 맘에 안들때도 있었으나
결국엔 그의 말처럼 "코시모가 없이는 피렌체가 없었다" 라고 생각하기에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성공하는 자는 운명을 믿지 않는 법이야, 모든 것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 p.31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그림들은
필리포 리피의 바르바도리 제단 장식 <성모마리아와 천사와 성인군자들> p.314
프라 안젤리코의 <루브르 성모대관식> p.219 그림이었다.
이 두 그림은 모두 색감이 화려하지만 아주 따뜻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준다. 정말 아름답다.
나는 이 당시 유행하던 파리의 화려한 고딕 양식이나 로마의 부흥을 갈망하며 로마양식을 추구하던 예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접한 작품들과 설명들은 확실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내가 좋아하는 쪽을 따지자면 브루넬레스키의 <죄없는 자의 쉼터> p.120 같은 로마 양식의 단순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나는 이후 카테리나와 지노, 그들의 아들 구이도는 어떻게 되는지,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 친구들의 다음이야기
그리고 목표를 이룬 메디치는 어떻게 되는지, 이후 얼마나 더 멋진 예술가들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다음 책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주제를 가장 명확하게 하는 레온 알베르티의 말을 적으며 이 글을 마칠까한다.
 
"신은 세계를 창조했고,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시면서 인간에게도 창의성이라는 힘을 주셨지요.
인간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힘은 신의 능력과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그런 창조에 일생을 바치는 선생님은 노동자가 아니라 예술가입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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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 지음 / 샘터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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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생각보다 더 공감이 되는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이야기들로 가득찬 책을 읽었다.
방송작가 김미라 님의 글 모음집인데, 이 책은 그냥 편할때 내키는대로 아무곳이나 펼쳐서 읽어도 감동을 준다.
책 표지 맨 앞에는 지은이 김미라 님의 이력이 간략하게 나오는데
남들처럼 숫자나 학력으로 설명하지 않고 소소하고 따뜻한 일상의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는 점이 참 맘에 들었다.
나도 누군가 나를 이렇게 설명해 줄 만한 기준과 따뜻한 이야기로 살아왔는지 참 부끄러웠다.
 
나는 책 속 모든 부분이 감동이었다.
나도 지은이처럼 잃어버린 첫사랑도 있고, 먼 곳에 떠나보낸 친구가 있고, 가끔은 멀어질듯 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이해해주는 가족이 있어서일까?
 
읽을때마다 잊고 살았던 따뜻한 추억들과 나에게도 있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들,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과 그리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앞으로는 무언가를 잊어버려도 그렇게 안달낼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목사 아버지가 아들 폴의 장례식에서 했던 대사)처럼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잘 몰라도 그것을 추억할 수 있고, 마음속에 봉인할 수도 있습니다.
비어 있는 자리는 그것대로 다 이유가 있겠지요.
- p.31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어도 그 위에 다시 사랑의 집을 쌓으면 된다(- p.19)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는 여지껏 지난 사랑을 완전히 잊어야만 다른 사랑이 가능할꺼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
책 속 누군가 말했던 외로워 죽을뻔 했던 시간들을 겪으면서도 해결할 방법을 몰랐던 내게 이 책은 정말 많은 위안을 주었다.
 
이름이 새겨진 벤치 이야기에서 나는 예전에 읽었던 어떤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애인과 이별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앞에 배달되어온 그와 함께 앉았던 그의의자.
왜 그는 그녀에게 그 의자를 보냈는지, 그 소파에 앉아 그 이유를 생각해보던 장면이 있었다.
둘이 함께 앉기엔 좁은 의자였지만 그때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아늑하던 의자였는데
혼자앉으려니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던 의자, 아마도 그는 '내게 돌아와 주세요' 라는 메세지를 그 의자에 적어 보낸게 아니었을까?
이와 비슷한 장면은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에서도 나온다.
여주인공 캐리와 에이단을 만나게 해 준 의자, 그리고 이별한 뒤에도 캐리에게 남겨진 바로 그 의자.
이 때의 의자는 '지금은 아프지만 곧 괜찮아질꺼야' 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도 내 삶의 길목에 있는 벤치에는 어떤 말들이 적혀있을지, 누군가에게 쉼터가 되주는 벤치를 많이 남겼길 소망해보았다.
 
그들은 손을 잡고 걸어갔습니다. - p.45
 
이 글에선 오래전 잊고 있었던 따뜻한 장면이 떠올랐다.
몇년전 그날도 나는 학교에 가고 있었다. 추운날씨, 가파른 고갯길 특별하기는 커녕 짜증만 나던 그날,
내 몇 발자국 앞을 걷고있던 남,여 꼬마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건 평소처럼 귀여운 아이들의 얼굴이 아니었다.
유치원생쯤 되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춥지? 내가 손 더 꽉 잡아줄께."
남자아이는 그렇게 말했고 둘은 계속 웃으며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갔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도 서로의 손을 꽉 잡아주고 있을까?
그때의 기억을 생각하면 나에게도 그 따스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난 두 장의 사진에도 감동을 받았는데 하나는
p.88 의 등대사진과 다른 하나는 p.178 의 앙상한 겨울나무 사진이었다.
등대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부활> 에서의 대사가 떠올라서 마음에 들었다.
두 등대가 서로 멀리 떨어져있어서 안되보인다는 여자주인공의 말에
남자주인공은 말한다.
 
"그래도 서로 마주보고 있으니까 괜찮아."
 
또 겨울나무 사진은 한일합작 드라마 <천국의나무> 의 엔딩 장면이 떠올라 더 이해가 쉬웠다.
사랑하던 오빠의 심장을 이식받고 살아난 여주인공은 둘이 생전에 자주 가던 눈쌓인 언덕 위 나무를 찾아간다. 절망하고 싶은 현실 속에서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새 싹을 틔울 나무를 보면서
그녀는 삶에 대한 희망을 찾았죠.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이 말이다.
 
아프면 아픈 만큼 앙상해지고 황량해지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겨울 정원을 통해 배웁니다.
우리 삶도 아픔 속에서 잠시나마 호흡을 고르면서 새로운 싹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깨우칩니다.

- p.177
 
나는 내가 참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이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내게도 즐거웠고,소중했고,행복했던 순간이 많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 역시 감정의 시차로 그를 떠나보냈지만 앞으로도 나에겐 많은 선택들이 남았고
그 선택들로 인해 나도 다시 누군가에게 천천히 조금씩 기울어져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과 추억을 일깨워주고 그래도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그 나름대로 또 의미가 있단걸 알려준 이 책이 참 고맙다.
또 살아가다가 또 잃어버리고 좌절감에 빠져있을때 한번씩 이 책을 꺼내어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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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2 - 서쪽마녀 이야기 위키드 6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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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구나 알고있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
그 속에 나오는 도로시 일행말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도로시의 물세례에 죽음을 맞이하는 서쪽마녀에게
이 책의 저자 그레고리 머과이어 말고 그 누가 관심을 기울였을까.
표지에서 한쪽입꼬리를 올리고 웃고 있는 자신만만한 엘파바가 거만하게 나에게 말하는것 같다.
 
'누구도 내 삶을 좌지우지 할 순 없어'
 
엘파바는 목사인 아버지가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했던 날 불길한 초록색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그렇게 엘파바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과오를 짊어지고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때문에
속죄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양팔이 없는 여동생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했다.
어머니가 가장 사랑했을 남동생 셸, 아버지가 가장 사랑한 딸 네사로즈...
이렇게 가정에서 소외당하고 시즈학교를 다닐때는 수수한 옷으로 자신을 눈에 띄지 않게 살고
(하지만 본의 아니게 그녀의 피부색과 그녀의 언제나 당당한 언사때문에 남의 눈에 띄지 않기란 불가능했지만)
학교를 나와서는 지하조직에서 그 활동을 보조하는 역할로
유일하게 사랑했던 이를 잃고 나서는 아픈 환자들을 위해
그렇게 계속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해 살아갔다.
 
그녀가 단 한번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가 있었다.
옛날 친구 티벳을 수녀원에서 만났을 때였다.
그래서 그녀는 티벳이 죽고나서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사랑했던 이의 부인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
 
엘파바는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버림받고 철저히 혼자였다.
부모, 동생,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를 진정으로 이해해 주고 함께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이건 엘파바 본인이 불러일으킨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분명 약자를 위해 투쟁하는 삶을 살았지만
정작 그녀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여동생 네사로즈와도 생각을 공유할 수 없었고, 아름다운 친구 글린다와는 헤어지고, 사랑하는 피예로를 잃고
무엇보다도 리르, 그녀의 아들 리르와 잘 지내지 못한다.
그녀가 누군갈 사랑하는 법만 배울 수 있었다면 이토록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엘파바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
불길한 피부색도 그녀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사악한 마녀라 불리게 된 것은 그녀의 냉소적이고 편협하고 타인을 배척했던 점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왜 악의 대명사로 불려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삶도 사랑도 실패하고 일평생 고독했으며 평생 추구하던 용서도 받지 못한 불쌍한 캐릭터일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렇게 실패한 삶속에서도
끊임없이 자기가 추구하는 신념을 위해 투쟁하는 삶을 살았다는것이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삶을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항상 걱정하고 주체적으로 살고자 노력했다.
(책속에선 야클이라는 집시노파가 끊임없이 나와서 이러한 알파바의 생각에 미스테리와 신비감을 더해준다)
힘든 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는 미워할 것이 많지만, 사랑할 것도 너무나 많았다.
- p.2권 18
 
사랑하는 법은 몰랐지만 그래도 그녀는 최대한 열심히 살았고, 그 점만으로도 그녀는 존중받을만하다.
 
그녀가 정말 악한 마녀일까? 그건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책속에서는 끊임없이 악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다. 악이란 무엇인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엘파바 본인을 그저 단순히 악한 캐릭터라고 할 수 없듯이, 책 속 엘파바도 말한다.
악은 증명할 성질의 존재가 아니라고...
 
아름다운 동화와 마법의 나라 오즈가 이 책에서는 정치적인 싸움으로 약자들이 고통받는
현실과 비슷한 세계로 나온다.
게다가 지배자 오즈와 알파바.. 아아.. 아마 알게되면 더 슬플것이다.
 
언젠가 뮤지컬로 위키드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렇게 되면 알파바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도 들을 수 있을테고
스크로족 나스토야 여왕과 알파바가 만나는 신비로운 모습은 정말 감동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이 때 처음으로 알파바는 솔직한 자신을 내비친다.
 
"내말을 잘 듣고 단단히 기억해 두어라. 별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다. 별에도, 다른 어느 것에도 없다.
어느 것도 네 운명을 지배하지 못한다."
- p.2권 37
 
어떤 악도 단순히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 책,
그리고 상처받아도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책,
진실의 양면성을 알게해주고 개성강한 캐릭터가 가득한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서쪽마녀 엘파바를 알게되서 정말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엘파바를 소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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