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의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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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눈이 내려 온 천지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을 때 아 반가운 손님이 왔구나, 하고 아이들은 생각한다. 아이들이 늘 그리워하는 것은 이 외진 곳까지 찾아와주는 손님의 발걸음 소리였기에 소리없이 찾아와준 눈을 더없이 반가운 손님으로 여긴다. 그러나 눈 그 자체 속에 반가움이라는 감정이 이미 숨어 있는 것 같다. 눈이 온 달밤은 대낮보다 더 환하다. 아이들은 그 밝음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 P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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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도 바빠 죽겠는데 웃으라는 말까지 듣고 싶지는 않다고 하면 다른 뜻은 없었다. 우리 그냥 일하게 해주라. 치마 길이가 어쩌고 하는 소리는 그만 듣고 싶다고 하면 다른 뜻은 없었다. 우리 그냥 일하게 해주라. 회사에서 우리 몸에 손대려는 사람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다른 뜻은 없었다. 우리 그냥 일하게 해주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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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가서 플라스틱 쓰레기통처럼 교실 뒤편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여닫지 않는 사물함처럼 멈춰 있었다. 씨앗이 몽땅 썩어버린 화분처럼 거기 있었다. 사물이 되어버린 나를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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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캔버스에 붓질을 하는 동안, 웨딩드레스를 입은 저 여자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 난 행복해요. 불행해요. 그저 그래요. 비참해요. 누가 답을 알까. 저 초상화를 보며 오만 가지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중 진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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