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사람마다 누구나 어두운 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성선설을 더 믿는 편이지만, 성선설도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이 없으면 절대로 부각될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 처럼 우리는 늘 선과 악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선하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요. 그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령 호기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때때로 아주 밝고 따스한 느낌의 소설을 읽고싶다가도, 때때로 검은색보다 더 깊은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다룬, 악랄하고 지독한 어둠을 담은 책을 미친듯이 읽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어두운 소설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 책장을 덮고나면 매우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기 마련이기에 호기심 가득한 소재이면서도, 자주 가까이 삼으며 읽으려 하지않게 되더군요. 그나마 깔끔한 기분으로 내 호기심을 채워주던 책들은 역사 속의 악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
역사 속의 악녀들의 이야기라든가, 악녀에 대한 이야기들은 참으로 많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마련입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모두 총 동원해 사랑과 권력, 부와 명예를 챙취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지요. 자신의 존재, 부, 권력 - 가진 것을 총 동원하여 열정을 내뿜으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제목부터 기이한 이 소설의 표지를 처음 보는 순간 사로잡힌 제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둠보다 더한 검은색 배경 안에서 못마땅한 표정인지, 기묘한 비웃음인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저 여인의 표정이 무섭기도 하고, 비아냥 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부터 줄거리까지 어느 하나 제 호기심을 자극하지않는 것들이 없을 정도였는데, 읽고 나니 인간 내면의 악마적이고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렇게 깔끔하고 정돈된 것 같은 맑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은 흔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순간, 전혀 찝찝하지 않았던 그 기분을 느끼며 어찌나 놀라웠던지!
이 책의 간략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무료하게 이자카야에서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연연하던 삼수생 도쿠야마는 동료들과 찾은 단란 주점에서 그 곳 최고의 미녀인 하쓰미를 만나게 됩니다. 하쓰미는 도쿠야마에게 휴대전화 번호화 함께 수수께끼같은 메세지를 건네고, 처음에는 그녀를 경계하던 도쿠야마는 금새 하쓰미의 포로가 되어버립니다. 살인, 잔혹, 엽기, 고문, 학살 ... 엄청난 지식과 기억력으로 황홀하게 그려내는 '세계의 잔혹사'를 들으며 기묘한 섹스에 눈을 뜬 도쿠야마. 찐득하게 달라붙는 그녀의 염세적 세계관에 침식된 그는 점점 외부와의 연결 고리를 하나씩 끊어버리고야 맙니다.
앞서 말한대로 이 책의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인간사의 잔혹함을 이야기 한다던가, 변태적인 섹스 플레이등을 그려내고 있음에도 책을 덮는 마지막 장의 기분이 전혀 찝찝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좀 특별한 취향을 가진 연인의 사랑법으로 보여지는게 이상할 지경이였죠.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불쾌했던 것은 아름다운 여자친구를 두었다고 해서 질투를 하며 악의적인 말들을 내뱉는 주인공의 친구들이 이 책의 남녀주인공의 행동보다 훨씬 더 불쾌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단지 '도쿠야마를 위해서, 도쿠야마 네가 꽃뱀에게 빠진것 같은데 그걸 구해내기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여 주인공인 하쓰미를 폄하하는 악의성을 보이고 있지요. 인간의 잔혹성이 어디까지인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내용을 기억하고 도쿠야마에게 이야기 해주는 하쓰미가 더 나쁜 사람일까요? 진정으로 악하고 위험한 사람은 누구인거죠?
이 책은 위험한 책이자 매력적인 책 입니다.
자칫 잘못할 경우 온갖 어둠 속에 빠져들어 헤어나올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어둠의 끝자락에 도리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 처럼, 마지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하는 것처럼 오히려 그 어둠이 너무 짙어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어찌보면 작가 자신이 노린 것이 이런 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약해진 사람이 베갯머리에 놓고 되풀이해서 읽는 소설을 쓰고 싶다." 고 했으니까요. 마음 약한 사람들에게 희망 가득한 이야기를 읽힌다고 해서 단숨에 희망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희망적인 내용이 마음 약한 사람들에게 절망으로 다가오기도 하거든요. 너무 밝은 빛은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더 큰 절망을 가져다 주기도 하니까요. 그런 의미로 마음 약해져 살아가는 게 힘든 순간이라면 깔끔한 기분으로 절망 속에 희망을 딛고자 하는 것처럼, 저자가 그랬듯이 베갯머리에 놓고 두고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한 추천이지만, 정말 이 책 그런 책이예요. 그래서 그 점이 매력적인 거고요.
오히려 하쓰미가 거침없이 말하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돌아보면 과거보다 현대의 지금이 더 잔혹하지 않은가 .... 고민하게 됩니다. 과거 공장에서 반복적으로 노동하던 세대에 비하면, 근로법 등이 개선되고 있으니 지금이 더 낫다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끊이질 않은 일로 인한 야근이 되풀이되는 회사라던가, 일한 댓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회사 대표의 횡포, 회사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 처리를 해주기 싫어서 온 구급대를 돌려보내는 경우 등 뉴스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노동자들의 삶은 과거보다 나아지지 않은 것 같거든요. 시대는 편해지고 있지만 정작 그 편리함에 우리의 희생이 당연시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지기도 합니다.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대로 망해버려도 아무렇지 않겠지만, 글쎄요, 다르게 생각해보면 끝없이 개선이 되어왔던 것처럼 또 다른 방법으로 개선이 되는 희망을 비춰볼 수 있지도 않을까요?
아무튼 책장에 꽂아두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꾸준히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책 입니다. 묘하게도 사람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악에 대한 호기심을 적당히 자극해주면서, 그에 반하는 선을 끝없이 불러일으키는 이중성을 지닌 책이거든요. 과연 이 악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선택은 이 책의 책장을 마지막까지 읽고 덮은 독자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역자 후기에 일본의 어느 블로그가 지적한대로 이 책의 제목이 주는 의미가 두 가지가 있지 않겠냐며 적은 글귀가 있는데 그 의미가 참 인상깊어, 그 것을 소개하며 이 책 서평에 대한 마침표를 찍을까 합니다.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그런 생각일랑 접게 해줄 테니.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기꺼이 도와줄 테니.
자, 여러분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인지요?