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 자립과 의존의 심리학
가토 다이조 지음, 이정환 옮김, 이재삼 그림 / 나무생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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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기에 제목은 낚시에 가깝다. 부제인 '자립과 의존의 심리학'이 원제인데 그걸로는 임팩트가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제목을 이렇게 바꿔놨는데 이 제목은 내용의 일부에 불과하다. (근데 잘 짓긴 했어)

 가토 다이조는『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로 처음 접했다. 이 책이 좋았기에 그의 책은 전부 읽으리라 해서 신간을 바로 샀던 것인데 저자 이름 가리고 읽어도 누군지 짐작 가능할 만큼 설명 방식이 똑같아서 피식피식 웃으면서 읽었다.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는 '지금 내가 왜 이런지'에 대해 '어머니다운 어머니 밑에서 크지 못했기 때문'으로 만사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마음의 지주가 세워지지 않아서'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러면 이 '마음의 지주'는 어떻게 세워지느냐, 그건 '어머니다운 어머니' 밑에서 자라야 세워지는 것이다. 결국 같은 얘기다.

 그러나 저자는 같은 얘기를 결코 같지 않게 얘기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중복 서술을 매우 싫어해서 그런 게 있으면 반드시 걸러낸다. 특히 이렇게 비슷한 얘기를 한 권 내내 하는 책의 경우에는 아예 찾아내려고 벼르면서 읽게 되는데 전작도 그랬고, 이 책도 그렇고 찾을 수가 없었다. 비슷한데 다르면서도 항상 결론은 같다. 어머니다운 어머니 밑에서 크지 못했기 때문인 거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어머니 때문' 인 건가. 나를 잘 보살펴 주지 않은 어머니 때문에 내가 지금 이런 거라면 이미 다 커버리고 시기를 지나버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이미 망했는데 역시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는 건가. 

 그런 독자의 마음을 저자는 이미 꿰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다. 초반엔 어머니다운 어머니 밑에서 자랄 수 있어 마음의 지주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계속 얘기해주어 인지하게 만들고, 다음엔 그냥 차이를 인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너는 그런 상황에서도 지금 얼마나 잘 큰 것이냐며 그걸 토대로 자신의 마음의 지주를 세우라고 한다. 어머니를 잘 만난 아이는 그가 노력해서 마음의 지주를 세운 것이 아니지만 너는 안 좋은 환경을 딛고 스스로 노력해서 극복했으니 자신이 마음의 지주를 세운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렇게 생각하며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하라고 한다. 

 말이야 쉽지 적용은 어렵다. 그렇지만 차이를 알고 있으면 이해할 수는 있다. 나한테는 당연한데 너한테는 당연하지 않아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던 것들. 서로의 마음이 상상조차 안 가기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저러나 싶던 상대의 행동이나 이상한 나의 감정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책에서 말하는 모든 것이 들어맞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읽으면서 나는 어머니다운 어머니 밑에서 자란 것인가 아닌가 생각하며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기억해보려고 애쓰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 저자가 남자여서 그런지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적용 가능한 얘기가 많다. 특히 '엄마 같은 애인'을 찾는 남자들에게. 그러니 역으로 '아들 같은 애인' 때문에 고민인 사람에게도 아주 유익할 것이다.  

++) 막연하게 생각했던 어린 시절에 사랑받는 경험이 왜 중요한지를 알았다. 그때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에 따라 매우 많은 것이 갈리는구나.

+++) 그리고 그것들이 충족되지 못한 채 몸만 어른으로 컸을 때 어떤 어른이 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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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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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때, 문/이과를 정하기 위해 친구들이 나름의 고민을 할 때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이과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나는 사회과목이 너무나도 재미없었기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그랬다. 역사를 배울 때나 등고선을 그리는 지리를 배울때나 가끔 재미가 있었고, '사회' 분야를 배울 때에는 (드럽게) 재미가 없었다. 내가 10대시절 느낀 사회과목은 도무지 생각하는 재미가 없는 과목이었다. 그냥 '뭐는 뭐다' 하는식으로 정의만 외우면 그만이었고 문제를 풀 때도 마찬가지로 별로 푸는 재미가 없었다. 해야 하니까 했는데 하면서도 '참 재미가 없다. 난 이쪽에 안 맞나보다.' 하고 늘 생각했다. 반면에 수학/과학은 (안풀려서 짜증은 날지언정) 생각하는 재미가 충분했으니까.

 과목만 지루해한 게 아니고 실제 사회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더 과목도 지루해하는 악순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사회탐구의 선택과목을 배웠으면 흥미가 생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과를 선택한 나는 그런 기회조차 박탈당해서 주구장창 과학만 배워야했다(2학년 때부터는 교과과정에 아예 사회과목이 없었다). 그 때 책이라도 인문학 책을 즐겨 읽었으면 모르겠는데, 나는 스무살 이전까지는 소설만 봤다. 그것도 굳이 수능에 나오지 않을만한 소설만 골라서 읽고 소설이 아닌 책은 언어영역 비문학 지문 같아서 흥미가 없었다. (어차피 문제집으로 맨날 만나는데 내가 그걸 왜 또 읽어? 책은 공부 안할 때 재미로 보는건데?) 

 수능이 끝나고 공대로 진학하자 읽을 거리가 없어졌다. 그랬더니 이제서야 비문학 책도 재밌어 보였다. 그렇게 스무살 이후부터는 전공보다는 문과쪽 책만 주구장창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전공은 이미 매일 접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책을 더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이 청개구리 심보 때문에 늘 비효율적인 삶을 산다)  

 그렇게 이제는 소설보다 인문학쪽을 더 즐겨 읽으면서 가끔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10대 때 이런 재미를 알았더라면 문과를 가서 사회과학대로 진학했을 것 같다는 생각.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 그 때는 사회나 사람에 대해 흥미가 없었고 아는 것도 없어서 그 때 읽었어도 이만큼 재밌어 하지는 않았을 거야.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와 진짜 재밌다. 사회학이란게 이런 생각과 고민을 하는 학문이었구나. 왜 이제서야 알았지. 이렇게 재미난걸. 이렇게 재미난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근데 진작에 알았더라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여서 이렇게 와닿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더 찾아 읽고 싶은 게 아닐까. 이 책은 2년 전 이맘 때 나왔다. 그 때 나오자마자 사놓고선 이제야 읽는데 지금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2년 사이에 우리 사회엔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그동안 열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혼자 생각 했던 의문점들, 더 알고 싶은데 어디부터 찾아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들, 이 책에 들어있었다.

 키워드 별로 두, 세권의 책을 들어 사회현상을 설명해준다. 그 책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알지 못하는 고전들도 있고 지금의 책도 있다. 책 자체의 면면보다 중요한 건, 그 이론을 우리 사회에 접목시키는 저자의 해설이 맛깔나다는 것이다. 예시도 그렇고, 말투도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적당히 상스러운 비유도 재밌고, 강약조절도 좋다.  

 읽으면서 계속 감탄하고 수긍했다. 이런 현상들이 이미 예전에 다 이론으로 나와있었던 알고있는 사실이구나. 이미 다 학문으로 정립된 것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신기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런데 왜 사회는 아직도 이럴까? 싶은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이미 모든 것이 설명가능하고 너무나 자명한데 왜 개선되지 않고 계속 요모양 요꼴인건가 싶은.

 그게 '사회학'과 진짜 '사회'의 간극이 아닐까. 그리고 그건 '사회학자'와 '사회인'의 간극과도 비슷할 것이다. [에필로그]는 그 간극을 마주하는 사회학자의 심정을 말한다.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 앞에서 사회에 관해 얘기해야 하는 사회학자의 당혹감에 대해. 그 간극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사회학의 역할과 고민에 대해. [에필로그]가 나는 너무나 좋았다.



+) 책의 마지막에는 앞서 키워드별로 명시했던 책에 대해 다시 친절히 설명해준다. 
사회학 책 읽어보고 싶은데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아주아주 유용하다. 
재밌어보이는 책들이 무진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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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가장 사소한 구원 -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
라종일.김현진 지음 / 알마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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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딸린 부제는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다. (포스팅 제목에 같이 넣으려 했건만 글자수 제한을 받아 할 수 없었던) 길고 긴 부제가 이 책에 대해 말해준다. 70대와 30대가 과연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을까. 

 편지에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얘기가 어우러져있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어온 70대 교수에게 헬조선을 살고있는 지금의 30대 청년이 과거는 어땠느냐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묻는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절대 회피하지는 않고 집요하게 묻는다. 둘의 기싸움이 팽팽해서 웃기도 했다.

 젊은이는 솔직하게 대놓고 묻는다. 하지만 노교수는 말을 아낀다. 그러면 젊은이는 그래도 알고싶다며 다시 곧바로 물어본다. 그제서야 노교수도 조금 드러낸다. 그러나 여전히 젊은이가 원하는대로 속시원한 대답은 아니다. 노교수는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젊은이는 두루뭉술한 답변은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또 웃겼던 것은, 젊은이가 과거의 인물을 끌어와 지금과 대입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노교수는 예전에 그 인물을 만난 적이 있었노라며 일화를 얘기해준다. 그런데 그 인물이 영국의 찰스 왕세자/다이애나 왕세자비 내지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다. 읽으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나라 버전으론 김대중 前 대통령에 대한 얘기를 해줬고, 일베나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에 대해서 물어보자 옛날에 서북청년단 또한 직접 만나본 적 있다면서 얘기해준다. 얼마나 신기한가. 인터넷이나 매체에서 접하는 게 아닌 직접 본 사람의 생생한 증언이다. (얘기를 들으면 내가 얼마나 언론에 보이는 것만 생각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노인은 귀중하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으면서 단시간에 너무 빨리, 많이 변했기에 간극이 크다.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하고 담담하게 그랬노라고 말해주는 노인도 있는데 왜 세상은 꼰대만 많은 것 같을까. 이런 어르신은 대체 다 어디 계신 걸까. 이런 세대사이의 간극은 책에서 30대가 말하듯 노인에 대한 편견을 만든다. 그리고 70대의 노교수는 그런 잘못된 인식마저 콕 집어서 얘기해준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30대의 말은 왠지 20대(대학생)가 말하는 것처럼 읽혔다. 초반엔 공감하며 읽었지만 점차 지치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그녀는 내내 징징거린다.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 연달아 터진 개인적 불운으로 인해 매우 힘든 상태임을 처음부터 고백하는데 노교수도 몇 번은 잘 받아주다가 결국 '마음이 쓰인다'며 짚고 넘어간다. 나는 여기서 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그녀에게 마음이 걸린 것도 이 지점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노교수는 예리하게 지적하고 관점의 전환을 촉구한다. 너무 그것만 바라보고 살지 말라고.

 읽다보면 감정이 전이돼서 피로해질 정도인 그녀의 절망이 깔린 물음들은 독자입장에서는 고맙다. 나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던 것들을 대신 물어주니까. 그녀가 총대를 매준 것이다. 확실한 답변을 위해 그녀 또한 논지가 미숙함을 알면서도 일부러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물음을 던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물음에 대한 노교수의 답변은 '이래라 저래라'가 아니다. 멘토를 자청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더 힘들게 살아왔으니 너희는 지금 힘든 것도 아니다' 도 아니다. 너희들이 직접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도록 그가 보고 듣고 겪고 느낀 얘기들을 해준다. 강요하지 않고 여지를 주는 얘기는 얼마나 재미난가. 노교수가 경험했던 근현대사 얘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더불어 이 책에는 종교적인 담론도 가득하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삶에 기독교(개신교 + 천주교)가 빠지지 않았던 사람들이기에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느껴왔던 종교적 병폐와 우리나라 발전사와 어우러지는 기독교적 얘기, 그리고 최근엔 교황 방한에 대한 이슈까지도 서로 주고받는다. 
 
 그러나 역으로 이 때문에 책이 호불호가 갈릴지도 모르겠다. 노교수의 교훈적 얘기에는 간혹 '하느님이 주신'으로 시작하고 그러니 '하느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기승전-하느님으로 끝나는 문장들이 있고 성경 비유나 관련 얘기는 꽤 많다. 때문에 기독교 신자라면 이 책이 더 절절하게 공감갈테지만 무교나 여타 종교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고 넘기면 될 것 같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이 궁금했는데 그런 것들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특히 교회의 사업화 같은 것들이나 우리나라에 왜 유독 기독교가 많은지 같은 것들).  


+) 책을 살 때에도 저자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편견을 갖게 될 까봐 일부러도 찾아보지 않았다.
 사실 다 읽은 지금도 상세히 검색해보지 않아 자세한 건 모르고, 그저 책에서 만나 본 느낌에만 충실했다.

++) 노교수 지금 말은 상당히 점잖지만 일화를 들으면 젊은시절 얼마나 혈기왕성했을지 짐작이 간다. 아버지가 '경망스럽다' 했다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일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닌건 어떤 상황에서도 아니라하는 강경함이 있으시다(다이애나 비 사망에 관한 코멘트는 대사관이 그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고 일본 신사참배에 대해 일본인 친구에게 던지는 농담은 뼈가 있었다). 『밤은 선생이다』에서 황현산 선생님이 젊은 시절 책 못 읽게 한다고 분노했다던 그 모습이 겹쳐서 혼자 웃었다.

+++) 영국에서 대사관 하고 있던 시절 얘기들도 엄청 재밌다. 역시 영국도 병폐가 만만찮아.

++++) 나이는 30대와 비슷하지만 나는 노교수가 하는 얘기에 더욱 감화되어 읽었다. 내 생각은 그녀보다 이쪽에 더 가까운 듯 하다.



※ 오타가 있다
 전자책이라 정확한 쪽수는 알 수 없지만, 
 - [세상을 사는 방식] 에서, "말하자면 은 층의 국민들에게서 해결책이 나와야 하는데,"  
 -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하는 것] 에서, "다른 형제들도 어려움은 마가지였겠지요." 
 - [이야기가 주는 힘] 에서, "조금 덜 잘난 하고 조금 더 겸손한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할까요."

 종이책에도 똑같은 오타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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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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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글쓰기'라고 떡하니 써 있으니 대부분은 '글 잘 쓰는 법'을 알려줄 거라 기대하고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저자 이름이 하필 또 '서민'이라서 제목만 보면 중의적인 느낌이 있지만 제목은 내용에 적확하다. 이 책은 '서민'이라는 사람이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니까.

 저자는 기생충 전문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의 책을 기생충 관련 책만 (그가 읽지 말라 말하는 초창기 책들도) 빼고 다 읽었다. 심지어는 그가 나오는 팟캐스트도 찾아 들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말하는 그의 인생사와 심지어는 예시(미이라에서 발견된 기생충 논문)조차도 나에겐 새로운 얘기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재밌었다. 아는 얘기여도 그가 다시 재미나게 얘기해주니 그냥 따라가며 재미나게 들었다.  

 그의 강점은 간단하다. 쉽고 솔직하고 웃기다. 내세울 것 많지만 내세울 것 없는 것만 얘기하는 자학성 개그라든가(본인은 사실을 얘기할 뿐이라고 하지만), 노골적인 실패 경험담(합리화도 없다), 더불어 다른이의 멋짐도 확실하게 인정하고 아닌 것 또한 아니라고 조목조목 짚어준다.

 전반부는 '나는 어떻게 글을 잘못 써왔나'의 역사고 후반부는 '이제 좀 잘 쓰게 된' 역사다.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시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책인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처음엔 얼마나 못 썼는지, 그래도 계속 쓰고, 읽고, 쓰려 했고 그럼에도 편차가 심해 좋은글과 안좋은글이 들쑥날쑥했고, 거기서 나는 무슨 잘못을 했고, 어떤건 잘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글 잘쓴다는' 서민이 되었는지를 얘기한다. 말이야 간단하지만 이 기간이 10여년이다. 거기다 그 기간에 책도내고 칼럼도 쓰고 실전 경험도 많이 쌓아야 겨우 지금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과 경험적 노하우가 책에 고스란히 실려있다(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시라).

 책을 읽으면서 나도 쓰고 싶어 좀이 쑤셨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내가 제일 고민하는 것은 내 얘길 어디까지 해야할까 하는 것이다. 너무 드러내자니 내가 부끄럽고 내 얘길 빼고 하자니 (쓰는 나도) 재미가 없고. 그런데 이런 솔직한 책을 접하면 나를 드러내는 것보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포장하는 게 더 부끄럽지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어차피 부끄러울 거라면 전자로 부끄러운게 낫지.


+) 후반부 칼럼 예시들이 참 좋았다. 글 잘 쓰는 사람 진짜 많다. 

++)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가 주요 예시로 나와서 반가웠다.
 나도 이 칼럼으로 칼럼니스트 서민에 입문했는데. 그 때 밤새 칼럼 역주행했던 기억이 난다.
(궁금하면 꼭 찾아보시길. 이게 서민식 칼럼의 핵심이다. 돌려까기)

+++) 교수님 출처표기 칼 같아서 속이 후련했다. 논문 쓰던 실력으로 책을 내서 그런가.
 심지어는 기사 댓글, 블로그 주소까지 주석으로 주소 다 달아놨다.

 다만, 엔하위키 자주 보신다며 추천까지 했는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엔하키라고 쓴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엔하위키도 망했어요. 나무위키로 갈아타세요.

++++)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블로그는 두 군데

서민의 이름을 달고 하는 경향신문 블로그 http://seomin.khan.kr/

책에서 계속 얘기하는 알라딘 서재 (마태우스) : http://blog.aladin.co.kr/74725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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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 라이프 - 제12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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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히비야 교차점 지하에는 세 개의 선로가 달리고 있다. - 「파크 라이프」첫 문장 
그 사람, 모치즈키 간단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첫눈에 그에게 빨려들었다. - 「플라워스」첫 문장

☞『분노』로 요시다 슈이치를 처음 접하고 도서관에서 그의 다른 책을 찾아봤다. 유명한『악인』이나『퍼레이드』는 아껴두고 이 책이 끌렸다. 얇으니까. 가볍게 요시다 슈이치 월드에 입성해볼까 하고 골랐던 책인데 너무 좋아서 몇 장 읽다가 덮었다. 안돼 이건 사서 봐야해. 

 나는 단편소설을 못 읽는다. 정말 글자를 읽을 수 없어서 못 읽는다는 게 아니라, 재미를 못 찾는다. 소설이라면 응당 다른 세계에 들어갔다 나오는 재미로 읽는건데 단편소설은 인물 파악 좀 할라치면 벌써 끝이었다. 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건지를 몰랐다. 시작했나 싶으면 끝나버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데 끝나버리니까.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장편에 비해 단편은 실망하기 일쑤였고 수상작이라도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단편소설은 단순히 활자를 읽기만 했고 당연히 기억에 남지 않았다(간혹 열에 한 두편 정도만 인상에 남는다. 김애란이나 이기호 같은 단편 특화 작가). 그렇게 몇 번 시도해보다 나와는 안맞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소설책을 살때 '장편'이 붙어있는지 여부만 확인하고, 없다면 사지 않았다. 몇 년을 그렇게 장편소설만 편독했다.

 그런데, 간만에 읽는 단편소설임에도 이 책은 너무나 좋았다. 이제야 단편소설 읽는 맛을 알 것 같았다. 읽으면서 이거 뭔데 이렇게 좋지. 별 거 없는데 좋네. 아니, 별 거 없어서 좋은건가 생각했다. 다 읽어도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다 열려있다. 벌려놓기만 하고 주워담지 않은 채 글이 끝난다. 그렇게 그 세상은 끝나지 않고 열려 있는 것이다. 내 안에서도.

 그 점이 싫어 단편에 재미를 못 붙였는데 이제는 그 점 때문에 단편이 재미난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결말을 내린 이야기는 책을 덮은 순간 내 안에서도 끝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닫지 않고 끝났다. 소설이 끝났다고 인물의 삶도 내 안에서 끝난 게 아니라 그냥 계속된다. 마치 우리네 진짜 삶처럼 평범하게 그냥 계속 살아간다. 

 표현 같은게 엄청 좋다. 이 짧은 책에 포스트잇을 엄청 붙였다. 명대사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표현들이 좋았다. 풍경을 묘사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말들이 엄청 담담한데 감정이 느껴진다.『분노』에서도 특정 장면에서 감정이 무너지는 표현이 참 좋았는데 이 책의 두 번째 단편 「플라워즈」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의 표현이 엄청 좋았다. 이 아저씨는 뭔가가 안에서 무너질 때의 느낌을 기가막히게 표현한다. 아름답게. 간간이 개그 아닌 개그도 있는데 담담한 어조와 맞물려서 (난) 엄청 웃겼다. 「파크 라이프」에서는 그와 그녀의 지하철 첫 만남 상황이 너무 웃겼고, 「플라워스」에서는 '토종 고추'에서 빵터졌다.

 책 말미에 작품을 해설한 [옮긴이의 말]이 있는데 마치 서로 다른 소설을 읽은 듯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 기법과 장치에 대해 몰라도 읽을 때 재미있고 좋았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좋아하는 일본 작가가 한 명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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