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A.J.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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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차 대전에 대한 통상적인 견해는 1939년 9월 1일 도이칠란트가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 발발 원인은 1933년에 집권한 히틀러의 침략욕 - 특히 레벤스라움으로 대표되는 게르만 인종을 위한 영토 확보 - 에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통상적인 견해를 뛰어넘어 세계를 지배하는 이론이다. 이 책의 저자인 테일러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히틀러에게의 책임 전가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득이 되는 선택이었다는 주장이다. 전쟁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인종청소까지 자행했던 도이칠란트나, 소련의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굳이 서독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던 미국이나, 1930년대의 대독일 유화정책을 폈던 영국이나, 전쟁 직전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던 소련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히틀러에게 떠넘긴 것이다. 게다가 히틀러는 이미 죽었으니 변명 한 마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테일러 교수는 2차 대전의 뿌리를 1차 대전에서 본다. 물론 수많은 책도 1차 대전에서의 잘못된 종결이 2차 대전을 불러왔다고 하지만, 그것에는 히틀러라는 특수 조건이 반드시 포함된다. 히틀러가 없었더라면 과연 2차 대전은 발발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히틀러는 애초에 전쟁을 일으킬 목적이었을까?

거짓말의 명수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하나를 양보하면 다른 하나를 요구했다고 알려져 있는 히틀러. 그가 집권 후 7년 간 단 한 번도 서부 국경선에서의 영토적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실이다. 오스트리아와 주데텐이 히틀러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그 자신들의 넘겨짚기에 의해서 독일에 편입되었다는 테일러 교수의 주장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독일에 편입된 지역의 주민들이 대부분 그것을 환영했다는 사실도 무조건 거짓이라 매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심지어 2차 대전의 직접 원인이 되었던 단치히마저도 인구 구성이 100% 독일인이었으며, 의회는 나치 당원이 장악한 국제적 자유시였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대체 히틀러가 정말 전쟁을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의문이 된다.

저자는 히틀러에게는 애초에 전쟁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도이칠란트에게 장기전 수행능력이 없다는 것은 히틀러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이었다는 점이다. 히틀러는 이 고민을 이른바 '뻥카'로 해결했다.

북한이 남침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것을 계획남침설의 증거로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히틀러의 전쟁계획설은 서부유럽을 단 2개월만에 장악한 사실이 증거가 되곤 한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던 그 순간까지 히틀러의 독일군은 실제로는 프랑스군보다도 더 허약한 군대였다. 독일의 믿을 수 없는 승리는 독일군의 강대함 때문이 아니라, 독일군 지휘부의 전략적 뛰어남과 프랑스군의 전략적 실책에 의한 것이었다. 2차 대전을 통틀어 독일군이 강대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는 그리 많지 않다. 서부 유럽은 만프레드 장군의 전격전이 채택됨으로써 순식간에 점령한 것이고, 소련 전역은 이미 한 번 써먹은 전격전이 다시 한 번 효과를 발휘한 무대였을 뿐이다. 북아프리카에서이 승리는 사실상 롬멜 개인의 승리라고 해도 좋다. 독일군은 어떤 전선에서도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춘 적은 없었다. 히틀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테일러 교수는 전쟁의 원인을 베르사유 조약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는다. 1차 대전에서 독일과 러시아는 둘 다 패배했으며 그 결과로 수많은 동유럽의 독립국이 탄생했다. 독일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서부영토는 납득 가능했지만, 잃어버린 동부영토는 패배의 상징이 되었다. 따라서 독일에게 동부영토 회복은 자존심의 회복이었으며, 이러한 독일의 국가정책에는 영국과 프랑스조차 논리적으로 동조했다.

왜 독일은 전쟁을 일으켰을까 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 책을 읽어보라. 왜 2차 대전이 발발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전쟁에선 선과 악이 없다. 독일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 시대를 돌이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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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귯 2005-12-15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프레드 가 아닌, 만슈타인 입니다.... 그리고 독일군이 프랑스군보다 허약했다는 부분은 지나치게 넘겨 짚고 있군요...수량이 군사력을 대변하는 유일한 지표가 아닙니다.전쟁 직전,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기갑사단을 갖춘 최강의 육군국이었습니다.그리고 전략적 선진성은 군사적 선진성없이는 불가능합니다.전격전이란,기동력의 우월성 없이는 불가능한 이론입니다.. 그리고 테일러 교수의 지적은 파격적이고,또 충분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히틀러에게 애초에 전쟁에 대한 구상이 없었다는 확증은 내리지 못하였죠.과연 1차대전을 설욕하고 싶은 야망이 히틀러에게 없었을까요?온갖 수단을 동원해 프랑스를 모욕했던 항복협상을 떠올려보면, 그것은 단순히 즉흥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히틀러는 왜 세계 정복에 실패했는가
베빈 알렉산더 지음, 함규진 옮김 / 홍익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읽어볼 만 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연합군 측 시각에서 2차 대전에 대해 들어왔다. 2차 대전이라고 하면 기껏해야 안네의 일기,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격전, 바르바로사, 강제수용소, 뉘른베르크, 나치 밖에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2차 대전의 전황을 소개하고 있다기 보다는 가정을 적절히 도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주의 깊게 볼만한 내용은 독일의 전쟁수행능력이 그렇게 압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제력은 물론이고 군사력에서조차 실제로 독일군은 철의 전력이 아니었으며 5년에 걸친 전쟁은 초기의 군사전략의 승리가 남긴 여운에 불과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어느 순간에도 결코 장기전을 수행할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따라서, 저자가 제시하는 중동 공격이 얼마나 그 실효성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롬멜이 실제로 중동을 장악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었다고 판단하기도 힘들다. 어찌보면 이 책에서의 모든 가정은 가급적 독일의 소원을 그대로 반영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국측 시각에서만 전쟁을 바라본 사람들에게는 꽤나 신선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책이다. 다만, 전황이 궁금한 게 아니라 2차 대전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 같은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이 책에서 원하는 내용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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