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칠하는 일은 깊은 잠을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오히려 악몽을 견디는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걸까? 칠하지 않은 생나무들은 표정도 진동도 없는 정적에 잠겨 있는데, 이 검은 나무들만이 전율을 누르고 있는 것 같다. - P145
별들을 파괴하고, 중력을 고무줄처럼 늘려가며 밤도 낮도 없는 시간을 건너뛰어 불사에 가까운 존재가 됐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얻은 것은 우주적 허무에 불과하다. 타인이라는 빛이 없어 웃자라기만 한 가냘픈 식물 줄기처럼 나 자신이 한없이 취약하게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