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비추기 위해 기꺼이 더 어두워진 연못의 물결소리.뾰족한 전나무 잎들이 공기 중에 긋는 투명한 빗금소리.흙 알갱이를 짚으며 땅벌레들이 길을 찾는 소리.부후된 통나무 껍질을 쪼개며 버섯이 피는 소리.이불이 펼쳐지듯 밤안개가 너르게 이동하는 소리.그러다 어저귀와 열매 위로 내려앉는 소리.그렇게 밤이 존재하는 소리. - P155
햇빛이 잎사귀들을 통과할 때 생겨나는 투명한 연둣빛이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특유의 감각이 있다. 식물과 공생해온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리라 짐작되는, 거의 근원적이라고 느껴지는 기쁨의 감각이다.
왜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불안정한 경로를 굳이 선택한 걸까, 선택하면서도 명확하지 않았던 동기를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최대 가능성을 원해." 최대 가능성이라는 압축적인 다섯 글자로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이 불완전하고 가혹한 세계에서,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장해보고 싶다고 스스로의 욕망에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