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아프리카 1
박희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5년 11월
평점 :
품절


이 호텔 아프리카는 최근(이라고 해도 5년이 넘은 듯;;)에 읽은 만화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이미 머리가 굳을 대로 굳은 후에야, 감수성이 메마를 대로 메마른 후에야 읽게 된 만화라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의 매력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이 만화가 가진 다양한 인물들과의 에피소드의 매력에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워낙에 다양한 스토리를 좋아하거든요.

옴니버스로 구성된 이 만화는 주인공들의 현재 이야기와 과거 이야기가 날줄씨줄처럼 얽혀져서는 시간을 무시한 채 뒤죽박죽 튕겨 나옵니다. 주인공 얘기들 뿐만 아니라 호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여러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같이 등장합니다. 처음엔 그 흐름을 잡지 못하여 한참을 헤매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렇게 무질서해보는 이야기 흐름들이 사소한 것에서도 상충하지 않고 결국 정교히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고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기도 했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상처투성이입니다. 주인공들도 물론 그렇구요. 흑백혼혈로 태어난 엘비스와 어린 시절이 가정불화로 얼룩진 쥴라이, 첫사랑이 자살한 에드. 하지만 타고난 따뜻한 품성과 호텔 아프리카에서 보낸 유년시절 덕분으로 엘비스는 그 특유의 치유력으로 주변을 둘러싼 그 모든 것을 보듬어 안습니다. 아마도 그의 이러한 능력은 어릴 적 호텔 아프리카에 묵었던 손님이었던 인디언 지요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또한 호텔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사람들과 주인공 주변 인물들 또한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 사회의 비주류가 대부분입니다. 자살소동을 벌이던 소녀들, 엄마에게 버림받고 새아빠와 자라는 아이, 서커스단을 탈출한 연인들, 앞 못보는 소년과 양엄마, 평생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산 할머니, 돈을 벌러 미국에 온 멕시코 여인 등.

그리하여 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비참한 일상의 괴로움 속에서도 꿈과 따스함을 찾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인해,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삶에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답니다. 게다가 새겨볼 만한 대사들과 자연적인 풍광들과 어린 엘비스의 매우 귀여운 모습들과 깔끔한 그림들은 자꾸 손이 가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지요. 햇빛이 쏟아지는 한가한 풀밭에 드러누워 있는 듯한 따사로운 뿌듯함을 주는 기분이 바로 이 책을 읽을 때의 느낌이랍니다.

삶의 행복이란 것이 서로 부대끼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고 가까운 소중한 사람들과 소박하게 사는 것이라는 것,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

※ 만화 속 이 대사 !

'... 손가락을 벌려 해를 향해 펼쳐봐라. 손가락 사이로 빛이 들어오지. 이건 너희들의 미래이자 꿈, 야망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밝게 빛나지만 너무 눈부셔 바로 볼 수가 없지. 반면 손가락을 봐라. 평소보다 더욱 어둡지. 이건 시련... 손가락이 손의 일부이듯 시련은 늘 붙어다닌다. 너무 눈부시다고 손가락을 붙이면 시련뿐이고 너무 야망만을 좇다 보면 햇빛에 눈이 상하듯 야망으로 너희 마음의 눈이 상한다.

이제 조금만 눈을 옆으로 돌려봐라. 푸른 하늘이 보이지... 이것 또한 눈이 시릴만큼 푸르지만 아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아름답지 않나 ? 저 푸르름 ? 이것은 휴식이다. 앞으로 너희들은 어떤 식으로든 미래의 야망으로 눈이 시릴 것이고 시련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럴 땐 가끔씩 시야를 바꿔 여유로운 마음으로 휴식을 갖는게 필요하다. 마음의 눈을 잃는다면 그 어떤 큰 야망도 무슨 필요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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