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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헴 폴리스 1
강경옥 지음 / 시공사(만화)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저는 만화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많이 읽어보질 못했습니다. 읽어본 만화를 다 합쳐도 몇 안될 것 같군요. 비교 대상이 적긴 하지만, 100권을 읽는다 해도 언제나 베스트를 차지할 것이라 믿는, 매우 좋아하는 만화가 있답니다.
라비헴 폴리스는 1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짧막한 만화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읽었던 만화인데 너무너무 좋아해서 어쩔 줄 몰랐었죠. 배경은 제가 좋아하는 SF 분위기인데다가 주인공들의 일상 심리가 매우 특별하게 그려진 만화였거든요.
세월이 흘러 이 옛날 만화가 단행본으로 복간되어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주저없이 구입했답니다. 이렇게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단돈 1만여원에 가질 수 있다는 것도 너무 행복했구요. 때로는 이러한 작은 즐거움이 커다란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답니다.
각설하고,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라비헴 폴리스의 작가, 강경옥은 사람들의 감정과 심리묘사에 무지하게 뛰어납니다. 잘생기고 예쁘고 뛰어나고 착한 주인공들이 아니라 어딘가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그래서 위태위태한, 그래서 상처받고 상처주는 그런 인간들에 대한 치밀한 시선을 유지합니다.
그래서일까요 ? 이 만화는 어딘가 모르게 우울함을 근간에 지니고 있습니다. 어둡고 칙칙하지는 않지만, 그 불안함이 계속 떠돌고 있지요. 배경으로 존재하는 미래 도시, 라비헴 시티는 특정 국가에 속하지 않은 연합 중립 도시로 등장합니다. 그리하여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다양한 사건들이 몰려있는 곳인데, 그러한 설정마저 이 주인공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듯합니다.
에피소드 중간에 보면 아주 짧막히 연방군대 창설을 주장하는 시위대가 지나갑니다. 저의 막연한 불안감은 이런 곳에서 구체화됩니다. 미래 인류 국가는 언제나 과도한 전체주의 국가의 형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비헴 시티도 언젠가는 그러한 곳으로 변모할 지도 모르지요. 그러한 불안정한 곳에 존재하는 주인공들 또한 너무나도 깨지기 쉬운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그 둘의 사랑이 어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혼자는 불안하지만, 둘이라면 조금은 안심이니까요.
그렇다고 사랑 얘기가 주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강경옥 만화의 특징인,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관한 얘기가 핵심이지요. 사랑이든, 우정이든, 부모 자식간이든, 여하튼 그 무엇이든간에 인간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방황합니다. 심지어 제 1화에서는 저 먼 우주공간을 헤매는 어느 여자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그 외로움과 절망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세상이 변하고 과학과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과 치유할 수 없는 외로움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어렵다는 것, 그렇지만 그것이 유일하고도 가장 근원적인 치유책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을 보고난 후의 결론이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그러한 점에서 저에게 매우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도 포함시켜야겠구요 !
※ 만화 속 이 장면 !
- 에피소드 중, 남자주인공 라인 킬트의 친구이자 가수인 레이 신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지루한 밤」이라는 노래인데, 들어볼 수도 없는 노래이지만, 그 분위기는 한마디로 필(!)이 딱 꽂히는 듯 합니다. 상상만으로도 들리는 듯하다고나 할까요 ?
- 달왕복선 스테이션에 있는 「카시오페이아」는 별이 보이는 매우 아름다운 레스토랑입니다. 투명반구 지붕이 있는, 그래서 밤에 온통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찬 그러한 곳입니다. 정말, 정말, 그러한 곳이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