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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제국 ㅣ 당대총서 14
하워드 진 지음, 이아정 옮김 / 당대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어떠한 사안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리고 그 생각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하워드 진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단순한 흥밋거리나 학문적인 논쟁의 주제가 될 뿐 아니라 우리의 삶과 죽음에 그대로 직결되는 것이다.'
탁 까놓고 남의 인생까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을 살면서 어떠한 생각을 하고 사느냐 하는 것은 내 삶의 '주제'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삶이 복잡해질 수록 생각은 점점 짧고 명료해지며,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의 의식들이었지요.
그러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두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게다가 5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의 책인데도 읽는 동안 결코 손에서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도대체 그 무엇이 저를 이토록 끌어당겼으며,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일까요 ?
처음에 이 책을 읽어서 얻으려고 했던 것은 '신랄한 하워드 진 교수의 大아메리카 제국 비판하기' 를 통한 쾌감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책은 단지, 미국이란 나라의 그늘만을 막무가내로 벗겨내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를 포함하여,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화된 여러가지 패러다임과 환상에 대한 아주 철저한 분해부터 시작합니다. 그러한 관념은 '평상시 사람들의 하루하루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소리없이 존재하는 지배적인 관념들, 우리 이웃과 고용주·정치지도자들이 우리에게 준수하기를 바라는 관념들, 일찍이 배워서 아주 쉽게 받아들여진 그러한 관념들' 입니다.
이러한 '생각 철저히 뒤집기'는 상당히 유효한 것이어서 점차 그의 말과 글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던 막연함을 그는 철저히 구체화시켜주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그는 침묵하는 학자가 아니기에, 심지어 말로만 떠드는 학자도 아니기에, 책 곳곳에는 그가 직접 겪었던 미국 민주주의의 그늘진 현실이 드러납니다.
폭력에 대한 인간 본성, 역사의 선례, 정당한 전쟁, 국익, 법과 질서, 언론 자유, 대의정치 등에 대한 잘못된 환상과 편견은 여지없이 공격당하고 비판받습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은 결코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지 않습니다. 하워드 진 교수도 그 점을 지적하고 그 편견을 깰 것을 외칩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어렵지가 않습니다. 어려운 말로 빌빌 꼬여 있거나 온갖 데이타들이 등장하여 정신을 산란하게 학술서가 아니라, 그저 담담히 그렇지만 단호히 자신의 주장을 외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반미를 위해서 읽는 책도 아닙니다. 여기서 얘기되고 있는 모든 내용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당면한 문제이니까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미국이 가장 이상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나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몇날 며칠동안 밤을 새워가며 읽은 이 책의 감동을 사실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연하게, 그리고 빈약한 논리만을 가지고 스스로의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저에게 이 책은 기가 막힌 바이블이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순간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정말 간만에 만나는 각성(覺醒)의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구요.
흥분한 까닭에 횡설수설이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시겠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사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볼펜과 자를 준비하시구요. 읽다 보면 어느틈엔가 저처럼 줄을 팍팍 치면서 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게다가 읽는 것만으로도 통쾌함을, 그리고 존경할 사람을 발견하게 된 기쁨을 느끼게 될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