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dts, 2disc) - 할인행사
마이클 베이 감독, 벤 애플렉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진주만'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는 접해본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특별히 내가 들어왔던 부정적인 평가가 진주만에 대한 내 생각의 근거가 된 것은 아니다. 내가 실제로 접한 진주만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 영화는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자 했다. 그 결과 엄청나게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스토리에 관객을 몰입시킬 수 없었으며, '재미는 없는게 길기는 더럽게 길다'(딴지일보)는 평도 받았다.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 먼저 진주만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이 영화의 배경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진주만이 여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 전에 사랑 이야기의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사이에 두 친구의 우정 이야기도 그려야 했으며, 브리티쉬 항공전 이야기도 진주만 이전에 나왔다. 그리고 진주만이 끝난 이후에는 이듬해의 도쿄 공습 이야기도 들어가야 했고, 그 와중에 우리의 여주인공은 친구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정신없이 갈팡질팡한다. 그렇게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여주인공이 이해되기는 커녕 대체 몇 번이나 남자를 바꾸는 건지 어이가 없다.

아래 분의 마이 리뷰에서는 전쟁이 아니라 멜로물이라고 했는데, 이건 최근의 전쟁 영화의 기본적 추세이다. 무슨 말인즉 하니, 예전의 전쟁 영화는 전쟁 자체가 배경인 동시에 주제였다. 전쟁 속에서 인간성의 상실, 병사들이 느끼는 기본적인 공포 이런 것들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소재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최근에 발표된 전쟁 영화들에서 전쟁은 그야말로 배경에 그치고 있다. 다만 그 배경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들이 전쟁 영화의 범주에 들어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블랙 호크 다운'은 단순히 전쟁 영화같지만 미군의 기본적인 정책 중 하나인 '조국은 너를 버리지 않는다'를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것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보다는 블랙 호크 다운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포로가 되었든 시체가 되었든 기필코 구하러 간다는 것이다. 한 명을 집에 보내기 위해 일곱 명이 사선을 넘어야 하는 정당성은 여기에 있다. 베트남전에서 버리고 온 미군 유골을 최후의 하나까지 찾아내는 그 집념은 미군 병사 개개인에게 항상 국가가 그를 보살피고 아낀다는 점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요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한국 전쟁은 배경이다. 하지만 한국 전쟁이 배경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의 형제애, 민족 분단의 비극이 더욱 가슴 깊숙히 다가온다.

진주만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영화로는 '도라 도라 도라'가 있다. 이 영화의 배경과 주제는 모두 진주만 공습이다. 이 영화는 어떤 가슴 아픈 이야기를 넣기 보다는 차라리 진주만 공습 자체에 충실했다. 세계 최초로 항공모함을 이용한 공습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한 일본, 어처구니 없이 선전포고 시간을 놓친 일본대사관의 실수, 안일한 자세로 아무 방비를 세우지 못했던 미국의 이야기를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영화이다. 그에 비해 이 영화는 제목이 진주만이면서도 진주만을 배경으로 다른 이야기를 잘 살리지도, 그렇다고 진주만을 잘 살리지도 못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은 진주만 폭격장면이 아무리 멋있으면 뭐하겠는가. 그곳에서는 기껏해야 두 친구의 맹활약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용감한 미군 병사만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온갖 잡동사니 같은 이야깃거리를 4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에 대충 비벼넣은 후에 미국 만세라는 양념으로 마무리를 지은 잡탕 정도에 불과하다. 30분 정도의 멋진 장면은 먹음직스러운 외관 뿐이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리 포터 Vol.1+2 박스세트 Fullscreen Edition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로비 콜트레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해리포터 시리즈는 확실히 대박을 터뜨린 책이다. 월셋방을 전전하던 가난한 이혼녀 조앤 롤링은 이제 엘리자베스 영국여왕마저 제치고 영국 제1의 여성 갑부가 되었다. 이 시리즈는 수십 개국에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어 수백만의 독자를 거느린 새로운 대작으로 자리매김 했다. 인기있는 책은 영화화한다는 기본적인 법칙에 따라 이 책 또한 영화화되었다. 그러나 영화관에서 만난 해리포터는 책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책과 영화는 다른 법이다. 책에서는 두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는 주변 묘사도 영화에서는 그렇게 오랫동안 - 두 페이지를 읽을 시간 동안 - 소개하고 있을 틈이 없다. 기껏해야 몇 초, 그 시간 안에 책을 읽었을 때 받을만한 그 느낌을 보여주어야 한다. 책에서 주인공의 의도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해도 영화에서 표현하는 방법은 그와 다를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러닝타임이 120분에서 길어야 180분에 끝나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책과는 다른 시간상의 제약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책의 요약본이 될 수는 없다. 요약본은 어디까지나 요약본일 뿐이다. 영화는 요약본이 아니라 그 전부여야 한다. 영화를 보고 해리포터를 이해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각색이 필요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책으로도 영화로도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기본 줄거리와 중요한 장면들은 확실히 일치하지만 그 외의 장면들은 과감하게 생략되어 있거나, 아니면 내용이 바뀌어 있다. 책과 영화가 이야기와 감동을 전달하는 방식이 다를 뿐 아니라 - 책은 상상력에 의존하지만 영화는 시각과 청각에 의존 - 영화는 시간상의 제약을 받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책과 같은 완전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리 포터 시리즈는 그 각색에서 실패한 작품이다.(적어도 1, 2편은 그렇다. 3편은 그런 점에서 이전의 작품에 비해 훨씬 발전했다.)

한 가지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론과 헤르미온느, 해리가 마법사 체스와 맞닥뜨리게 된다. 누군가는 체스를 두어야 하고 누군가는 말이 되어야 하는 그 상황에서 론과 헤르미온느는 주저없이 말이 된다. 말이 되면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행동이 쉽게 나올 수 있을까? 해리를 믿기 때문에라고 해도, 그건 해리가 주인공이니까라는 치졸한 변명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설명이라곤 기껏해야 론과 해리가 체스를 두는 한 장면 뿐이다. 책에서는 그러한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이미 그 전에 복선을 깔아두고 있다. 휴일 내내 호그와트에서 론과 해리가 마법사 체스를 두었고 해리는 마법사 체스에서만은 매우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책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복선으로 작용했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그 상황을 납득시키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사실 필사적이지도 않다)

영화는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을 담고 싶어한다. 그 결과 모든 사건에 짧은 시간만 배분할 수 밖에 없었다. 해리포터(영화)에는 이야기 진행의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다. 필요한 것은 복선이지만, 실제로 있는 것은 변명이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데? 라는 질문에 그래서 5분 전에 1분짜리 복선을 보여줬잖아 라고 얘기하는 것이 영화다. 모든 내용을 포함하는 바람에 정작 중요한 것에 시간을 제대로 할애하지 못한 게 1편이다. 해리포터 1편은 특히나 상상하던 책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별반 볼 가치가 없는 영화이다. 책을 보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도 또 상상을 필요로 했다. 대충 훑고 지나가는 내용에서 '아 책은 이렇게 이렇게 설명했었지'라면서 말이다. 영화는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영화가 만들어진 이상 그 영화는 독립적인 작품이다. 영화 자신이 책에 의존해서야 그건 독립적인 작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1편과 2편은 책에 대한 의존이 너무 심하다. 그런 까닭에 해리포터 1편과 2편을 좋은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책과 함께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드보이 UE - 동판케이스 한정판 (4disc)
박찬욱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올드보이가 개봉된 이후로 '두 남자의 복수극'이라는 코멘트는 꽤나 여기저기에서 많이 보았던 것 같다. 그런 코멘트만 접하다가 스크린이 점점 줄어들 무렵에 처음 본 올드보이는 생각과는 훨씬 다른 영화였다.

오대수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듯이 처음에는 오대수의 시각에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다. 15년간의 감금. 산산히 부서진 가족. 오대수의 마음 속에는 복수심만이 가득했다. 복수하겠다고 15년간 자신을 단련한 그였다. 그런데 오대수의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오대수는 감금 당한 사람이고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이다. 이 영화가 오대수의 이야기가 되려면 차라리 복수하는 과정을 보여줘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우진의 한 마디가 이러한 진행을 막아버리고 있었다. 내가 왜 가뒀는지 맞추면 죽어주겠다. 오대수가 하고싶어하는 복수는 이제 영화의 줄거리에서 약간 비껴나가게 되었다. 보다 중요해진 건 오대수를 가둔 이유이다. 관객이 알고 싶은 것도, 감독이 알려주고자 하는 것도 오대수의 복수 스토리가 아니라 이우진이 오대수를 가둔 이유가 되었다. 이쯤 되면 이 영화는 이우진의 영화라고 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복수하고 싶었을까? 그래서 15년간 그를 가두고 그 아내를 죽이고 그 딸과 성관계를 맺게 한 걸까? 영화를 보고 내가 생각한 바로는 전혀 아니다. 이우진은 굳이 오대수에게 무슨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이우진은 그냥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누나가 자살한 그 순간부터 이우진의 삶의 목표는 '그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이우진은 직접 그 질문을 오대수에게 던진다. 너희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누나가 자살하였을 때 이우진이 소문을 퍼뜨린 원인이 된 오대수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영화의 진행상태로 볼 때 나는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복수심을 품었다기 보다는 어떤 한숨나오는 질책을, 아니면 질문을 하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기에게 우유 먹일 돈이 없어서 일주일간 고민하다가 슈퍼에서 우유 하나를 훔친 엄마가 자신을 죽어도 싼 도둑년이라고 보도한 신문기자에게 '너라면 어떻게 했겠어'라고 묻는 것처럼. 이우진은 누군가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난 정말로 누나를 사랑했는데.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단지 누나였을 뿐인데. 그런데 그게 둘 중 누군가가 목숨을 버려야 할 정도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건지.

질문의 대상이 오대수가 된 것은 오대수가 소문을 나게 한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복수심의 발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문을 나게 한 사람한테 '내가 그렇게 잘못한거야?'라고 물어보는 게 가장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래서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질문해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나가 죽어버린 상태의 우진은 그냥 쓸데없는 문답이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진짜 답변을 듣고 싶었다. 진짜 답변을 듣기 위해선 '만약 너가 이랬다면'따위의 질문은 할 수 없다. 난 내 여자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녀석이 진심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머리에 총을 겨누고 니가 죽을래 아님 니 여자친구를 죽일까 라고 묻는 방법 밖에는 없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들고 나오면 진짜 답변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진짜 답변은 그 상황에서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우진은 오대수를 그 상황에 처하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오대수 역시 자신의 핏줄에게 사랑을 느껴야 했고 그제서야 이우진은 진짜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상황에 처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랑하는 감정을 자기 마음대로 생기게 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사랑의 상대는 자신의 핏줄이다. 인간의 이성이 존재하는 이상 자신의 핏줄에게 사랑을 느낀다고 그것을 곧바로 사랑이라고 믿어버리기는 쉽지 않다. 이성은 어떻게든 그러한 감정을 막을 것이었다. 그것은 곧 이미 안면이 있는 핏줄에게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얘기이다. 오대수가 그의 누나나 여동생(만약 있더라도)에게 사랑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애초에 시도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얼굴을 알 수 없는 핏줄은 이제 딸밖에 남지 않는다.

딸에게 사랑을 느끼는 건 누나나 여동생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힘든 일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이우진은 오대수를 가둔 것이다. 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15년 동안. 15년 후 딸은 20대의 아가씨가 되어 있을 것이고(사실 아름다울지 아닐지는 모른다) 오대수는 15년 전의 꼬맹이가 그 아가씨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왜 가뒀는지가 아니라 왜 이제서야 풀어준건지가 더 중요한 거라고 말한다. 바로 이 이유다.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고 15년인 이유는 그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우진은 굳이 얘기하지 않지만, 이 이유 때문에 이우진은 오대수가 딸을 하나 낳을 때까지 기다렸다. 오대수의 부인이 살아있으면 딸이 사라진 아버지의 존재를 알 수도 있고, 그 사진을 볼 수도 있고 하여간 -_- 살아 있으면 일이 실패할 확률이 커진다. 그래서 부인도 죽어줘야 했다. (이우진은 누나가 죽은 그 날부터 오대수에게 질문하는 것에 자신의 삶을 건 인물이다)

드디어 오대수와 미도는 사랑에 빠진다. 이제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굳이 미도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다. 그냥 미도가 네 딸이라고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오대수는, 만약이라는 가정 따위의 질문이 아니라 진짜 그 상황에 처해버린 오대수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대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대수는 자신의 혀를 잘랐다. 끝까지 이우진의 의도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이우진에게 대답을 해 준 것이다. 이 대답을 들은 이우진은 오대수를 내버려두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살한다. 만약 복수를 하고 싶은 거였다면 오대수를 살려둘 이유도, 미도에게 앨범을 보여주지 않을 이유도, 자신이 죽을 이유도 없다. 이우진이 자살한 이유는 삶의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는 누나가 자살한 그 순간 이미 죽은 영혼이었다. 그 영혼이 15년 넘게 자신의 삶을 지탱한 이유는 오직 그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성취된 이상 죽은 영혼은 더 이상 생명을 지탱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오대수가 자신이 딸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면 이우진은 미도에게도 앨범을 보여줬을 것이다. 사랑은 둘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대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우진은 자살했다. 하지만 남들은 모두 안된다고 하는, 친누나를 사랑했던 이우진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친누나를 사랑한 자신이 아니라 친누나를 사랑하는 자신을 욕하는 세상을 원망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복수할 의지는 없었다. 우린 정말 사랑했었어. 자신의 사랑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체념과도 같이 내뱉은 말이다. 진짜 사랑한 거였는데, 단지 친누나라는 이유 때문에...라면서.

이쯤되면 올드보이는 오대수의 복수극이라기보단 친누나를 사랑했던 이우진의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혹시나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진 않을까라면서 15년 넘게 죽음을 미뤄왔던 한 남자의 이야기. 틀렸다는 진짜 답변을 듣는 그 순간에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했던 남자의 이야기 말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에도 이우진은 혼잣말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누나 말이 맞았나봐...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S.E - 스펙트럼 인기외화 할인20선
윌리암 프레드킨 외 감독, 사무엘 잭슨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영화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낸 바 있다. 무장 민간 시위대의 공격에 맞서 대사 가족을 구출하고, 급기야 시위대에 발포를 해 83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칠더스 대령의 명령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 좀 더 정확히는 그가 무죄라고 입증하려 하는 - 것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교전 수칙이다. 대충 말하자면 민간인을 상대할 때의 교전 수칙 정도 될까나. 사격받기 전에 사격하지 말 것. 사격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상대의 응사를 종식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만을 사용할 것. 뭐 대충 이런 내용들 되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교전 수칙이 아니라 제목에 적어놓은 바 있는 Deadly Force이다. 이건 말 그대로 사람을 사살할 수 있는 힘이다. (정당방위나 자위권 발동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며, 실제 미군은 어떠한 경우에 사람을 사살해도 되는지에 대해서 교육받는다) Deadly Force란 상대를 죽이지 않고서는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거나 또는 군사 작전의 성공적인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그 상대를 사살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Deadly Force야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싶겠지만 실제로 군인이 민간인을 사살할 수 있는 힘을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똑같은 상황을 놓고 Deadly Force를 행사하느냐 마느냐 하는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미군을 눈 앞에 만났느냐에 따라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영화는 예맨 대사 구출작전 과정에서의 Deadly Force가 발동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전에 베트남전의 얘기도 대충 낑겨 넣고,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내용들을 계속 나열하면서 칠더스 대령의 무죄를 입증하려 한다. 베트남전에서 군사작전을 위해 포로를 사살한 것 - 포로 사살 및 포로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 심문하는 것은 제네바 협정 위반이다 - 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시에 미군 일부가 월맹 비정규군으로부터 전멸당하는 장면을 같이 끼워넣었으며, 이어서 대사관 주변 안전 확보 및 대사 구출이라는 임무가 부여되었을 때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Deadly Force가 발동된 것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예멘은 엄연한 독립국이다. 따라서 대사관저는 치외법권지역이나 대사관저를 둘러싼 나머지 땅은 모두 예멘의 영토이다. 따라서 시위대의 행동을 막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엄연히 예멘 정부에 있다. 경찰이 하든, 경찰이 못 하겠으면 군대가 하든간에 시위대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예멘 정부에 있지, 예멘 정부가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대충 미군 해병대가 가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다가 대사가 잡혀서 죽어버리면? 그럼 그 때가서 외교 분쟁이 발생한다. 예멘 정부가 치안을 보장 못 하니 미군을 주둔시키겠다든지 아니면 기분 나쁘다고 예멘하고 전쟁을 일으켜버리든지는 그 다음의 일이지, 그 다음 일이 걱정되니까 마음대로 해병대를 보내버리고, 급기야 민간인을 사살하는 그러한 권한은 미국에 주어진 바 없다. Deadly Force도 어디까지나 그 상황이 정당한 상황일 때에나 가능한 권한이다. 미군 해병대가 파견된 것을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 영화는 완전히 미국의 논리에 싸여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며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자국민에게 피해가 있을 것이 우려되면 그 나라와의 협의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미군을 파견할 수 있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논리이다. 그러나 요즘 세계를 둘러보면 미국에 의한 평화라기 보단, 미국에 의한 불안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남을 무시하고 힘으로서 제압하려 드는 미국의 대외 정책. Deadly Force는 그 대외 정책을 집약시킨 것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개념을 아직도 군사교육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이 미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